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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냐 바라바냐 최은숙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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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냐 바라바냐 >

 

 오늘날 예수 믿는다 하면 재수 없다고 하는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십자가로 구원의 완성이 부활로 연결 되어져서 예수 믿으면 부귀영화 누리려고 하는 영적 잠자는 자가 깨어나야 하는 절실한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부활 신앙이 우리에게 생명으로 오면 세상을 이기는 이김이 있어서 더 이상은 생존 세계에 매여 종노릇 하지 않는 참으로 자유한 자가 되는데, 영생이 믿어지지 않으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으며 세상 사람보다 더 악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세계 인간의 욕망은 유한합니다. 영원히 살 것 같지만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이 유한한 세계에서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욕망은 밑 뚫린 독에 물붓기로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욕망을 채우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욕망은 생명을 줄 수가 없습니다. 내가전심으로 찾고 찾으면 만나 주신다고 하셨던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야합니다. 인간은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명 걸고 거부하는 가문이나 심령들은 자신들이 귀신의 밥이 되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가 아니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는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나라 아니면 세상 사단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전부인줄 알고 있지만 성경은 보이는 세계가 허상이라고 말씀하시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실상으로 말씀하십니다. 실상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적세계가 열려야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만대로부터 감춰져있던 영적 세계인 창조 때부터 하나님이 이 세상 역사를 주관해 가시고 흑암에 갇혀있던 영혼들을 살려내셔서 천국에 입성 시키시는 모든 과정이 성령을 통하여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하면 교회를 수십년 다녀도 생존 세계에 매이게 되고 시험을 당하면 쉽게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은 어두운 사단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어둠에 묻혀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구원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 중에 우리가 구원을 받아 여호와를 경외하며 찬미하는 무리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시작은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 되었는데 그 때부터 영적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우리는 세상 흑암의 권세 아래에서 어두움의 종노릇을 하였는데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을 깨트리시고 승리를 선포하셨던 주님 그리고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신 것은 흑암의 권세를 승리하신 구체적인 선물로 우리에게 인을 쳐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공동체 하나님나라 하나님의 영토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심령이 되고 가정이 되어 하나님나라가 세워지는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공격 지점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영적전쟁이 치열하게 일어나는 것이 세상이 아니고 교회입니다. 우리 신앙 승리의 키워드는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 생명이 우리 심령에 오시면 영적으로 완전히 죽어 있던 상태에서 우리에게 새 생명으로 부활하게 되는 미션을 가지고 오늘 이 시간에도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면 적대 진영에서 그리스도 진영으로 넘어 오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나라에서 사랑의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배자리에 온 것이 우리의 소속이 세상나라에 있지 않고 하늘나라에 속했다는 것을 확인하고 표명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홀로 골고다를 걸어가셨듯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도 홀로 십자가를 지고 세상으로 가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에서 빛의 자녀로서 어두움을 이기고 감당하고 살아 갈 수 있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야 하는데 부활 신앙이 열쇠입니다. 이것이 무기입니다. 부활생명 없이는 흑암의 권세에서 이겨내고 감당 할 수 없습니다. 다 이루신 핵심이 사망권세를 깨트리신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을 치열하게 하셨습니다. 세상나라에서 보면 십자가는 저주 받고 패배하고 무너진 것인데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가 승리한 것입니다. 주님은 빌라도와 가야바와 안나스에게로 끌려 다니시며 고난을 받으신 것 같지만 주님은 그들 앞에 진리로 서 계신 것입니다. 실상을 허상으로 보는 그들에게는 주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거대한 종교 세력에 그들이 승리 한 것 같지만 결국은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시고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신앙도 보이는 세계가 아닙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세계를 사모하며 가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처럼 갈 수 있도록 영의 세계를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육 있는 동안 이루고 믿은 대로 준비하고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주님은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주시고 열어주시고 심어주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흩어진 제자들을 찾아가십니다. 믿는 것 같은데 믿지 못하는 우리에게 주님이 찾아오십니다. 부활의 목적이 제자들에게 믿음 주시기를 원하셨고, 자신 속에 있는 영을 부어주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말씀은 분명 생명이고 하나님이라 하셨는데 말씀을 들어도 받지 않고 소경이고 귀머거리인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열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신앙으로 눈 열리기를 원하셔서 40일 동안을 믿음이 불확실한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굳게 하시고 모으시고 세우신 것처럼 이시간이 우리들에게 의심이 풀어지고 불신이 풀어지는 시간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의 연약한 믿음이 더 이상 죽은 신앙이 아니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담은 그릇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부활 신앙에 대한 소망이 있어야합니다. 