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김수강 | 2018-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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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말씀>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요 약> 초대교회 당시 로마의 식민지 아래 유대 종교자들의 핍박과 여러 가지 어려움이 왔는데 헤롯 또한 교회를 핍박하였습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나니 반대의 유대인들이 굉장히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죽일려고 옥에 가두웠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야 할 것 같은데 핍박하고 압제하는 환경 가운데 해결해주시지 않고 방관하고 계신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어떠한 핍박과 불같은 연단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교회는 흥왕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사명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면서 정지적인 권력, 세상지식을 의지하지 않았고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영적인 세계가 맥을 이어가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역사하시는 것은 진리와 영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력, 정치적, 경제력인데 기독교는 핍박이 오면 올수록 순교하면서 믿음을 점령하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면 주시는 것으로 이웃들에게 나누고 주를 위해 내어놓는 성공의 역사, 축복의 역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분별을 할 수 없는 혼돈된 세상을 하나님의 영과 기도 없이는 분별이 안 되는 줄 믿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영적으로 애매한 시대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할 교회가 오히려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역사가 우리들 심중 가운데서도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 육으로는 알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믿음의 영장인 사람을 세상권세 아래에 두셨을까? 고난과 핍박을 통해 우리를 깎아내시고 다듬어 내시면서 하늘에 속한 주의 형상을 입을 수 있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사역 가운데 베드로의 투옥사건을 십입해 놓으셨는데 핍박의 두 근원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심령에서도 동일하게 믿음의 여정이 일어납니다. 여지껏 교회는 유대종교로부터 핍박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떠나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듭니다. 옳고 그름이 나의 기준이 되어졌고 보고 들은 것이 나의 인격의 구성체가 되어져서 자아라는 뿌리에 덧붙여져서 이것을 끊어내는 것은 너무 힘이 듭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드리기 힘들었던 사람이 유대종교의식이듯이 우리에게는 내가 살아오고 익혀왔던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로마정치까지 합세해서 우리의 믿음을 다루십니다. 예기치 못한 고난과 생각지도 못한 불같은 연단이 열어질 때 어떤이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지만 믿음의 사람에게는 놀라운 축복과 유익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을 어떻게 대처하고 감당하고 이겨나가는지 믿음문제라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건이지만 타서 죽는자가 있고 살아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전체의 맥에서 볼 수 있듯이 흐름은 오직 한가지입니다. 각기 다른 모양과 다른 방법으로 믿음의 시작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흐름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거쳐서 안디옥에 이르게 하시고 안디옥에서는 다시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와서 베드로를 투옥되게 하시고 안디옥에서 이방인에게 생명의 줄기가 흘러가게끔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흐름이 하나로 가듯이 우리도 말씀의 줄기를 꼭 잡아서 생명을 취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헤롯왕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이고 율법을 준수하는 것처럼 위장을 했고 철저하게 헬라파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환심을 살 수 있었습니다. 헤롯의 왕가는 시대마다 그 대를 이어 교회를 핍박하고 악하게 살았습니다.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사내아이를 말살시켰고 세례요한을 죽이고 야고보를 살해하고 또 바울을 심문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갓 쓰고 도를 닦고 노름에 술주정뱅이...어디를 봐도 선한 것이 없고 헤롯의 가문처럼 망하고 망하는 악행을 행하는 가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만이 우리의 소망인줄 믿습니다. 우리로 인하여 가계의 저주가 끊어지고 빛과 소금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길 소망합니다.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선민의식을 가지고 살았던 그들이 형제의 죽음 앞에 기뻐했다는 것은 예수가 없다는 증거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고 신정정치 아래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긍지와 자부심이 가득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심령 가운데는 예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수십년 예수를 믿고 주의 은총을 입었다고 자부하지만 다른 지체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사단의 속성은 없는지? 상황마다 드러나는 우리의 속성을 보고 보좌 앞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헤롯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죽일려고 했던 유사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회를 칠하고 외모는 가꾸면서 내 속사람은 지체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헤롯 속에 역사하는 영과 다를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헤롯이 네명씩 네명씩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베드로를 체포했습니다. 또 종교적인 문제를 야기 시키지 않기 위해서 유월절을 피해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결국 초대교회 사람들은 지도자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순교하고 베드로가 옥에 갇힌 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고난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세상 방법인 권력과 물질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원치않는 자리에 들어가고 원치않는 상황을 만날 때 인간적인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뜻에 우리의 코드를 맞추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줄 믿습니다. 죽음과 핍박이 와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주의 품에 있으면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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