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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명빈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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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21:15-25절 개역개정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24.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25.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을 세번이나 부인하고 저주하고 떠난 베드로를 주님은 찾아가서 네가 어떻게 이렇게 패역으로 갚나 하지 아니하시고 처절하게 절망과 낙망가운데 떨어져 있는 베드로를 회복시켜 주시는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21장으로 마무리합니다. 20장부활에서 바로 초대교회 오순절 다락방에 부활의 성령이 임하시는 사도행전으로 넘어갈수도 있었는데 왜 21장을 여기에 기록해 놓으셨을가? 우리 공동체에서 말하는 생명의 흐름, 생명의 맥 흐름을 쫒아라 강조 하시는것처럼 말씀이 운행하시는 그역사 부활하신 주님께서 어디를 가시며 누구와 함께 하시며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이 부활에 생명의 노선을 21장에 통하여 보여주는것입니다.

 15절:베드로의 주님의 대한 사랑은 특심이였습니다. 다버릴지라고 나는 버리지 아니할것이고 죽을지라고 나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이 호언장담했던 베드로의 고백이 위로부터 능력입히운것이 아니라 자기천품을 의지하여 자기열심으로 고백한 고백이였습니다. 넘 귀하고 남의 할수 없는 고백을 했지만 하나님은 베드로의 천품에서 나오는 천연적인 힘을 처리하기 위하시는것입니다. 자기열심, 자기힘을 의지한 베드로의 열매는 주를 배반하고 저주하는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환경을 통하여 너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뜻을 이룰수도 없고 주의제자가 될수도 없고 사명 감당할수 없다는것을 알게하시려고 아주 철저하게 실패하는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를 통하여 갈리리에거 만나자고 했으면 주님이 역사하실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베드로의 본성이 여기서 들어나는것입니다. 육으로 길을 열기시작하면서 제자들을 선동하기 시작하고 분별없는 제자들이 따라가는 이런 육이 처리되여야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소견이 중요해서 주장질을 하고 지적질을 하는데 이런것들이 하나님께서는 처리되기를 원하셔서 나의소견대로 길을 열고 간것이 잘안된다는것을 주께서 막으시고 보여주십니다. 오늘도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영접할수 있고 말씀을 알아듣는 복된귀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15-17절에서 주님은 세번이나 부르십니다. 베드로는 거듭난 이름입니다.완전히 육으로 떨어져서 제자들을 선동하여 고기잡으로 끌고 가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라고 부르시는것입니다. 내가 죽기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자기역사를 쓰는 베드로가 자기스스로 나는 저사람들과 달라라고 구별시키는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교만해지면 배울려고 하지않고 자기는 다된것처럼 나는 너랑 달라하면서 늘 주장하고 가리킬려고 듭니다. 실패후 베드로는 반석위에 교회를 세운다는 새이름이 넘 부담스러운것입니다. 나같은것이 무슨교회를 세워, 신앙안에서 영적직분이 너무 부담스러워지고 수치스럽고 이런 베드로의 현주소를 가르쳐주시기 위하여 요한의 아들 시몬아, 처음 시작하던데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자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마26:31양떼를 치면 떠나리라 말씀하는데도 세번이나 틈만 나면 사단에게 잡힐수 밖에 없는 이런 베드로를 회복시키기 원합니다. 반드시 다시 회복되여서 성전에 기둥이 될거야 많은 제자들이 수장이 될거야 베드로에게 초점을 맞추시고 중점적으로 베드로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막히고 묶여있고 눌려있는 우리들에게 주저앉아 침눈에 빠진 우리들에게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부르시고 회복시켜 주시는것입니다.

  15-16:주님은 베드로에게 니가 의지하고 바라보고 가지고 있는 그어떤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냐 세번이나 물어보십니다. 이는 베드로가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자기의 속성을 들여다보고 자기를 상기시킬수 있기를 원하시고 그래서 세상에 그 어떤것보다도 예수님이면 됩니다의 고백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심령상태가 어떠한지 아십니다. 주님은 나의 현주소를 아십니다 하는 베드로에게 내양을 먹이라 그러시는것입니다. 주의 사랑으로 회복시킨후에 직분으로 회복시키는것이 아니라 물질로 회복시키는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믿음없는것을 회복시킨후에 주님께서 새로운 미션을 주십니다. 내양을 먹이라 이것은 누구에게나 붙혀진 심령에게 생명으로 양육을 해라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두번째로 또 물으시고 내양을 치라 교회의 말씀을 통하여 그심령을 하나님이 거처할수있는 성전으로 세우라는것입니다. 세번째로 내양을 먹이라는것은 말씀으로 양육함으로 교회를 세워서 그심령가운데에 음식이 풍성할수 있도록 돌보고 먹이고 자라게 하는 이일을 맞기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사람이 말씀을 먹고 끝나는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내안에 성전이 되여지고 내안에 생수가 있는 생명샘이 되여져서 날마다 흘러나가는 모든언행으로 상대방을 살려내고 심령성전이 세워지는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내가 지금먹이고 양육해야 될사람을 우리에게 붙히시는것입니다. 이양을 치는것이 어떤복이고 이양을 먹이는것이 어떤 복인것을 베드로는 깨달았습니다. 그러니 말씀의 젖을 먹으면 자라게 된다는것은 베드로가 자기서신을 통하여 구구절절 이야기 하는것입니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장성한자가 되여져서 단단한 식물 어떤시련도 어떤장애물도 걸림돌도 넘어가는 유유히 주의 생명을 따라가는 자가되여 지면은 심령성전이 건축되는 역사가 일어나는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통해서 우리를 통해서 양을 먹일수 있는 젖이 되기를 원하고 정말 교화가 건축되여 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나에게 맞겨준 양을 먹일려면 전에는 니가 원하는 길로 스스로 갔지만 이제는 앞으로 니가 원치않는 길을가고 원치 않는곳에서 죽어지고 썩어져 야만이 내양을 먹이고 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것입니다.

