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일꾼 | 최은숙 | 2021-12-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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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실한 일꾼 > 바울이 골로새서를 마무리하면서 하나님의 동역자는 이런 사람이다 라고 하는 중요한 가르침을 남겨놓았습니다. 마지막에 우리의 이름이 구원의 책에 올라 갈 때 신실한 일꾼으로 사랑받는 형제이며 주님의 일에 동참하고 교회가 성장하고 심령을 세우고 살리는데 오른팔 왼팔 역할을 하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록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록 될 것인가? 말씀을 들으면서 결단을 해야 될 때가 왔습니다. 한평생 살면서 다사다난하게 살아 왔어도 인생의 결론은 단 두 줄에 그칩니다. 묘비에 나의 삶이 기록 된다면 살다. 먹다. 죽다 이럴 수는 없습니다.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는 신앙의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오늘 바울은 신실한 일꾼으로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소개합니다. 7절,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우리는 소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상대에게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화를 담고 다니는 사람은 저주의 사신이 되어 입을 열어 전달하면 문제가 되고 사이가 갈라지고 벽이 생기고 감정이 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하늘의 사람은 전달하는 것이 생명이어서 살려내고 막힌 담을 헐고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회복을 시킵니다. 소식을 전하는 우리들은 말을 하던 행동을 하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편지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성령을 힘입어서 겸손한 마음으로 전하면 아무리 힘든 내용도 위로를 주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두기고는 감옥에 있는 바울의 사정을 골로새 성도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두기고의 이름은 행운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생존의 위협을 받는 어려운 때에 함께 했던 사람으로 바울의 심령을 잘 전달하여 듣는 자가 다 믿음으로 일어나고 위로를 받는, 외적으로는 초라하고 위험한 시기이지만 영적으로는 두기고 생애에 최고의 축복의 기회로 동역을 한 것입니다. 두기고는 로마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으로 천한 신분인데 바울을 만나서 사람대접을 받고 예수님을 만나 공평한 공의 세계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사랑받는 형제로 신실한 일꾼으로 책임있는 사람으로 주 안에서 함께 하는 자로 바울의 사역에 기대를 받은 자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 골로새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진리가 진짜인가 하고 갈등이 충만한데 바울은 감옥에서도 간수를 만나 복음을 전하고 오네시모를 만나 회심시켜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상황들을 두기고가 골로새 성도들에게 전하여 위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우리가 전하는 말이 생명의 언어가 되고 믿음의 언어가 되어 상대방에게 유익한 통로가 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의 의도를 잘 읽어 성령의 힘을 입어서 전달해야 주님의 마음이 심비에 새겨져 힘을 얻고 생명을 얻게 됩니다. 전달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달하는 내용에 걸맞게 인격도 변해야하고 삶도 살아내야 합니다. 복음의 진리는 그 진리를 전하는 전달자가 천국에 소망과 생명에 관한 가르침이 있어 가장되지 않고 모순되지 않게 삶에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말씀과 청중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입니다. 자신의 욕심이나 성향을 말씀에 투여하면 안 됩니다. 청중의 염원을 알고 살리고 고쳐야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태만하지 말아야하며 늘 부족함을 알고 기도하고 말씀에 대해서는 확신이 있어야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은혜 없이는 할 수 없음을 아는 겸손함이 있어야합니다. 얼마나 진실하게 객관성 있게 주의 전달자가 되는가?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져 예수의 전달자가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과 친밀해지면 주의 전달자가 되어 입만 열면 교회자랑 말씀자랑을 하게 됩니다. 나는 나의 사정을 상대방이 알아주기를 원하는 사람인가? 남의 사정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인가? 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가?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인가? 흑암의 권세에 있지 말고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김 바 된 증거를 삶 속에서 나타내는 열매가 있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서 함께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하는데 상대를 불편하게 해서 꺼리게 되어 함께하기 보다는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나는 함께 하기를 좋아하는 자인가?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가? 생각해 보기바랍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이 가장 기뻐하고 원하는 것은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일 텐데 오히려 감옥에서도 골로새 성도들이 복음의 열매가 되어 잘 자라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이 천하에 열매가 되어 자라나는 것을 생각하면 감옥에 갇혀있어도 기쁜 것입니다. 나는 내가 당한 고통만 가지고 힘겨워하는가? 내 고통은 하나님 앞에 맡기고 지체들을 위해서 염려하는가? 나 밖에 모르는 우리의 속성은 주님을 너무 힘들게 합니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주고 상대의 힘든 것 때문에 마음을 쓰는 것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또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내 편에 서서 나의 사정을 알려주는 두기고가 있어야합니다. 잘 죽고 감당하고 있으면 그 사정을 알리는 자가 나옵니다. 내가 사정을 전할 때 상대가 근심이 되거나 실족하게 된다면 전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나 내가 전해주는 말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면 열두번이라도 전해야합니다. 상대의 형편과 상황을 알아 타이밍을 잘 맞추어야합니다. 9절,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형제라는 말은 매우 신뢰를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형제는 하나님께로 난자로 성령에 속한자로 신뢰가 되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유익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배경은 천하지만 누구를 만나도 유익을 주고 돕는 자가 되고 힘이 되어 주는 사람입니다. 소망이 없는 노예출신도 바울을 통해 복음이 들어가니 사도의 신실한 형제로 불리고 사랑받는 주의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도 이런 아름다운 수식어가 붙게끔 열매가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이 능력이 된다면 우리도 신실한 일꾼으로 사랑받는 형제로 바뀌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 말씀을 받아먹는 주의 사람이 되게 하셔서 오네시모와 두기고 같이 변화 받는 자리에 들어가서 신실한 형제로 성경에 생명책에 기록되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쉬지 않기를 원하고 우리 위에 상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축복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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