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반응 | 허사라 | 2017-09-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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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8:1~3
오늘 주제는 복음에 대한 반응이다. 여기서 경건한 사람들이 나타나는가하면 사울과 같은 공회원 종교지도자들이 이 복음을 어떻게 거부하는가가 나온다.
1.2절 경건한 사람: 경건하다는것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통해서든지 기도로 동역하는자 그리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을 말한다. 믿음의 동역자 스데반을 잃고 슬픔을 가누지 못해서 위하여 크게 울었다고 한다. 주님이 계시고 나를 이해하고 나와 함께 주의 일에 마음을 같이 할수가 있다는 이것이 복중의 복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아니하는 경건한 사람들을 시대시대 두셨다. 올무를 놓고 덫을 놓고 신성모독죄로 죽이라하는 암울한 시대에 예수 예자만 꺼내도 돌로 쳐죽임을 당하고 살기가 왕성하고 혈기등등한 그 시대에 내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 표징을 나타내기가 쉬운일이 아니다. 이렇게 복음에 반응을 보여주는 경건한 사람이 있었는가하면 사울을 비롯한 산해드린 공회원들 종교지도자들 당대에 아주 지성인들이고 공회에서나 모든 생활면에서 금식과 기도와 구제로 뭉쳐있는 누가봐도 그 속사람을 분별 못하면 하나님의 대표 모델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스데반이 죽임을 당할때에 마땅하게 여기면서 거짓된 증거를 세워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라고 스데반을 판단하고 그가 죽는것을 너무 기뻐했다. .세계도처에서 순교하고 저와 여러분에게도 복음때문에 순교하기를 하나님은 원하신다. 복음이 증거되는 곳마다 복음의 능력이 들어가게 되여지면 죽음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있고 또 그런 사람을 죽이는 것으로 반 응을 보이는 자들도 있는데 왜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가? 복음이 들어가면 가정이 뒤집어진다. 복음이 들어가면 공동체가 뒤집어 진다 평생을 믿어도 변화되지 아니하는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성전뜰을 밟는것으로 위로받고 있는 유사 그리스도인 가짜가 더 많을수 있다.복음에 대해서 진정한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거부하고 강퍅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다. 예수님을 죽일때도 군중들이 하나가 되여 죽이라. 못박으라 하면서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했다. 적대감을 가지면서 사람하나 죽이고 망하는거 마땅하다고 여기는것은 사단에 사로잡혀 있는 사단의 밥이다. 그 영적 실상을 이 시대에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성경이 답이다. 요한일서 3장8절 "죄를 짓는 자마다 마귀에게 속했다. "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려고..." 착하게 살려고 죄짓지 않고 살려고 잘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실패한다. 무슨 뜻이냐면 죄로부터 자유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 마귀에게 속했기때문에 이 마귀를 멸할수 있는것은 예수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다. 이로서 예수님이 우리안에 말씀으로 임하시는데 우리 본성을 바꾸시기를 원한다. 그래서 본성을 십자가에 못박고 죽은 자로 가라고하니 죽는것이 그렇게 억울하다. 왜? 마귀에 속했기때문에.. 그래서 크리스찬은 말씀들으면서 이전보다 점점 나아지는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오시지 않으면 절대로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이다. 위선을 좋아하고 가식을 좋아하고 남 잘되는것보다 안되는것을 즐기고 평생을 교회를 다니면서도 마귀의 일을 하고 있는 심령가운데서는 여전히 미워하고 여전히 욕심.