유다의 배반 | 최은숙 | 2020-09-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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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의 배반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를 따라서 십자가에 죽으실 그날을 향해서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계십니다. 자신이 떠난 후에 사역을 이어갈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품고 가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너희중 하나가 나를 팔 것이다.” 하시며 유다 안에 배신의 씨가 자라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유다 자신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자기 유익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해 나가다가 예수님을 팔 생각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다 안에 엄청난 사악한 음모가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주님은 유다 안에 사악한 음모와 추악한 배신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를 사랑하시고 품어주시고 씻겨주셨습니다. 유다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편의 기자처럼 “내가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쳐주소서”하고 기도 하였어야 했는데 끊임없이 자기 생각과 사단의 뜻을 따라 배반의 길을 갑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민망하다’라고 하십니다. 이 뜻은 마음이 떨리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가 사단에 잡혀서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너무 비통해 하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유다의 영혼에 관심이 있는데 유다는 오직 자신의 유익에만 관심의 있습니다. 삼년 반 동안 양육한 것이 무색 할 정도로 생각이 서로 달랐습니다. 성경에 비극적인 인물들을 보면 그들이 한결같이 한 것은 주님을 욕하고 미워했습니다. 주님을 배반하고 구원을 버리고 떠난 자들이 시대 시대마다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생각과 틈을 주어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끝내는 주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배반을 그대로 실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진실로진실로 이렇게 거듭 말씀하시면서 사랑으로 떡을 떼어 주시면서 유다가 사단에 잡혀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을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단이 우리 안에서 임의로 무조건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가 발판이 되고 우리의 의지가 발판이 될 때 사단이 역사하는 것이지 틈을 주지 않으면 사단도 역사하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주님을 팔 배신의 마음을 품은 유다에게는 예수님께서 수없이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어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더라.’ 이 말씀은 죄와 배반의 대가에는 전혀 감각이 없는 자가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중에 다른 제자들도 영적 감각이 없고 무지하여 유다가 왜 나가는지? 왜 떡을 주셨는지? 모르는 영적으로 전혀 상거가 먼 제자들의 상태도 보게 됩니다. 영의 세계를 전혀 감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함께 양육 받은 제자 하나가 사단에 팔려가는 데도 전혀 감각이 없습니다. 오직 괴로워하는 것은 예수님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만유의 주로 유다의 배반에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따라서 가는 주님의 발걸음을 보게 됩니다. ‘그 조각을 받고 나가니 밤이더라.’ 이것의 상징적인 의미는 악하고 어두움에 갇혀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생태가 오면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두드리고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면 무엇이 막혀 있는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배신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야합니다. 유다를 통한 교훈은 탐욕을 버리는 것입니다. 유다의 관심은 오직 돈에만 있었습니다. 공동체의 재정은 신실하고 정직한자에게 맡겨지는데 재정을 맡은 유다에게 감춰졌던 돈을 사랑하는 것과 탐심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자기에게는 부요한데 하나님께는 인색한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일하는 것은 돈을 모으기 위함이 아닙니다. 일해서 얻은 소득으로 주님을 위해서 쓰임받기 위함입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구원받고 복 받을 사람은 탐심을 말씀으로 쳐서 이기고 예수 이름의 권세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합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책망하실 때에 자신을 돌아보고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구원으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자가 되어야합니다. 유다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기적을 보았지만 그의 관심은 권세와 돈에만 관심이 있어서 진리가 생명이 되지 못했습니다. 생각이 부정적이면 결과가 늘 비참합니다. 우리는 마음을 지켜야합니다. 늘 우리의 마음을 말씀으로 씻어내고 다듬어야 합니다. 어두움이 역사하지 못하도록 문빗장을 잠궈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 뜻 이루기를 원하는 사람이 현대판 가룻 유다입니다.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했지만 구세주로 믿지 않았고 교훈을 받는 선생으로만 여겼습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는 별 관심 없는 열심당원 이었습니다. 유다의 야망과 주님의 진리는 너무나 맞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으니까 점점 더 구원의 진리와 괴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주의 일을 하지만 내게 유익이 없으면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안 합니다. 오늘 유다의 배신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에게는 유다의 속성이 없는가? 우리에게도 유다의 속성이 다 있다는 것을 집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나는 진정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자인가? 순간순간 주시는 말씀 환경을 통해서, 지체를 통해서 말씀하시고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얼마나 생명을 내려놓고 말씀을 취하기 원하고 구원을 이루기 원하여 애쓰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 땅에 썩어질 것으로 많고 많은 신들 중에서 하나로 예수를 믿고 나의 안일함과 유리한 조건을 찾아 기복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아닌가?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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