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져 내신 사랑 | 최은숙 | 2021-07-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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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져 내신 사랑 > 우리 신앙이 이론도 아니고 지식도 아니고 실제이시고 생존세계에서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까지는 인생이 필요했고 환란이 필요했고 온 몸으로 체험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말씀이 실제의 삶 속에서 세상 역사를 써내려가고 우리 인생 역사를 써내려가면서 움직이는 생명의 역사가 우리들의 삶 속에서 일어나야 됩니다. 부활체를 입고 가는 사도 바울이 체험한 그대로 그가 만난 예수님을 증거하고 갑니다. 그러나 육으로 있으면 영적 세계를 알 수도 없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상거가 멀고 실감이 안 됩니다. 육의 생명으로는 하늘의 생명을 받아들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듣다보면 삶이 해석 되고, 생명 그 자체를 말씀에서 만나는 은혜가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도의 기업의 부분에 대해서 이것이 온전한 진리로 바뀌기 위해서는 감사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합당한 삶을 요청하십니다. 복음은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고자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 외에는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이끄는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죽지 않고는 갈 수 없습니다. 고난이 짙으면 짙을수록 복음이 절실한 것입니다. 성공이 목적인 사람은 절대로 십자가 복음이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큰 걸림이 되고 갈등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의 중심에 서게 되면 고난도 축복이 되고 고난을 통해서 흑암의 권세 아래 갇혀있는 정체를 보게 됩니다. 십자가 외에는 부활의 생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죽기로 결정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 소명입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가는 중에 흑암의 권세 아래 이 땅에 있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 빠져 나올 자가 없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주신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12절,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이 바울의 기도는 흑암의 권세에서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가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 에바브로의 전도를 받아 회심을 하였는데 바울은 성령의 도구가 되어 자신을 살리신 복음이 골로새 성도들을 살리실 것을 소망하면서 우리라고 하면서 구원의 공동체에 함께 넣습니다. 바울 자신도 흑암의 권세에서 있었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하나님이 옮겨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흑암의 권세인데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실 분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 없이는 건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기쁨으로 견딜 수 있는 환경을 주시고 대인 관계에서도 참음으로 인내 하면서 육성이 벗겨 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로 흑암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왔음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흑암의 세계에서 흑암인 줄도 모르는 인생으로 신안생활을 하면서 빛의 세계로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못하므로 자유가 무엇인지 부활체가 무엇인지 위의 생명이 무엇인지 위에 속한 영원한 기업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흑암 속에서 자존심이 중요하고 세상에서 누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택한 사람은 흑암에서도 날마다 넘어지고 무너지고 깨지는 사건을 만나게 해 주셔서 주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주님 오실 그 날까지 한 치도 방종해서는 안 됩니다. 빛의 세계는 익숙하지 않아서 들어가면 갈수록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내안의 더러운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흑암의 권세는 구원에서 떨어지고 영생에서 무너지게 합니다. 내 생명을 모두 영벌로 끌고 갑니다. 그래도 감각이 없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살면서 무너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면 복음이 들리지 않고 성전을 찾을 이유가 없습니다. 성도는 주님께서 자신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다는 것을 알고 믿는자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과 구별된 자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우겨쌈을 당하고 거꾸려짐을 당해도 당하지 않고 싸이지 않는다는 것은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살 곳이 못 된다는 것을 살면 살수록 나그네로 이 땅을 지나가는 것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빛을 찾아다니게 됩니다. 13절, 아버지의 나라는 보이지 않고, 눈으로 보이는 사랑의 아들의 나라는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심령에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티끌에 불과한 초라한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경륜 가운데 감춰진 것이 다 드러나고 이제는 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 이름으로 살아 장자총회에 들어갈 자임을 알게 하시고 한 알의 밀알이 되셨던 아들의 영을 말씀의 씨로 심기셔서 하늘의 비밀이 드러난 만큼 내 안의 육성도 드러나게 됩니다. 보이는 세상이 진짜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이 진짜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은 엄청난 영원의 세계에 영생의 나라로 이끌어 가시는 데 이 땅에서 받는 고난이 없이는 저 본향을 절대로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육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마치셔야 끝이 나는 것이고 주님이 행하셔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흑암 가운데 고난 중에 있다하더라도 말씀에 붙어 있다면 이것은 빛의 자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날마다 심판을 받고 회개하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가는 것이 구원이고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나의 옳다함도 말씀에 비춰보면 흑암 가운데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내어놓고 주님 앞에 간절하게 사모하며 자복하면서 주님의 손길로 붙잡아 주실 것을 간구해야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건짐 받은 큰 은혜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죄악에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알게 하시는 것이고 후회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도록 건져내 주신 것이 은혜입니다. 죄의 의미는 빗나가는 것입니다. 조금 부족한 것도 죄이고 조금 넘어가는 것도 죄이고 치우치는 것도 죄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죄악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입니다. 흑암의 권세에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약재료가 되어 정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흑암의 권세가 너무 커서 포기하고 싶지만 생명을 내놓더라도 말씀과 바꾸면 안 되고 구원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조금씩 자라고 변해서 흑암의 나라에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는 기쁨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용서 못하던 것이 용서가 되고 참을 수 없는 것이 참아지게 됩니다. 감사 할 것 밖에 없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은 이 사랑을 깨닫고 안다면 이 땅에서 아무리 누리고 잘 산다 한들 건짐을 받은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깨져서 예배가 인생의 전부가 되고 예배가 1순위가 되는 인생이 된다면 이보다 큰 응답이 없고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은 틀리고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은 다릅니다. 되는 일이 없어 저주아래 사는 것 같았는데 고난이 축복이라고 세상에서 되는 일이 없었던 것이 제 인생에는 주님 밖에 없습니다. 이런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만이 나의 생명입니다 라는 고백을 하게끔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살기 위해서 말씀을 묵상하게 되고 살기 위해서 예배를 드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끝 날에는 저주받은 우리가 믿음의 족보에 찬란히 오르는 것을 안다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빛 가운데 행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몸의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약탈하던 손이 지금은 섬기는 손이 되고, 말도 내 뜻을 전이 시키려했습니다. 말씀이 어떻게 나오든지 주님은 옳으십니다. 이 세상 어떤 것 보다 구원이 크고 이것을 온몸으로 입증하기 원해서 우리는 성도의 기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기업은 그리스도입니다. 장차 받을 그 영광의 세계가 너무나 커서 어떤 불같은 연단이 있을지라도 흑암의 권세가 내 안에서 역사 할 수 있도록 한 치도 양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땅에서 현존하시는 우리의 생존 세계를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체험하고 삶으로 나타내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닙니다. 이 빛이 실제가 되어야합니다. 빛이신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주관 할 수 있도록 이제는 하나님의 본성이 우리를 통해서 나타나고 증거 될 수 있도록 믿고 따라가고 행할 수 있는 그 믿음을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이미 체험하고 그 길을 가고 있어서 골로새 성도들이 갈등을 겪고 이단의 복잡한 것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감사로 사는 것이 구원의 시선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이기시고 주님만 나타나셔야 하는 것입니다. 내 죄악이 숨겨지고 합리화 되어 쓴 뿌리가 숨겨진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매사에 구원의 사건으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가기 원해서 빛 가운데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 위해서 우리를 영광의 능력으로 사로잡아 이끌어 가시는데 말씀으로 해석 받게 하시고 힘을 얻게 하시고 넘어지고 엎어져도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포기하고 좌절해도 다시 힘을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 아버지께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은 감사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오늘 주신 것 감사하고 오늘 예배 있어서 감사하고 살아있어서 감사하며 가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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