탐심을 부리고 여전히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실수 없다고 하셨는데 돈이 왜 이렇게 좋고 왜 돈의 능력 앞에 이렇게 무릎꿇게 되는가? 이것이 우리가 여전히 마귀에게 속했다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마귀를 멸하시려고 오신 예수님의 자녀가 되였는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영접이 되였는가? 아니면 여전히 나는 마귀의 밥이 되여 쓰임받고 있는가? 영적실체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3절 예배드리는 남녀를 옥에 가두고 교회를 잔멸하고 핍박하기 시작한다. 제사장의 허락하에 열심을 다한 핍박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공격을 한다. 사 울 은 ㅡ 율법준행자. 모든 동료들보다 성하다는 칭함을 받은자. 종교적인 열심이 대단한 자였다. 열심이 특심이 되였던자. 사울의 목적 ㅡ 오직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사단의 목적 ㅡ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다. 우리가 믿음안에서 복있는 자리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것. 마귀의 원어 ㅡ 적의를 가진자. 마귀의 속성 ㅡ 고소하고 고발한다. 이간한다.(물어 뜯는다.) 중상하고.모략하고 음해한다. 가식적이다. 살기가 가득하다 남 이야기하기 좋아한다 잘 꾸며낸다 삐짐이. 옹졸이. 섭섭이 사단의 하수인이 되여서 지체를 물어 뜯는 자가 있는데 이것이 가계의 저주이다. 지금 하는 행동이 마귀의 일인지 하나님의 일인지 분별이 안된다. 직분이나 손과 발은 주의 일을 하는것 같으나 천사의 말을 하는것 같으나 끝에 가서는 꼭 누구 하나를 물고 험담하고 모함하고 이간하는 이것은 다 마귀의 일이다. 이 마귀의 일에 쓰임을 받으니까 평생 예수를 믿어도 변화가 안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밖에 안되는 것이다.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에 하는것이 마귀의 일밖에 할줄 모른다. 이 마귀 퇴출은 돈으로도 안되고 의지로도 안되고 힘써도 안되고 금식해도 안된다. 그런데 이 마귀의 속성에서 건짐을 받는것이 구원이고 말씀이고 예수님이시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자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시기를 원하신다
기도: 거듭난 전도자로서 복음의 증인되게 해달라고 말씀 붙들고 기도
그러니 이 공동체는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더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려고 애를 쓰면서 가는곳이다. 흩어짐을 받으면 별의별것이 다 나타난다. 삐짐이. 옹졸이. 섭섭이 이런것들이 다 나타난다. 그런데 오늘 이 본문에 사람들은 가는곳마마 핍박받고 고난 받아 겹겹이 겹쳐서 유리하는 자가 되여졌는데 이들이 심령에 예수를 모시고 갔으니 움직이는 곳마다 움직이는 교회가 되여서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고 가는 곳마다 복음이 증거되고 갈릴리와 사와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되라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 사마리아 ㅡ 누가봐도 더럽고 혼혈이라고 상종을 안했던 자들이다. 삶의 방식이 변질되여 이방인의 방식대로 산다. 사마리아 인들이 오늘 우리처럼 예수를 안 믿는것이 아니다 가고 싶지 않은곳(삐짐이. 옹졸이가 역사를 해서 시험만 가득하다) 경계를 한 2백메터 하는것이 안전 지대인 곳 그런데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니 여기저기 가릴데없이 가서 복음을 전하니 증거가 나타나는데 사마리아의 속성 같던 내 심령이 믿어지고 말씀이 내 안에서 머물게 되여지면 역사는 일어난다. 그러니 또 역사만 일어나는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던 귀신이 쫗겨나가기 시작한다. 모든 병든 자들이 고침받기 시작한다. 복음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수 없다. 귀 신 은 ㅡ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타난다. 도를 딲는데 박박사들이다. (들은 말씀 입만 열면 성경을 좔좔 외운다.) 귀신 정체 ㅡ 굉장히 더럽고 불결하다. (생활이 더럽다.) 깨끗한 마음이 없다. 선한 양심이 없다, 정직한 영이 없다. 진실함이 없다. 주의 영이 계신곳은 어디나 거룩하다. 