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소망 | 이명빈 | 2022-07-07 | |||
|
|||||
[성경본문] 베드로전서1:1-4절 개역개정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 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바울은 14편의
서신을 썼지만 베드로는 베드로 전후서 8장만 썼다. 그런데
누구도 표현하지 못하는 영적인 세계를 표현한다. 성경에 그가 사용한 형용사를 보면서 그 안에 성령의
전이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여 진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산
돌이신 예수님, 썩지 않는 씨, 쇠하지 않은 영광 이런 것들은
체험하지 않으면 표현 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베드로는 믿음의 특심이 되여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르고 예수님의 3년반공생애 동안에 많은 것들을
보았지만 그 영적인 의미를 전혀 몰랐다. 그는 시시때때로 주님의 말씀을 가로챘고 주님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고 앞서 행하는 자리에 늘 들어갔다. 오순절 이후에 예수님 속에 신성의 영이 그 안에 들어간 후에는 그의 말이
얼마나 투명하고 수정같이 맑고 정확하고 이제 보고 들은 것들이 다 이해가 되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부활의 영이 임하니 하나님의 제시하신
모든 하나님나라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치하게 되여지는 이런 은혜를 입은것이다. 4복음서에 없는 하나님의
신성한 통치권에 대해서도 서술한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에게 우주적인 통치 개체적인 통치 이 부분에
대해서 채워준다. (하나님의 통치는 온 우주를 망라한다. 믿는 자는 믿지 않는 자에게 골고루주시고 은택도 입혀 주시여서 어떠한 것이든 은혜 아닌 것이 없게
하신다. 내가 빛도 지었고 어두움도 지었다고 하신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원치 않는 고난을 만나지만 우리를 힘들게 하는 바벨론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애 굽도 하나님이 창조 하셨다는 것이다. )
베드로 전 후서를 보면은 통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계시를 하는데 먼저 심판에 대해서 말한다. 우리들 안에 선한 것이 없다. 살아 오는 거나 내려 오는 거나 6,7천년 도 닦고 내려 온 것인데
심판 받을 것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에 보면은 전에는 홍수로 심판했는데 38년을 가데스 반야를 돌고 돌아도 게속 제자리 걸음하고 진보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고
이제는 불로 심판을 하신다고 하신다. 성령이 불같이 임하게 되면 소멸되고 육성이 녹아지고 체질이 녹아지고
이런 역사가 일어 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으로 말씀으로
환경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의 창조역사에 중심 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은 절대 더러운 곳에 임하지
않는다. 부정하고 불의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곳에 거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온 우주도 정결하고 깨끗하게 하시지만 하나님의 거하시는 이 심령처소도 정결케 하신다는 것을 아셔야
된다. 하나님의 심판은 나부터 시작이다. 예수님을 믿으면 믿을수록 왜 이런 어려움이 오지? 왜 믿지 않는 사람이 돈도 잘 벌고 자식들도 잘되는데 나는 왜 평생 기도하면서 뜻대로 살려고 애를 쓰는데 왜 이렇게 안 풀리 거지? 왜 나는 인간관계가 이렇게 힘들지... 지금 심판 받는 중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우리마음이 깨끗하게 소재가 되여 져야 말씀이 생명이 되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를 입혀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듬어 가신다는 것이다. 베드로 전 후서를 통하여 우리의 심령이 심판이 해석되기를 원하고 내 안에
이 속성을 보는 눈이 열리기를 원하고 믿음이 성화되는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1절: 베드로는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소개를 한다. 출생에 의한 천연적인 사람, 자아가
충만한 옛 사람 이였던 베드로가 어떻게 그를 통하여서 교회가 세워지고 그를 통하여 나라가 전개되고 어떻게 사도로서 이런 제자가 되여 질수 있을가? 정말 보잘것없는 범인 같은 시몬인데 그 그릇 속에 보배로우신 주님이 담기니 이렇게 베드로가 되여 졌다는 것이다.
1- 우리들이 선택 받았지만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로 고난을 받으면서 체류하는 자리에 있는 것은 주님이 그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다루시는 것이다. 내가 주인이 되여서 내가 주권적으로 예수를 믿고 다니는 이런 반열이 아니라 완전히 내 힘으로 일도 살수 없는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들어가서 내 주권을 쓸래야 쓰지 못하는 이런 상황가운데 내 안에 귀신처소가 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왜 믿는 자가 저러지? 우리가 다 믿는 자 안에서 생활하니 나를
두드리는 막대기가 되고 채찍이 되게 하여주신다. 내 안에 내가 비여 있으면 아무리 두드려도 감각이 없는데
내 안에 내가 너무 가득해서 요만큼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다.
2- 우리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심을 따라서 불러낸 하나님에게 선택 받은 자들이다. 우리의 신분이 나그네라는 것을 아셔야 한다. 우리의 본향은 천국이다. 이 땅에 호사스럽게 살려고 하지 말고 이 땅에 사는동안 하늘에 처소를 준비해야 하는것이다.
