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에 대한 두 반응 | 오은아 | 2018-07-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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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17:1-12절 개역한글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 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 어떤 것이며 교회가 어떻게 세워져 가는 것인 가를 우리에게 밝히 보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교회되게 하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다닌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자족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 다니는 자가 아니라 교회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빌립보에서 박해를 받은 바울의 일행이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데살로니가에 이르러서 체류하면서 청빙 근로를 통해 생활하며 전도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동족구원에 대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증거합니다. 오늘 본문에 새 안식일에 그리스도께 집중하면서 복음을 증거했더니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주간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삶 따로 말씀 따로 가 아니라 말씀이 생명의 길이고 말씀만이 우리를 살리는 길 이기 때문에 치열하게 육을 쳐서 말씀에 순종하며 삶 속에서 말씀으로 해석 받을 수 있도록 말씀에 붙어서 삶을 정복하고 이겨내려고 찬양하고 기도하다 보면 여러분 안에 있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사상들이 흔들리고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3절에서 예수가 왜 이 땅에 오셨고 왜 십자가에 죽어야 했으며 왜 부활해야 하는지를 증명합니다. 무작정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면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를 저주의 결박에서 풀어 놓으셨고 그 이름을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고 우리도 부활하여 사망권세 깨뜨리고 저주를 끊어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안식일에 주신 말씀을 붙들고 온 몸으로 삶을 살아가며 증거했더니 지성인들이 돌아옵니다. 경건한 헬리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감화를 받아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지성인들을 흑암의 권세에서 걷어올리는 일은 그들의 말에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의 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기쁨이 충만하게 되고 그 말씀을 받아서 많은 환란 가운데에서도 주님을 본받는 자가 되어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시냐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온 몸으로 삶을 살아가면서 나타내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게 됩니다.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중생된 신생활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교회생활 하고 있지만 변화도 없고 하나님이 함께하는 삶이 없다면 이것은 죽은 신앙입니다. 어느 영혼도 살려내지 못하고 나도 변화의 길을 걷지 못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 앞에 또 다른 반응이 일어납니다.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의 특징이 5절에 기록되는데 ‘시기’ 로 나타납니다. 시기가 발동되면 파리떼 처럼 주위를 전염시킵니다. 선은 이렇고 후는 저렇고 하며 듣는 사람들에게 전염시켜서 동질감으로 당을 지어 떼를 지어 소동을 일으켰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의 일행이 우거하는 야손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을 찾지 못하니 복음을 전하며 해를 끼친 것도 아닌데 거짓으로 모함하고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라고 야손과 그 형제들을 끌어내어 법정에 고소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짓이 아니라 사단의 역사인 것입니다. 세상은 거짓이 가득합니다 지금 당장은 위기를 모면하는 것 같아도 모든 일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이 드러나듯이 거짓은 세상역사에서 승리 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당당하게 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빛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살아가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야손이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외경에 보면 보석으로 풀려난 야손이 바울을 찾아가 떠나가기를 종용했다고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바울을 따라간 것도 아니고 모신 것도 아니고 결국은 10절의 말씀처럼 밤에 바울을 내보내게 됩니다. 밤에 내보내는 야손의 마음도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떠나는 바울의 일행이 정처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간 베뢰아에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을 모아 두고 계셨습니다. 여러분 배신당했다고 어려운 일 당했다고 속임 당했다고 원통해 하지 마십시오. 화가 복이 되게 하셔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적지 않은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을 얻게 하시고 베뢰아에도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는 것처럼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나를 온전케 하시는 과정인 것을 알아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인생을 보면 한 번도 좌절했다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힐 때도 좌절하거 불평하거나 의심이나 요동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을 오직 복음 때문에 그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한 번도 아버지를 향하여 ‘어찌하여’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을 받을 때도 해야 하나 말아야하나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요동을 합니다. 참아주고 감당해 주고 가다가 뜻이 아니면 멈출 줄도 알고 주님의 뜻을 기다릴 줄도 알아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로 참된 교회를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심령이 여호와 임재가 있는 성전이 되기를 사모하면서 써주시는 것 감사하며 세상 끝날 까지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당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수많을 고비고비 모든 고난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 교회로 완성을 이루셔야 합니다. 성경 들고 평생을 교회 다닌다고 자족하지 말고 행하는 구제와 봉사, 모든 과정은 나를 교회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심령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역사를 좇아 믿음으로 반응하여서 머물고 있는 자리마다 아름다운 흔적이 있고 만나는 사람마다 영혼을 소생시키는 이것이 믿음의 역사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모델로 쓰시기 원하십니다. 여러분들이 가정의 모델이 되어 지고 어디를 가나 ‘저분처럼 믿어야지 저분만 보면 하나님을 만난 것 같아’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평생을 성전을 드나들고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었어도 엎드러 죽는 자 되지 말고 기도하고 찬양하십시오. 옥토가 되어 사람들을 옳은 데로 이끌어내는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 권면합니다. 여러분들 가계에 흐르고 있는 하나도 흠모할 것 없는 내 뜻대로 내 방식 내 생각대로 안 되면 원망하고 행악하는 것 시기함으로 불평하고 원망하며 대적할 수밖에 없는 이것 가지고는 절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하시고 어떤 원통하고 처절한 일을 당한다 할 찌라도 환경과 사람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시고 말씀을 받은 그 한 사람이 되셔서 여러분들을 인하여 모든 흑암이 떠나가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부르시는 그날까지 기도의 사람으로 살아 범사에 주님의 뜻을 분별하며 찬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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