신앙의 성숙은 보이는 세상이 허상인 것을 압니다. 세상에 생명 걸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으로 보고 가는 것이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영입니다. 부황신안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우리들이 열어야할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 속에 욕망은 감추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는 생활을 하면 거룩한 삶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속에 감춰진 욕망은 감춘다고 감출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가 도래하면 안 들어날 것 없이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유대인들이 몸의 정결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철저했지만 그들의 속마음에는 미움과 시기와 살인의 영과 부정한 것이 가득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오셔서 그들의 실체를 보여주시는데 회칠한 무덤이라 독사의 자식이라 하십니다. 주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 속사람이 정결하게 되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생각하는 정치적인 왕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으로 희생으로 섬김이 무기가 되어 이 땅을 정복해 나가는 나라입니다. 사랑 때문에 체질이 녹고 사랑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나라를 섬김과 긍휼과 사랑으로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의 통치가 우리의 삶 속에 구석구석에 미쳐져야합니다. 우리 삶 전체에 어디를 가든지 긍휼이 있고 섬김이 있고 사랑이 있고 희생이 있고 위로가 있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겉만 그리스도인으로 세상 나라로 변질시키는 세상의 영으로 인해 몸은 교회에 있지만, 내면은 세상의 영으로 공동체를 더럽히고 훼방하면 안 됩니다. 내 삶의 영역은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아야합니다. 성경은 오늘 민란이 두려워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형 언도한 빌라도를 언급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라고 혈안이 된 유대인들을 빌라도는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민중들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사형을 요구합니다. 유월절에 죄인 하나를 사면하는데 누구를 놓아 줄까하니 민중들이 바라바라고 소리를 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으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시간 카이로스에 의해 예수님은 죽음을 향하여 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주려고 부활의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을 잘 갖추어서 예배 잘 드리고 헌신 봉사하고 충성하는 신앙의 행위로 사람들 앞에서는 스스로 경건한 척 믿음 있는 척하면서 은밀하게 내면의 세계에서 저지르고 있는 행악은 무엇인지 돌아 봐야합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이 빌라도를 심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육신을 쓰고 오심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네게 한 말이냐고 물으십니다. 정말로 주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실상으로 믿는 믿음 생활을 하고 있는가? 남이 가자고 해서 그저 따라와서 있는가? 구원이 확실해서 생명 걸고 이 자리에 있는가?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영생에는 관심이 없는데 주님은 빌라도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주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속한자가 하늘에 속한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왕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민중들은 다윗왕처럼 이세상의 권력과 재물이 보장 되는 왕국을 세워 달라는 것입니다. 이 시대도 그 때와 똑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과 영생에는 관심이 없고 지나갈 이 세상의 것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냐? 바라바냐? 물으니 바라바라고 소리칩니다. 바라바의 이름 바는 아들이고 라바는 아버지라는 소리입니다. 인간 세상의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고 이 세상 권세를 쥐고 민란을 일으키면서 사람을 죽이고 식민지에 대항하는 메시아 이 세상의 권세와 형통을 주는 메시아를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라바와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와 하늘의 참 메시아를 대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구를 내어 줄까하면 이 세상에 큰 자되게 해주는 바라바를 달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내면에는 영생을 주시는 주님 보다는 세상 형통과 욕망을 채워주는 바라바를 택하는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죽자고 하는 예수는 싫습니다. 매순간 내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나에게 유익이 있는 바라바 같은 메시아를 섬기고 싶은 것입니다. 바라바의 열매는 눈에 보이는 돈이고 권력이고 인정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부르는 것은 신령이고 우리가 선호하는 것은 오매불망 바라바를 구합니다.

 

 그러나 참 진리를 세우는 것은 바라바를 쫓아내고 하나님 나라세우는 것입니다. 주님나라는 내 몸을 떼어주고 내 피를 떼어줘서 살려내는 역사입니다. 믿음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나라입니다. 미움과 불평과 원망과 시기가 다 사라지고 서로 돕고 공존하며 사랑하고 섬기는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와 있습니다. 이것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안보이고 들리지 않는 우리들에게 날마다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시면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무덤에 더 이상 머물지 말고 부활의 생명으로 일어나서 사망을 이기고 훨훨 날아다니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욕망과 음란의 무덤에 매여 있지 말고 보이는 세상이 진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잘 감당하고 이기고 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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