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가장 큰 선물 | 허사라 | 2017-09-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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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알게모르게 죽음에 쌓여있게 된다. 늘 죽을까.아플까.사고날까 두려워 하는것은 죽음이면 이 모든것이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죽음은 인간사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은 예외가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먼저 겪고 나중겪는 차이일뿐이지 우리 모두에게는 겪어야 되는 사건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것인가? 또 어떻게 죽을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되며 나는 또 어떤 죽음을 맞이해야 될것인가? 삶을 통하여 죽음을 이해하게 되여지고 진정한 삶을 찾게 되는것이 죽음이라는것을 이전에는 몰랐다. 그러다보니 사람의 평가보다는 늘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늘 하나님 앞에 겸비하며 경건의 훈련을 하게되는 아름다운 삶이 오늘 우리에게 허락 되여져서 우리는 참으로 복된 인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삶은 곧 떠나갈 삶인데도 불구하고 내 방식대로 내 주장대로 주관하고 끌고가려고 죽음을 향해서 가야하는데 죽음을 저항하면서 끊임없이 밀어내고 있기때문에 이 삶이 이렇게도 어그러지고 꼬이고 힘이 드는 것이다. 죽음은 순순히 받아들이며 죽음을 향하여 유유히 가야지. 죽음이 밀려오는데 죽음을 저항하고 밀어내다 보니 삶이 이렇게 어그러지고 있는것이다. 우리의 삶속에서 죽음을 잃는것은 삶을 잃는것이다. 그래서 죽음을 잊지말아야되고 늘 죽음을 생각하면서 죽음을 준비해야되는것이 오늘의 이 삶을 아름답게 열매맺는 삶으로 살아가게 되는줄 밎는다.
오늘 본문에 스데반의 죽음은 주님께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 무릎을 꿇고 크게 부르짖어 기도하면서 주님! 이 죄흘 저들에세 돌리지 마옵소서".이 말을하고 자니라고 표현을 한다. 이 스데반은 하나님의 일하심이 충만했던 자였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주님의 십자가가 우리의 삶을 사로잡아서 죽을때는 줄을줄 알게 도와주시고 장대에 매달릴때는 매달릴줄 알게 도와주시고 주님의 부활의 영으로 사로잡아서 죽음이후에 부활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한다. 우리가 이땅을 살아가면서 자기 배를 채우고 위선적이고 자기 권위와 명예와 권세를 사용하면서 종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꾸짖고 있는 이런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은 혹여 내것이 아닌가를 돌아보아야 될줄 믿는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잔다고 표현한것은 죽음은 끝이 아니기때문이다. 잔다는것은 깨여나는것을 전제로한 표현이기때문에 깨여날때에는 음부로 가는 영체로 깨여나는것이 아니라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깨여날수 있는 자가 되였으면 좋겠다. 우리에게 죽음의 의미는 죽음을 통해서 믿음을 드러낸다. 산 순교ㅡ분명 생명이 살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적용하므로 말미암아 살아있는 이 생명을 죽은자로 여기고 갈때에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를 나타내 주는줄로 믿는다. 죽을때 믿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또 죽을때 우리의 믿음이 결산을 받는것이다. 시 90편에는 "하나님. 우리의 날을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옵소서." "아버지. 내가 주님 앞에 설때에 하나님의 날로 계수 받을수 있는 인생의 날이 얼마나 될까? 이것을 생각하며 기도했던 모세의 별세신앙이 인생의 마무리를 기도로서 정리했던 모세같이 오늘 우리들도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는 별세의 신앙으로 내세를 준비할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 뭐가 어리석고 무지한가하면 죽음을 준비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다. 의미없고 가치없는 인생으로 허비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진정한 삶은 어떻게 살까가 아니고 어떻게 죽을것인가 ? 어떻게 하면 이생의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할것인가? 이것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사람인줄 믿는다. 히9:27 "한번 죽는것은 사람에게 정한 이치라. 그 후에 심판이 있다" 그러니 조금 일찍 죽는가. 조금 나중 죽는가의 차이지 한번 죽는것은 정해 놓은것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은 현실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는다. 늘 주님앞에 심판 받을것을 준비하게 되여지고 주님 앞에 설것을 대비하게 되여지는 믿음의 계산이 때마가 시마다 일어나는줄 믿는다. 죽음이 오면 왜 하필이면 나냐고하는 의문이 들어온다. 그런데 초대교회에 스데반 집사를 성경에서는 말하기를 성령과 권능이 충만한 사람. 