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내신 사랑 | 이명빈 | 2021-07-22 | |||
|
|||||
[성경본문] 골로새서1:12-14절 개역개정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건져내신 사랑
오늘 본문은 빚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도의 기업에 부분에 대하여 우리가 이것이 온전한 진리로 바뀌기 원해서는 감사로 나가야 된다는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합당한 삶으로 요청하고 있는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악한세대에서 건지시고자 주님이 나대신 죽어주신것이 복음입니다. 십자가외에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우리가 힘든것은 십자가가 우리를 이끄는 생명의 길이기에 죽지 않고는 못가기때문입니다. 십자가외에는 부활의 생명으로 들어갈수 없음을 알고 죽기로 결정하면 두려울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가고있는중에 흑암에 권세아래 이땅에 살고있기때문에 우리안에 흑암의 권세아래 종노릇하는 너희가 내안에 있다고 하는것입니다. 이땅에 흑암이 권세가 얼마나 센지 거기에 한번 유혹을 당하면 죽을지언정 이죄의 쾌락을 벗어나지 못하는것입니다. 얼마나 그죄악이 괘락이 짜릿한지 이것으로 끝내도 괜찮을정도로 그순간 사로잡히면 우리힘으로 헤여날수가 없는것입니다. 주님이 없이는 안되는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건져내주신것이 은혜중에 은혜인것입니다.
12절: 바울의 기도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옯겨가신것이 은혜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성령의 도구가 되여져서 똑같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살려내셔듯이 골로새 성도들을 살릴것을 소망하면서 우리라는 것으로 구원의 공동체에 골로새교인들을 함께 넣는것입니다. 우리는 악하고 어그러진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소경이 되여지면은 이흑암의 권세에 익숙하여져서 구원에서 나를 떨어지게 하고, 영생에서 무너지게 하고, 내생명을 몰수히 영벌로 끌고가도 감각이 없는것입니다. 죄에 익숙한 자체가 문제인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살면서 한번도 넘어짐도 없고 원하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대로가 열려서 살아간다면 이것보다 더큰 불행은 없습니다. 훅암의 권세에 살면서 안되는것이 축복이고 망가지는것이 은혜입니다.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면 복음이 들리지 않는것입니다. 성전을 찾지 않는것입니다. 그런데 이흑암에 익숙되지 못해서 나갔다 하면 상처받고 배신당하고 다치고 찢어지고 넘어지고 이러는것이 내가 만세전에 빚이 자녀라는 증거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나를 흑암의 권세에서 나를 건져내신것을 아는자이고 믿는자입니다. 성도는 이세상과 구별된자입니다. 수십년을 예수믿고 이자리에 있지만 선줄로 알면 조심하라고 하는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한치도 방종하면 안된다는것입니다. 다됐다는 인생은 없습니다. 흑암에서 건짐을 받고도 넘어지고또 넘어지면서 여기까지 온것은 주님이 후대하심이고 궁휼하심입니다.
13절: 우리가 지금 신령으로는 다 하나님나라로 옮김을 받았습니다. 진리로는 말씀대로 살아내셔야 합니다. 천국을 자꾸 말해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아들이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입니다. 성육신을 쓰고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고 우리의 심령가운데 임하시기를 원하시는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나라를 보이는 아들의 나라로 옮긴신것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성자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옥에 갇히면 내가 대단한자 같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티끌에 불과하다는것입니다. 티끌에 불과한 보잘것없는 내가 하나님의 구원에 경륜가운데서 감추어진것이 때가되니 다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비밀이 드러난만큼 내안에 육성도 드러나서 무너지게 되는이것이 영원에 비하면 잠간 이라는것입니다. 이땅에 강건하면 칠팔십년을 산다고 하셨는데 흑암가운데 사는 평안이 없는 칠십년을 고난가운데 산다할지라도 영원한 세계에 비하면 이것은 잠간인것입니다. 보이는 세상은 진짜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짜입니다. 그 보이지 아니하는 엄청난 영원한 세계로, 영원히 죽지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영생의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가시는데 내가 이땅에서 받는 고난이 없이는 절대 본향을 사랑할수도 없고 사모할수도 없는것이 우리 육인것입니다. 우리는 자기인생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안에 있다는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기고 날고 뛰여봤자 주님이 손에 있는것입니다. 주님이 마쳐야 마치는것이고 주님이 행하셔야 이루어 지는것이다. 우리가 흑암에 고난가운데 있을지라도, 은혜를 저버리고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말씀에 붙어만 있으면 우리가 빚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것입니다.
