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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니라 최은숙 202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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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yeisung12.onmam.com/bbs/bbsView/144/5889889

< 나는 아니라 >

 

 오늘의 주제는 나는 아니라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나는 아니다라고 합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해서 함께 가자고 하시는 주님은 구원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 하십니다.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 있는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수난 주간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위해서 자원하여 모욕과 치욕의 십자가의 길을 들어가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을 통해서 우리가 갈 수 없었던 생명의 길을 우리에게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죄에 묶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매여서 진정한 행복 자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날마다 깨우쳐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잡히셔서 결박당하시고 수염을 뽑히시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모욕을 받으시는데 그 모습을 보는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이 수치스럽고 모멸감을 느끼며 좌절을 합니다. 그러는 중에 너도 저 사람의 제자라고 말하는 여종에게 나는 아니다라고 베드로는 부인합니다. 가장 실망하고 좌절하는 그 때에 사단에게 기회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다가 끌려가고 핍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때가 내가 죽고 다시 사는 구원의 사건이 되어야하는데 자신의 죄도 모르고 말씀의 경고도 무시하다보니 결국 예수님을 부인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가롯 유다나 베드로는 다를 바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본질을 몰랐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기보다 철저하게 자신을 신뢰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확실하게 부인하는 환경을 열어 주십니다. 예수님을 좇을 때 멀찍이 좇아가는 것과 불을 쬐고 있는 이런 모습이 예수님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고 있는 무리들에 들어가 불을 쬐고 있는 것입니다. 여종에게도 부인하고, 사람들이 물으니 맹세하며 부인하고, 말고의 친척이 물으니 저주하며 부인합니다. 우리 안에는 그리스도의 형상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악도 자랍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을 비켜가고 있는 내 정체를 분명히 보아야합니다. 그 정체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에 대해서도 확인을 해야 합니다. 장자 속에 숨어 있는 탕자의 속성을 보아야합니다. 집에서 효를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고 사랑이 없는 속성을 보아야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의 정체를 직면 할 때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다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것에 베드로는 호언장담하면서 자신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대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호언장담하면서 믿음을 앞세워서 서원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영광을 위하여 살겠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를 지시고 만민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십자가 지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디서나 조용합니다. 사람의 일은 죽는 것이 싫어서 십자가 거부하고 자기 말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 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힘듭니다. 내 귀에 듣기 좋고 내 눈에 보기 것을 송아지 우상 숭배입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빛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 정체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내가 누구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목자를 치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말씀하신 그대로 제자들의 내적 상태가 다 드러납니다. 이것이 영적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본질을 찔러서 안 나올 것 없이 다 나오게 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깜짝 놀랄 것들이 다 나옵니다. 이것이 자신을 직시 할 때 보는 것입니다. 수십년 신앙생활을 했어도 회만 칠해서 내면은 썩어 하나님의 원수가 있고 겉으로는 거룩한 척 믿음있는 척 속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단계 부활의 생명은 본질을 계속 걷어 내십니다. 자신에게 실망하는 단계까지 갑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자신을 저주하게 됩니다. 자신을 왕처럼 섬기면서 신봉하던자가 예수를 생명으로 말씀에서 만나면 자신을 저주하고 하나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빛으로 우리의 본질을 직시하게끔 끌어내시면서 두려워 말고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마라 모든 것 내가 대속의 제물로 지고간다 하시고 예수를 인정하고 말씀만을 인정하라하시며 아프고 더럽고 치졸한 것 거짓 증언하는 것 도적질 음란 다 지고 처리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본성을 가리고 숨기다 드러나면 합리화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를 속일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다 내어 놓으라 하십니다. 십자가가 영광이 되도록 깨끗하게 비우고 저주 아래 살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진액으로 살아보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평안이 되고 안식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더 이상 숨기고 가리고 도망 다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십자가 앞에 다 내놓으면 예수님께서 다 지고 가신다고 하십니다. 있는 그대로 시인하면 그때부터 자유와 안식은 시작 됩니다. 우리는 숨기고 거짓말 하고 변명하게 되는데 내가 그로라하면 되는데 나는 아니라하면 그 때부터 복잡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지어가 새 하늘 새 땅이 되기를 원하시는데 나는 아니다라고 하니 수십년 예수를 믿어도 변화의 길을 못가는 것입니다. 나는 아니라는 사람은 구원과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자신에게 속지 말아야합니다. 구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말씀을 가지고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베드로의 정체가 다 드러나니 할 말 없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토기장이 만든 그릇에 불과합니다. 그릇이 대단한 것이 아니고 내용이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를 예배로 초청하는 것은 저주받은 귀신 안에 있는 우리를 귀신을 뽑아내시고 말씀을 담은 성전 되게 하셔서 복된 인생으로 복의 통로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불러내신 것입니다. 다 드러나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나를 포기 할 수 있는 데까지 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를 알면 설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건을 통해서 다 드러나게 하시고 하나하나 정리해 가십니다. 말씀으로 근본된 토지를 갈아엎어 다 드러나면 시인하고 아멘 하고 가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대로 질서가 잡히고 정리가 되어갑니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신만 사랑하고 자신만 아는 사람입니다. 입으로만 신앙을 외쳤고 주님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방식이 중요하고 자신의 뜻만 중요해서 입만 열면 자신을 앞세우고 거짓말을 평생하고 살아 온 것이 우리입니다. 어떻게하면 내가 만족하고 즐거울까? 어떻게하면 기득권을 가지고 누려볼까? 몸은 성전에 와 있어도 온통 우리 마음을 주장하는 것은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을 모시려고 말씀이 나를 통하여서 나타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관심은 오직 우리자신에게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속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은 속지 않으시고 주님은 우리를 세상에 큰자 되게 하려고 부르신 것이 아니고 우리를 확 뒤집어서 벗기시고 우리 속에 주인 되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영생으로 갈 수 있고 이것이 최고의 복의 통로라고 하십니다. 구원의 공동체에 와서도 구원의 세계를 놓치고 허비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은 허비 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본질은 죄 밖에 없는데 이것을 아는 사람은 죄인 중에 괴수임을 고백하며 진정한 겸손이 실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 할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근본 사랑이 없는 것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예배드리고 헌금하고 충성 봉사하는 것에 예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로 내려가 주님을 만날 때 그때부터 주님의 제자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야 부활의 생명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은혜받은 자에게는 죽는 길만을 열어 놓으십니다. 영성의 기본은 내 본질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의인 된 자리에서 죄인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에서 왕 노릇하던 자가 피조물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이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부인 했습니까? 예수님의 수제자라도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고 자신을 사랑했고 믿음이 없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환경을 주셔서 자신의 실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베드로에게는 축복입니다. 죄가 드러나는 것이 축복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자 닭이 울었는데 이것은 밤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입니다. 새로운 역사가 시작 된다는 소리입니다.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내가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내가 아니라하지 말고 내가 그로라인정 할 줄 아는 구원의 역사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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