이 사람은 구제와 선교를 온 몸으로 온 맘으로 드렸던 사람이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를 당했는데 그가 돌에 맞아 죽어갈때에 온 교회가 살려달라고 얼마나 부르짖고 기도했겠는가? 스데반과 같은 사람이 죽으면 안되지 않느냐는 세상 가치관에서그 죽음을 이기고 홀연히 그와 함께했던 그 능력을 힘입어서 죽음을 떨쳐버리고 기적같이 일어나기를 얼미나 기도했겠는가? 그런데 성경은 그를 죽은자 가운게서 툭툭 털고 일어나게하는 능력을 보여준것이 아니라 "자니라 " 로 표현을 하고 있다. "자니라"는것은 안식이라는 것이다. 죽음은 쉼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중한 고통 끝에 죽음을 그 비통함을 그 저주스러움을 어떻세 우리에게 좋은것으로 선물 하셨냐면 요 5:16~에서 보면 "내가 떠나가는것이 너희레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라. " 보혜사 성령이 너희에세 임하면 너희가 자의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가 행하게 하시는대로 진리가운데 너희를 인도하여 낼것인뎨.. 그러니 이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할것이 없다는 것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신는대로 그가 걷는대로 따라가고 그가 인도하는대로 순종하면 되는데 너희 장래 일도 너희에게 알려 주시리라. 우리가 볼때 주님은 세상에서 저렇게 저주박은 십자가를 지고 온 몸으로 피흘 쏟아내면서 온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손발에 못이 찔려서 죽는 저런 저주는 이 세상에 전무후무하게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씀른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죽으며 예수님처럼 부활할수 있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뿐만 라니라 우리의 죽음 또한 다른 사람에세 이렇게 많은 열매를 맺게 한다는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세 이르노니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수 없고.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것이 주님이 죽음으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천국에 들어가는것은 죽음을 통과하는 것인데 여전히 죽음이 두렵다면 우리안에 천국에 대한 산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영육간에 죽음이다. 나의 십자가는 어디에 있는사? 내일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후회할것이 있겠는가? 더 막을것이 있고 더 묶을것이 있겠는가? 막혔던거 열어야 되고 묶였던거 풀어야 되지 않겠는가? 스데반이 임종 기도를 한다.그런데 스데반이 살려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아버지. 내 영혼을 받아 주옵소서. 성령의 사람에게는 더이상 죽음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기 때문에 얼마나 아름다운 시작인지 모른다. 빌1:21바울이 " 내게 사는것은 그리스도니 죽는것도 유익함이라." 내가 육있을 동안에는 그리스도로 산다고 하지만 늘 육이 나와서 방해를 하지만 죽음 이후에 나라는 육이 죽고나면 그리스도의 세계만 열려지니 이것이 선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죽어야 될것이 뭐냐하면 우리안에 나도 원치 않고 주님도 원치 않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누구한테도 환영받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는 내안에 불법이 성행하는 강도의 굴혈이다. 내 안에 선한것이 아무것도 없다. 용서못하는 꼬부라진 좁은 소견이 있고 내안에 탐욕.욕심.이기심.시기. 질투.원망.불평.음란.더럽고 추악한것이 있는데 우리가 죽은자가 되여야지만이 새롭고 산 길이 열리는데 끊임없이 경성하고 . 용납하고.오래참으며.사랑하고. 이 안에 성령의 9 가지 열매사 가득가득 채움을 받아서 주님이 취하실수밖에 없는 이런 날을 준비하기 원하여 우리는 죽어야 된다. 그래서 이 십자가가 영광이고 죽음이 큰 선물인줄 믿는다. 60절 ㅡ 복음을 증거하다가 너무나 애매한 사건을 당했으면서도 " 아버지,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 주옵소서." 이렇게 마무리하고 육신을 벗는것이다. 주님이 가셨던 그 길 그대로 신성이셨던 주님이 가셨던 그 길을 우리가 어떻게 가겠는가? 그런데 주님속에 있던 그 진리의 영이 우리안에 오셔서 그 분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인생이 되여진다면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 정말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돌로쳐서 죽이는 사람들. 여전히 눈만 뜨면 비판하고 정죄하고 수많은 탐욕과 욕심으로 살아가는 무리중에서 건져주셔서 이제는 주님이 가신 그 생명의 길. 주님이 가신 천국을 생각할때마다 어떻게 우리 안에 이 선물을 주셨을까? 어쩌다가 이 복을 받게 했는지? 이것이 우리 삶에 실제가 되기를 ... 나의 숨쉬는 순간도 남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나의 손이 가고 발이 움직일때마다 나를 통하여 누군가가 살아나고 회복되고 고침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원쑤도 사랑할수 있는 인생을 마무리 할수있는 복된 인생기 되기를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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