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라 | 이명빈 | 2021-03-24 | |||
|
|||||
[성경본문] 요한복음18:12-27절 개역개정12.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13.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14.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15.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 16.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 17.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18.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19.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21.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 보라 그들이 내가 하던 말을 아느니라 22.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아랫사람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이르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2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언하라 바른 말을 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24.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25.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26.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27.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저주의 통로인지도 모르고 늘 자신이 왕이되여 내뜻대하는것이 저주의 통로였다. 그런데 이제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실려고 말씀으로 길이 되셔서 오늘도 이끌어 가신다. 예수님은 구원을 위하여 그 목욕과 치욕의 길로 자원하여 들어가셨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누구를 부려먹고 군림하고 십자가를 피하여 갈려고 하지만 내때가 있고 내일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섬기는 것을 훈련으로 주셔서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 가리키는 선생, 부려먹는 상전이되지말고 우리가 잘 섬기는 종이 되여야 예수님을 만날수 있다. 예수의 영이 우리안에 오신다. 주님이 지신 그십자가로 말미암아 내가 평안을 누리게 되여지고 이제 죄에 묶인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매여서 진정한 행복자가 되는것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깨우쳐 주신다.
안나스와 가야바의 법정에서 많은말로 예수님을 심문한다. 니가 하나님이 아들이냐?수염을 뽑고 침을뱉고 뺌을때리고 해도 어차피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때문에 예수님은 잠잠하신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 치욕스럽게 다 당하는 예수님을 보면서 아멘이 안된다. 내가 이꼴을 보려고 삼년반 예수님 따라왔나,이런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수치스러울만큼 모멸감을 느낀다.사단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린다.우리의 가장 약한점을 타고 들어와서 어떻게하든지 예수님을 부인하고 실족하게 하기 원하여 기회를 보고 있다. 이렇게 베드로가 가장 실망했던 절대 절명의 그순간에 한여종을 통하여 탁 때려본다. 나도 모른는중에 <나는 아니야> 바로 부인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가 이렇게 끌려가는것이, 침을 뱉고 핍박을 받고 목욕을 당하는 그때가 바로 내가 죽고 다시 사는 구원의 사건이 되여져야 되는데 내죄도 모르고 말씀의 권고도 무시하다보니 결국은 예수님을 부인하는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베드로는 스스로 자신을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생각했다.유다와 다를바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베드로는 자신의 본질을 몰랐다.예수님은 그를 흔들어 깨우기를 원한다. 자기열심,자기열정이 누구보다도 대단했기때문에 자기믿음으로 입만 열면 남을 무시하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베여 있다. 나는 죽는데까지 예수님을 따라 갈것이라고 호언 장담했다. 예수님이 닭울기전에 네가 나를 세번이나 부인할거야 하는말에 절대 그런일이 없다고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했다.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라가기보다는 자기소견을 신뢰하고 자기믿음을 우선으로 두었다. 그런 베드로에게 세번 확실하게 하나님을 부인하는 환경을 열어주신다.여종앞에서 부인하고,사람들앞에 물을때 맹세하여 부인하고,말고의 친척이 이야기 할때 저주하여 부인한다. 우리안에 악은 말씀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형상만 자라는것이 아니라 악도 자란다.예수의 제자의 신분을 속이고 대적하고 조롱하는 무리중에 들어가 불을쬐인다.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비껴가는 내정체를 분명히 보셔야 한다. 그래서 그정체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은신것을 확인하셔야 한다. 장자속에 숨어있는 탕자의 속성,집나간 탕자가 탕자가 아니라 집에서 충성을 다하고 룰을 다하는것 같지만 그심령가운데 하나님 말씀이 떠나고 하나님이 사랑이 없는 탕자의 속성을 보아야 한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의 정체를 직면할때부터 시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할려면 성령이 역사가 없이는 분별하기가 힘들다.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역사가 나타난다. 마귀는 자꾸 덮개을 만들어서 우리로 예수를 못만나게 한다.이리저리 합리화하고 자기의 헌신과 기도로 아는것으로 자꾸 꾸미고 덮어서 주님의 길을 못가게 만든다. 우리자신을 말씀을 통하여 직시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인정해야 한다. 수십년 예수믿어도 회감만 받아가지고 회만 덕지덕지 칠하여서 내면은 썩어가는 하나님의 원수 니호야단이 도를 닦고 있는데 겉만 가지고 헌신하고 봉사하고 직분갖고 자기가 거룩한척 ,믿음이 있는척 속게 된다. 생명의 단계 부활의 신앙의 단계는 게속 본질을 걷어낸다. 이제는 나자신이 너무 싫어진다.자기자신에게 실망하게 된다. 예수이름으로 자기자신을 저주한다.왕처럼 자기자산을 신봉하던 자가 자기스스로 자아를 우상으로 섬기는자가 예수를 생명으로 진정만나고 나면 자기를 저주하게 되면서 하나님사랑의 나라로 옳기워지게된다.우리는 자기를 숨겨놓고 자기정체도 자기가모르는 저주아래 갇힌자이다. 헤여나올줄 모른다.변명하지 말고 내가 그로라 하면 되는데 내가 아니라 하면 그때부터 복잡하게 된다. 하나님이 새롭게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가면서 새땅과 새하늘로 지어가시는데 나는 아니라 그러니 수십년 예수를 믿어도 변화의길 못간다. 더이상 자신한테 속지 말라.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막고 있는것은 다른사람도 아니고 환경도 아니고 내 자신이다. 자신과 말씀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베드로의 정체가 말씀하신대로 다들어났다.호언장담하면서 자기를 대단한 믿음의 수준에 올려놓았지만 하난님의 말씀대로 안된것이 없다. 저주하면서 부인하는 자리까지 다 드러났다. 할말없는 인생이 되는것이다. 이렇게 다드러나는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나를 포기할수있는 결정적인 단계까지 오게 하신다. 우리의 본질은 죄밖에 없다. 이것을 아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나는 죄인중에 괴수라고,나는 회계할것밖에 없다고, 나는 은혜로 산다고, 은혜아니면 갈수없다고 진정한 겸손으로, 겸손이 실상이 된다. 은혜입은자는 그때그때마다 죽을길밖에 안열어놓으신다.우리들이 정말로 구원받을 장자총회로 들어갈 이기는자가 되기 원하신다면 아버지는 우리앞에 죽는 사건밖에 안주신다. 베드로가 자기본질을 모를때에는 늘예수를 가리킬려고 들고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 써내려가는데 날마다 이래라 저래라 그리마옵시고 그리맙소서 했던 베드로가 자기실상을 보게되는 환경을 열어주시니 세번부인한것이 저주가 아니고 축복인것을 알았다.우리도 죄가 드러나는것이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다.그죄가 더이상 거짓과 위선이 왕노릇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때문에 내가 거짓말 하면 만민이 다알게 망신을 주신다. 그런데 이것이 축복이다. 우리가 얼마나 시마다 때마다 나는 아니라 예수님을 부인하고 나를 드러내면서 살았는지 모른다.이제는 시인할줄 알아야 한다. 나를 죽이려고 몽치를 들고 오는자에게 내가 그로라 인정하는 구원의 역사가 우리삶속에서 일어나기를 원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