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 김수강 | 2018-05-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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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줄을 믿노라 하니라 (행15:11)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살과 뼈가 있는 그릇을 쓰고 구속사를 이루고 가시는데 인간 속에 있는 잘못된 기준들을 수정해 가십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으면서 나의 율법이 수정되고 변화되면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기준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믿음의 영혼들을 이끌어 가시는지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명하길 원하십니다. 복음에 속하지 않는 나의 기준과 율법으로 상대방을 실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 담긴 생명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들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유대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들에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이 가라사대 따로 세우라는 음성을 듣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보냈을 때 세워진 교회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나를 통해 복음을 증거 할 수 있는 든든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 교회 예루살렘에서 왔다고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율법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미혹되기 쉬운 점은 유대인들을 통해 복음이 들어왔고 예수님도 유대인으로 오셨고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할례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지만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나의 생각과 경험으로 하기 때문에 공동체를 허무는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악한 영은 경우에 합당한 이치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관이 불확실하면 흔들리고 요동을 받게 됩니다. 구원의 근원은 예수님이시고 영생에 이르는 길에 내 생각, 내 소견이 들어가면 변질된 미혹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바울이 이렇게 변론 할 수 있었던 것은 회심한 이방인들에게 영적인 혼란을 가져 올 수 있기에 연약한 심령들을 실족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은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을 체험하고 많은 은혜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예루살렘에 가서 물어보자고 했을 때 지도자인 바울과 바나바는 은혜를 체험하고도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성도들을 봤을 때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실족하는 것은 환경과 사람이 아닌 나의 구원관이 확실하지 않고 분별하지 못했기 때문에 넘어지는 것입니다.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율법으로 돌아가려는 성도들을 생각하면 속상하지만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며 가는 바울과 바나바를 보게 됩니다.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고 구원받은 역사에 대해 간증하니 형제들이 다 기뻐했다고 합니다. 복음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하기 때문에 상황에 전혀 묶이지 않은 자유 함을 보게 됩니다. 복음의 본질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는 것이지 옳고 그름인 율법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한 영혼이 살아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산자의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목적이기에 자존심 싸움, 자기주장 싸움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지라도 모든 주권을 주께 맡기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선교의 열매가 우리들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의 그릇으로 쓰임 받는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다시 논쟁이 시작되자 가만히 듣고 있던 베드로가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갔더니 이방인 고넬료에게 성령이 임한 것을 보고 유대의 전통을 내려놨다고 고백합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하나님의 경륜 앞에 누가 감히 율법을 들고 나와서 성령을 막겠느냐고 베드로가 변증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지금까지 저주의 본성으로 다투고 논쟁하는 자리에 있었는데 생명의 자리로 옮김 받기를 원합니다. 나의 입술의 말이 구원의 말이 되어 사람을 살리길 원하고 다툼과 논쟁이 그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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