그러니 더 이상은 이 안에 귀신처소 만들지 말고 주의 영이 함께 하시는 성전인것을 잊지 말기를 원한다. 그럴려면 성전에서 성령이 머무실수 있도록 예루살렘하고 겟세마네 동산을 떠날수 없게끔 만들지 말고 "내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 이러면서 복음의 증인 되여지는 정말로 주님이 내 심령가운데 임재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면 생활이 깨끗하고 관계가 깨끗하고 삶이 정결한 경건의 연습을 날마다 해야 된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가? ㅡ 정결예식을 치루라. 우리가 주고 받는 멧세지 대화들이 굉장히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세상의 끝 시대에 살고있다. 악이 관영하고 성령도 충만할 자들은 충만하고. 그런데 우리는 무엇에 묶여있는가? 오늘 우리가 상황이 바뀌여서 기쁨이 되는것이 아니다. 기쁨은 나로부터 출발하는것이 아니다. 기쁨은 어디서부터 오냐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적립만 되여지면 모든 문제는 그로부터 해결된다. 복음은 ㅡ 교리와 이론이 아니다. 사건이고 역사적인 진실이다. 단순하다. 진리이다. 굿뉴스이다. 묶인데서 자유케 된다. 이 기쁨의 소식이 온 성에 가득했다고 한다. 그 흩어진 사람들을 통해서 인정받지 못하고 경멸받았던 사마리아 도성에 복음이 들어가니그 도성에는 원한 맺힌것 밖에 없고 상처밖에 없고 나도 예수를 믿는데 왜 저렇게 경멸을 하는가? 왜 저렇게 경계를 하는가밖에 없었는데 복음이 들어가니 온 성이 기뻐하였더라. 그래서 복음은 모든 믿는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된다. 그 능력과 기쁨이 있을때 우리는 이시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정복할수 있다. 이 성에 복음이 증거되기 전에는 마술을 하는 시몬이 왕노릇했다. 모든 사람이 다 거기에 무릎을 꿇었다. 가짜가 진짜처럼 역사를 했다. 참 진리이시고 주관자이신 그 주님이 우리안에서 주인되지 못했는데 들은것으로 경험한것으로 가짜가 왕노릇하는 시몬과같은 자들이 강단에 말씀으로 정체가 드러나고 마귀의 일이 멸하여져서 이 교회와 성도들 심령에 기쁨이 가득한 역사가.. 그런데 이 시몬은 자기가 스스로 큰자라고 했다. 가짜는 자기를 자칭 큰 자로 여긴다. 그런데 진짜는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주님께 가까이 가면 갈수록 자기를 낮은자로 겸손한 자로 칭한다. 그래서 바울이 주님을 만나고 믿으면 믿을수록 사도중에 지극히 작은 자인줄 알았는데 마지막 주님 앞에 서기전에는 죄인중에 괴수라고 자기를 낮추었다. 시간이 가면서 믿음의 경륜이 쌓이면서 한 일이 많을수록 나는 큰 자가 되여져가고 있는가? 낮아지고 있는가? 만약 직분과 주의 일을 했다는것으로 교만해지고 있다면 마술사 시몬과 같은 가짜이다. 그런 가짜들이 교회를 무너지게하고 교란케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들어간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죽도록 쓰임받고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이 무익한 종을 하나님 사용하여 주셔서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갈수록 낮아지고 겸손해지면 이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아름답게 들어 쓰실줄 믿는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하나님이 세우실것이다. 아무리 가진것이 많고 배운것이 많다고 한들 뭐하겠는가? 영분별이 안되고 가짜가 진짜인척하는 이것을 식별을 못한다면 무엇이 중요하곘는가? 왜 마술을 행하는자가 이렇게 큰 자나 작은 자나 다 무릎을 꿇게 되였을까? 우리는 개인적인 장래가 굉장히 궁금해서 개인적인 예언을 받기를 원한다. 내일 일에 궁금해하지 말고 오늘을 잘살라. 오늘 나를 택하셧고 불러내셨고 사용하시는 이 복음의 증인되기를 원하시는 주님앞에 최선을 다해서 주님일을 하듯이 주님 대접 하듯이 오늘을 잘 살다보면 사방에 막혀있던 문들이 언제 열렸는지 모르게 열리고 언제 그 많은 빚이 정리가 되였는지 정리가 되고 우리들의 인생 주님만이 주인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기를..그래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내 인생에 주님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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