17-18: 예수님만나기전에는 나의 소견대로 나의 성향대로 신앙생활을 해왔지만 이제 오후길을 가게 되여서 성령을 만나서 주의영이 나를 인도해가게 되면은 내가 원하는길을 가는것이 아니라 내가 원치않는 길 십자가를 지고 갈수있는 길로 인도해가신다는 것입니다. 두팔을 벌렸다는것은 내가 어떠한 죽음으로 갈지, 네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갈것이라는것을 예언해주시는것입니다.

  19절: 주님이 이제 나를 따르라 했으니 내가 이제 따라야 되겠구나가 아니라 이미 따르는 길을 열어놓으신것입니다. 순종하고 가다보면 따를수 있는 능력을 입혀주시는 이제는 말씀이 그대로 되니라 장조의 세계를 경험하셔야 된다는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속에 임하셔서 함께 걸어가시는것입니다. 베드로를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사명을 위임시킨후에 전후후무한 축복을 받을것이야 이러시는것이 아니라 베드로의 순교를 예언하시고 죽음으로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것입니다. 우리를 믿음으로 양육하는 끝에는 십자가의 죽음인것입니다. 그러니 크게되고 높게되고 영광을 취하는것이 아니라 진정한 영광은 내육이 죽는길이라는것입니다. 진짜 베드로는 로마에서 사역하다가 십자가 거꾸로 지고 순교를 합니다. 이길을 우리가 어떻게 따라 갈수가 있겠습니가, 주님이 은혜가 임해야 따를수 있는것입니다. 한주동안도 말씀으로 임하셔서 죽는세계가 열려서 내가 원치않는 길로 인도하여 갈때 우리는 감당할수 있는 은혜주시고 넉넉히 죽을수 있는 능력으로 입혀주세요, 전에는 죽기까지 따른다는 자기열심이 속셈은 큰자되기를 원했지면 이제는 주님만 영광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제자의 복인것입니다.

20-22: 말씀은 늘 자신에게 적용하셔야 합니다. 나의 문제로 모든 문제를 볼줄알아야 된다는것입니다. 지체의 문제도 가족의 문제도 다 나의 문제로 끌어안고 기도할때 그 가족의 상황이 구원의 사건이 되여지는것입니다. 아니면 원망하고 불평하고 남의 탓하다가 몰수히 멸망하는것입니다. 이것이 저주입니다. 자기분수 주제를 알면서 섬기며 살려야 되는데 원망하다가 엎드려 죽게 되여서 약속의 땅을 바라만보고 죽는것처럼 장자총회 듣기만 하고 죽게되는 역사가 일어나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면 됩니다. 요한에게 일어나는 일은 베드로가 상관할일이 아닌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데 그것이 무슨상관입니가, 오늘 내게 말씀주시고 역사하시고 마음주셔서 역사하시는데 무슨 사람과 비교를 합니가 ,주님만 보고 가면은 됩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있어야 될자리에 있고 주님 부르심에 합당하게 충성하게 되여지면 스르로 배부른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은혜때문에 부요한것이 있습니다. 눌린것도 눈치볼것도 없는 역사가 있게 되는것입니다.

  23절: 자기식대로 말씀을 듣고 해석하고 전하는것때문에 공동체가 복잡하고 시끄럽고 심령이 어지럽게 될때가 많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열쇄는 주의 임재입니다. 보이는 임재가 없을지라도 우주적으로 다시오실 그분이 임재가 보이지 않더라고 우리안에 계셔서 늘 지혜를 주시고 갈길을 열어주시는 이것보다 더 뛰여나고 풍성한 실제는 없는것입니다. 젊어서는 스스로 띠띠우고 내원하는대로 다녔는데 어느때인가 되니 성령이 내안에 임재하여 주셔서 나를 움직여 가시는데 이제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있고 어디서 무엇을 하고 그렇게 살았는지 성령의 인도함속에 보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훈련을 받고있습니다. 내가 원치않는 시간에 원치않는 일을 이끌어 가실때 내소견이 끊어지기를 원하고 나의 천연적인것이 끊어지기를 원하시는데 이 부르심에 순종해서 주님을 잘 따르고 있는가 자신을 보셔야 합니다. 여전히 나의 성향대고 가고있는지, 아니면 조건없이 계산없이 주님이 인도하신대로 나를 죽은자로 내려놓고 묵묵히 순종하고 가고있는지, 그러면 주님이 들어쓰시는 그릇이 되지만 아직도 내소견이 중요하다면 내가 내믿음으로 나의길을 열고 가는것이지 주님의 인도하는 세계가 아니라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24-25절: 지금까지 살아온것이 주의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를 다 기록하면은 이세상에 기록된책을 두기에 부족할정도입니다. 정말 돌이켜보면 우리가 한것은 부인하고 저주한것밖에 없는데, 내가 원하는 곳에 내스스로의 길을 간것밖에는 없는데 , 이제는 오후길을 가게 하여 주셔서 네가 원치않는 길을 띠 띠우고 갈것이라는 그곳으로, 나는 감당하지 못하지만, 주님이 함께 해주셔서 갈수 있는 이부활의 생명이 ,베드로에게 제일 좋은 공과가 되듯이 우리들에게도 소중한 공과가 되여져서 이제 더이상 배반하고 저주하고 합리화 하면서 넉두리 하지말고, 더이상 목장이나 심령을 더럽히지 말고 성전으로 잘건축되여 갈수 있도록 양육받는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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