오늘 골로새서를 써내려가는 바울도 빚앞에서 자기의 실체을 보니 어두움인걸 깨달았습니다. 어두움속에 삼일동안 꼭 갇혀서 하나님의 은혜로 비닐이 하나하나씩 벗겨지기 시작하여 지는데 그때 어두움에서 빚으로 이동하게 시작하는것입니다. 자기처럼 의로운자가 없고 율법을 준행하는자가 없는줄 알았는데 눈이 열리고 나니 자기처럼 사악하고 자기처럼 악한자가 없다는것을 알게 되여졌습니다. 빚을 만나니 나는 훼방자였고 악독한 자였고 나는 죄인중에 괴수였다고 고백하는것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머리로 안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율을 한것입니다. 빚의 증거를 삶속에서 고난가운데 불가운데 물가운데 지나가게 하시면서 그안에 임하신 주님이 부활체 라는것을 알게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아들의 나라로 옮김을 받았다는 증거이고 소속이 완전히 바뀌 였다는것입니다.어두움은 딴데 있는것이 아니라 우리안에 있습니다. 우리안에 어두움으로 꽉차있어서 아무리 말씀으로 찾아오셔도 도대체가 주님을 몰라보는것입니다. 우리의 오류는 내가 믿는다는 사실 하나로 말씀을 묵상하는데 자기를 의로운자리에 ,자기는다된 자리에, 자기는구원받은 빚의자리에 앉았있다는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자신을 본다는것이다. 그러니 두사람이 메를 갈다가 한사람은 들려올라가고 한사람은 남는데 누가 의인이고 누가 악인인지는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십니다. 오직 말씀만이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서야지 내중심궤도에 서면은 흑암의 권세아래 눌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온전한 답이 나올수도 없고 옮겨갈수도 없습니다. 구원을 위하여, 나하나를 살리기 원하여 창조주가 피조물에 죽임을 당하는 그인생으로 우리을 살리신것입니다. 악인인 우리가 이사랑을 안다면 기꺼이 죽을수 있는것입니다. 내가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못감당할것이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림자처럼 구제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사랑이 너무너무 커서 장차받을 그영광이 세계가 너무너무 커서 어떤 불같은 연단이 있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흑암이 권세가 내인생에서 역사하도록 한치도 양보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죽어서 저천국가는것이 아니라 이땅에서 우리의 생존세계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으로 나타내는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것입니다. 이론이 아닌 이빚이 실제가 되여져야 하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본성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증거될수 있도록 믿고 따라가고 행할수있는 그믿음을 우리들에게 요청하시는것입니다. 12절에 바울이 이미 체험하고 그길을 가고 있으니 이들의 갈등이 겪고 이단에 복잡한것에 시달리고하니 감사로 사는것이 구원의 시선으로 사는것이라고 이야기한는것입니다. 기업의 부분을 얻게 하시기 원해서 우리를 영광의 능력으로 사로잡아서 이끌어가시는 때마다 시마다 말씀으로 해석받게 하시고 힘을 받게 하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포기하고 좌절했다가 다시 힘을 주시는 이렇게 오늘까지 이끌어가시는 아버지앞에 우리가 들여야 하는것은 감사밖에 없는것이다. 오늘을 주신것 감사, 오늘에 예베가 있어 감사,오늘에 살아있어 감사하고 이러면서 가는것입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