2절: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말한다. 1:20그리스도가 세상에 기초를 놓기전에 이미 선택하셨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미의 태중에서 이미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또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원하여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셔서 우리를 운행하시고 다듬으시고
역사하여 주신다는것이다.
1-시간안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에 순종할수 있도록 정말 하늘에 시간 카이로스로 살아갈수 있도록 우리가 먹던지 마시던지
거룩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갈수 있는 이런 사람이 되도록 피 뿌림으로 말미암아 나의 본성은 죽은 자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시는
구속의 완성의 절차를 놓으시고 우리를 이끌어가신다.
2-짐승의 피로는 영원한 속죄가 되여질수없다. 물세례 가지고 회개하고 은혜 받고 죄짓고 이것을 가지고 영원한 속죄로 들어 갈수가 없는데 예수님이 오셔서 흘려주신 그 피로 말미암아
내 죄가 영원히 속죄함을 입게 되는 역사가 일어 났다는 것이다. 짐승의 피는 예수의 피를 예 표 하는
것이다.
3-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없으면 고난을 겪어 낼 수가 없다. 심판을
받아 낼 수가 없다. 그 심판가운데서도 육으로 보면 억울하고 분해서 통곡할 노릇이라고 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구원의 관점에서 보면 얼마든지 아멘 이 되여 지고 옳소 이다가 되여 지는 진짜 이렇게 안 하면 다름을 못 받지,
이렇게 안 하면 내 악이 끊어지지 않지, 뽑히지 않지, 이렇게
해석이 온다는 것이다.
4-베드로는 오직 구원에 가치를 두었기에 배교하지 아니하고 순종하고 간다는것이다. 환경가운데 오는 박해를 집중하지 말고 내가 누구인지, 환란을 받으면
내안에 숨겨진 것들이 아니 드러날것이 없이 다 드러난다. 자기가 주인이 되여서 주권자가 되여서 왕처럼 살아야 되는데 인정을 안하고 밟아보니 혈기가 올라오고, 지고는 못살고, 손해 보면 못살고,
욕먹고는 못사는 속에 것들이 다 올라오는데 토해낸 자기속성을
보면서 내가 예수의 사람인가 직분 자로서 기가 막힌 내 속성을 보게 되여 진다.
5-심판은 당연한 것이다. 상황은
항상 변하는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뀌여지는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 안에 상수가 되여서 절대로 변치 말아야 될것이 구원의 가치이다. 우리가 예수 때문에 여기
있는것이다. 내 안에 예수의 형상만 입으면 되는 것이다. 박해
박고 핍박 받고 별소리 다 들어도 언제 가는 지나갈 것이고 언제 가는 밝혀질 것이고 언제 가는 없어질 것이다. 지나갈것에, 없어질것에 따라다니면서 종 노릇 하지 말고 꿋꿋하게 지나가겠지, 알게
되겠지, 없어지겠지, 변화되겠지 이러면서 말씀만 좇아 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소망인 것이다.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간다는 것이다.
3-4절: 우리에게 받을 유업이
있다는 것이다. 소망과 유업은 동 인격이다. 이스라엘백성에게는
가나안 땅이 유업이 였다. 약속의 땅을 허락하여 주시고 이끌어 가시는데 거저 묵묵히 눈이오나 비가오나
환란이오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을 믿으셔야 한다. 이끌어내셨으니 하나님이 마치기까지 함께 해주실
것을 믿으셨어야 했다.
1- 정말로 애 굽의 확정에서 건져내시고 홍해 같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건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그 병에서 어떻게 내가 놓임을 받았지, 그 부도에서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지, 정말로 주님이 주시는 말씀대로 그대로 이루지면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났음에도 그것이 약속이고 언약인데 보이는
유업에 치우쳐서 지나가다가 음란에 빠지고 자기속성에 빠지고 바벨론 포로에 들어 갈수밖에 없는 것이다. 돈을
좆아서 바벨론 포로가 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여 지면 돈이 나를 좆아오는 이런 역사가 일어 난다는 것이다.
2- 유업을 받을 자로 확신을 가지고 가기를 원한다. 말씀대로 유업은 썩지도 아니하고 쇠하지도 아니하고 더러워지지도 않는 것이다.
생명주는 부활의 영이 우리 안에 말씀으로 들어오면은 베드로처럼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셔서 누구에게나 비전을 주는 자가 되여 지고 망하게
하는 자리에 안 들어 간다는 것이다. 우리의 유업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힘이나 능력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죽도록 충성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고 말씀대로 지음을 받아서 내
안에 더 이상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 내가 되여 지는 이것이 유업이 라는
것이다. 금으로 상징된 믿음인 쇠하지도 않고 썩지도 않는 하나님의 본성을 우리는 닮아가야 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