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행9:1~9) | 김수강 | 2017-10-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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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9:1-9절 개역개정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서 있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이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행 9:3)
빌립이 예수님을 만나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되어졌고 내시가 예수를 영접하여 가정, 나라, 아프리카 대륙이 복음화가 이루어 졌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나서 변화가 되니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우리도 부모를 잘 만나면 성품과 인격을 형성하는데 영향을 받고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가정이 결정이 되고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생활습관에 바뀌고 어떤 신을 섬기느냐에 따라 나의 영혼이 결정이 되어집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 인생의 전환점이 되길 원하며 나 한사람이 예수를 만나 인생이 변화되고 가문이 변하고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 변화되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은 스펙이 대단했습니다. 유대인이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고 가말리엘의 문화생이었습니다. 또 나름대로 신앙에 확신이 있는 지성인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자기 의와 믿음이 대단했습니다. 신앙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인데 사울은 자신의 종교적인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했기에 늘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사울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소견에는 절대적이고 예수 믿는 자를 잡아오기 위해 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까지 간 행동파였습니다. 또 스데반이 죽는 것에 대해 마땅히 여겼던 자이고 그리스도인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였습니다. 자기 열심으로, 자기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홀연히 빛이 임했고 바울이 엎드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심이 아닌 긍휼하심으로 사울의 일생에 개입하셨습니다. 우리도 예배 드릴 때,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될 때,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애쓸 때 빛이 임하는데 그 생명을 만나면 자동적으로 엎드려지게 됩니다. 내 생각과 습관이 꺾임을 당하고 육신의 병이 고침을 받으며 가던 길을 돌이키고 멈춰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나의 지식, 소유, 건강, 능력, 의로움, 공로도 내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주님께 붙들임 받아야 가치있는 인생이 되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어지는 것이 엎드려짐을 당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엎드려짐을 당하게 되면 나의 인생을 주관해 주시고 내 뜻대로가 아닌 주의 뜻대로 살기 원하는 기도로 바뀌고 나의 역사가 아닌 주의 역사를 쓰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니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똑같은 장소인 다메섹을 향해 가지만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체포하고 연행하러 가는 것이었고 예수를 만난 후에는 주의 성령을 통하여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며 갔기에 살리는 역사, 위로하는 역사, 고치고 세우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똑같은 방향을 가도 하나님을 만난 자와 만나지 못한 자는 목적이 완전히 틀리고 삶의 가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도 주님 앞에 똑같이 헌신을 해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무엇으로 갚아주시냐고 조건과 계산을 따지지만 예수를 만난 후에는 이기적인 나를 구제하는 일에 선교하는 일에 이런 그릇을 써 주신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되어 집니다. 또 돈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나의 이름을 내기를 즐겨했던 사람이었기에 가는 곳마다 비방하고 판단하는 자였지만 예수를 만나 빛과 생명으로 생기가 입혀지니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자, 나의 이름이 아닌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소리를 들어도 빛을 보아도 보지 못하는 자, 듣지 못하는 자가 있습니다. 빛을 보아도 말씀하시는 자가 누구인지 소리를 들어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이 말씀을 들어도 못 알아 듣고 말씀의 맥을 못 잡는 자가 있는데 그런자 되지 말고 예배 한 땀이, 사건과 상황 하나 하나가 보고 듣고 인생의 목적이 바뀌길 원하고 영의 귀가 열리고 영의 눈이 열리는 주님의 은혜가 임하길 원합니다.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깊은 교제속에 들어가는데 이전에 내가 보던 것을 보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세계가 열렸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나의 방식으로 먹고 보았던 것이 주님의 것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사흘 동안 하나님만 바라보고 갈 수 있도록 변화 받는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사흘의 시간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고 조롱받고 채찍질을 해도 참으셨던 주님처럼 사흘만 참으면 부활의 세계가 열립니다. 주님을 만나면 자기를 끊어내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 앞에 엎드려짐을 당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고 나의 말, 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사흘만 참아 고난과 갈등이 주님의 은혜로 바뀌고 성령의 사람으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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