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수함을 입은 자 | 오은아 | 2025-07-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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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민수기2:32-34절 개역한글32. 이상은 이스라엘 자손이 그 종족을 따라 계수함을 입은 자니 모든 진의 군대 곧 계수함을 입은 자의 총계가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명이었으며 33. 레위인은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계수되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심과 같았느니라 3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여 각기 가족과 종족을 따르며 그 기를 따라 진 치기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더라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모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에게 대언했고 아론과 제사장들에게 대언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입술에 두시면 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 때마다 시마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고 구원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민수기1장은 각 지파에서 여호와를 위해 싸울 수 있는 군대에 계수된 –12지파로 구성된 여호와의 군대 –의 명단이 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애굽으로 내려오게 하신 야곱의 가족70명이 400년이 지나 나올 때는 군인으로 계수된 자만 60만 명, 인구 전체 200만 명의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2장에서는 하나님께 계수함을 입은 자의 명단으로 지파의 이름과 지휘관의 이름, 숫자가 나옵니다. 지파를 총괄 지휘하는 우두머리들이 선출되고 진영 배치도와 행진도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대로 동서남북으로 배치되고 일대, 이대, 삼대, 후대로 진행하게 됩니다. 성경은 유다와 에브라임(요셉의 둘째아들, 3진의 수장)지파는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갈렙과 여호수아가 속해 있던 유다와 에브라임지파는 어떤 상황이던지 거역함 없이 불평, 불만 없이 순종했습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은 자기 소견이 없이 생명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사령관의 지시에는 복종이 전부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군대의 총 사령관인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사람, 충성하고 순종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말씀 앞에 신실한 사람을 여호와 군대의 1진으로 쓰시는 것입니다. 유다족속은 일대로 동방 해 돋는 편에 진을 치게 하셨습니다. 야곱의 넷째아들이었지만 장자로 열두 지파의 인도자가 된 것입니다. 창세기49장은 야곱의 유언의 내용으로 축복기도를 하며 아들들에게 예언을 하는 내용입니다. 장자 르우벤은 아비의 침상을 더럽힌 죄로 책망을 받고 장자권을 잃게 되었습니다. 둘째 시므온과 셋째 레위는 세겜에서의 사건으로 심판을 받았고 넷째인 유다에게 장자권이 넘어갔습니다. 사자새끼의 축복을 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 하나님의 축복권 안에 들어가면 사자처럼 포효하리라 했습니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 –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신과 가문이 달라지고 후손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유다가 어떻게 구속사의 주인공이 되고 영적 장자가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남편 야곱에게 사랑 받지 못했던 유다의 모친 레아는 유다를 낳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그 아들을 ‘찬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유다라 하고 믿음의 관점이 바뀌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것에 족하고 하나님께 위로를 얻게 된 것입니다. 유다를 통해 구원의 문이 열리고 눈물 속에서 믿음이 회복되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메시아의 혈통을 낳는 조상이 된 것입니다. 유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장자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매 순간 하나님 편에 서서 의를 위해 싸웠던 중심들이 모아짐으로 하나님이 그 이름을 올리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던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로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결정적인 판단으로 하나님 편에 서서 ‘생명을 해하지 말라’ 는 말로 애굽에 종으로 팔리게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게 했고 가나안에 기근이 들어 생존을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을 때 베냐민이 누명으로 종이 될 위기에 처해지자 형제 사랑에 아버지를 생각하는 장자의 영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동생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표현한 유다의 이 고백에 요셉의 닫힌 문이 열려 모든 것이 풀리고 화해를 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했습니다. 유다는 단순히 베냐민을 구한 것이 아니라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형제들을 하나가 되게 한 것입니다. 유다의 삶은 선한 행위가 아닌 주님의 사랑으로 회복시켜 믿음으로 변화되는 회복입니다. 묶인 것을 푸는 것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고는 그때그때 상황마다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방인 며느리 다말의 용기 있는 행동은 자신을 권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서 유다의 무책임과 위선적인 신앙을 드러냈지만 ‘그는 나 보다 옳도다’하며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 회개하는 심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다말과 유다의 아들 베레스를 통해 그리스도의 계보가 이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문제이지만 하나님은 그 문제와 상황을 도구로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열두 지파를 만드시고 천국의 열두 문을 만들어내셨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어떠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장자의 영 아래에서 감당하여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야곱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실수와 고통을 통해 야곱 가문의 가정을 살리고 심령을 살리는 은혜가 온 것입니다. 살리는 영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을 힘입고 성령 공동체에 순종하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남의 탓만 하고 회개 할 줄 모르고 복이 복되게 하지 못하는 자리에 들지 말고 모든 것을 내 죄로 끌어안고 사람을 살리는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자기 부인을 하며 애쓰면서 가는 것은 내가 예수가 되고 예수를 낳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자자손손 구원의 문이 열릴 수도 닫힐 수도 있습니다. 허락하신 장자의 영으로 모든 것을 유다처럼 잘 감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희생하여 주어진 오늘을 잘 사는 삶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심령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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