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역자 | 오은아 | 2018-06-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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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6:6-10절 개역개정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다에 해로가 있고 하늘에 항로가 있듯이 말씀을 잘 들으면 성령이 역사하시는 길이 보입니다. 우리의 길이 되시고 인도해 가시는 이것을 저는 영의 흐름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주인 되시는 주님의 방식과 주님의 뜻대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흐름이 우리의 인생과 신앙과 공동체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분명한 흐름의 길이 있는데 영의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게 되면 그때부터 길을 못 찾아 헤매게 되고 힘들다고 불평하며 행악하는 자가 됩니다. 망하고 무너지고 사는 것이 핍절하고 힘들고, 세상이 왜 그렇게 요란 합니까? 길을 잃어서 그런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길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 길에 우리 인생의 응답이 있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열어주시는 길에 하나님의 뜻이 있고 삶이 해석 됩니다. 요셉은 흐름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주님이 이끄시는 곳이 감옥 이던 종살이 이던 노예로 팔려가게 되던간에 환경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그 흐름 가운데에 하나님께 순종했던 요셉을 보게 됩니다. 그 순종의 결과로는 이방나라의 총리가 되고 자기 민족을 다 살려내는 길잡이가 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타락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로 세상의 조류를 좇아 어둠의 세력에 이끌려 다니던 인간이 다시 에덴동산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은 새롭고 산 길입니다. 말씀으로 열어주신 이 새롭고 산 길을 바울은 보았기 때문에 그 길을 갔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자를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던 것이 모두 멸망당할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런 바울에게 바나바를 만나게 하시는 기적 같은 일을 허락하십니다. 은둔하던 그가 바나바를 만나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어 사역자가 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면서 성령을 받게 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면서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시기 위하여 지금까지 준비시키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의 방해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복음을 증거 하는 주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만남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것이라면 자기의 시간과 자기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의 역사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카이로스’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나의 열심’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동역자가 되는 인생으로 B.C와 A.D가 분명하게 진리로 갈라져 방향전환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이 길을 가기를 기도했습니다. 다메섹에서 고꾸라졌다고 다가 아니라 수없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원하여 금식하면서 기도했던 것이 사도행전 13장에 기록된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그전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셨을까요. 아니요 함께 하셨습니다. 받은 증거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역사하실 하나님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주를 섬겨 기도 할 때 아시아로 말씀을 전하러 가지 못하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는 밤에 환상을 보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게도냐에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게 하시고 비젼을 보게 하십니다. 행할 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우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이 함께 하시는 성령의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기도하십시오. 내 생각, 내 뜻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기를 간절하게 무시로 기도하면 어떤 상황에 접하게 될 때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나’ 만이 원하는 정답의 기도가 아니라 누가 봐도 하나님의 길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 수 있게끔 보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하여 생각과 영혼과 마음을 사로잡아 주셔서 역사하여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내가 찾기만 하면 그 뜻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10절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를 말합니다. 바울이 실라를 데리고 1차 전도지의 회심한 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믿음을 굳게 하려고 복음을 전하는데 하나님께서 드로아를 거치게 하시고 그 가는 길을 막으시더니 여기에 누구를 준비해 놓으셨느냐하면 함께 동역할 누가를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이 이런 동역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카이로스의 시간을 살아가는 바울에게 때로는 자기의 소견대로 가는 길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갈 수 있게 하셔서 사도행전의 저자가 되는 누가를 만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누가는 바울의 사역하는데 최고의 동역자가 됩니다. 가고자하는 길을 예수의 영이 그렇게도 막고 막으시더니 이렇게 끝까지 함께 할 자, 고난가운데도 함께 할 자, 육신에 가시를 주심으로 자고하지 아니하도록 아픔을 주셨지만 의사를 붙이심으로 감옥 에서도 치료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만나게 하여주시고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함께 동역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 할지라도 동역 없이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빌레몬서 1장 23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갇힌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고 하고 디모데후서 4장에서는 다 떠났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고 합니다. 나와 갇힐 수 있고 나와 고난을 함께 할 수 있는 이런 동역자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런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과 동역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꼭 필요한 것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성자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증거 할 때마다 ‘나는 나의 것을 행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뜻을 행하기 위해서 왔다’ ‘나는 이 땅에 있는 동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만 한다’ ‘나는 내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 ‘아버지가 나와 함께 한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이리떼에 보내지만 나와 함께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 안에서 함께 일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축복의 눈이 열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모든 것을 이루시기 원하여 열심히 쉬지 않고 주무시지도 않고 밤낮으로 일하십니다. 우리 호흡과 함께 하시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장하시고 간섭하시고 때로는 징계도 하시고 책망도 하시면서 큰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하나님이 어떻게 열어가실지 어떻게 나를 쓰시고 역사하실지 주께서 원하시는 일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깨어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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