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더 귀한 믿음 | 이명빈 | 2022-07-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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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1:5-7절 개역개정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가 부활신앙이 되여지니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던것처럼 우리의 삶의 방식도 완전히 달라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날마다 열심히 일하고 살아도 우리의 끝이
죽음이라면 어떻게 여기에 소망을 두고 갈수 있겠는가? 그런데 모두가 죽음으로 멸망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죽음을 머물러있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부활이 있기 때문에 잘 죽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육에
사람은 죽으라고 하면은 원통하고 억울해하지만 영에 사람은 죽으면 영적으로 부활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알기에 산 소망으로 갈수 있는 것이다.
5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베드로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받고 주님이 오시는 때를 준비한다고 말한다.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것은 우리가 한번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렀지만 구원
안에도 단계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했다고 진학 안 하는 것이 아니다. 계속 학급이 올라가는데 초등학교가 있으면 중등부가 있고 대학부가 있듯이 우리도 구원을 받았지만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기 원하여 성화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믿음으로 성장 되여 가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구원
안에서도 거듭난 구원에서부터 완성의 단계까지 끊임없이 단계단계별로 최종적인 구원이 있는것이다. 오직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은 맏아들의 총회에 들어갈수 있는 그 자리를 목표를 두고 가는 것이다.
그 첫번째 단계가 거듭남의 단계이다. 내가 거듭났다고 지식으로 끌어다가 적용해서 거듭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거듭남은 완전히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세상에서 건지셔서 택하시고 “칭의”을 이루시는 것이다. 화목하지
못했던 것들을 화목하게 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주님이 통치적인 다루심 가운데 완전히 통치권이 하나님에 앞에 있는 이런 혼의 구원, 자기의
감정, 생각, 의지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완전히 말씀의 통치를 받는 이런 자리까지 들어가는것이다.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역했던 이본성에서 떠나서 화목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는것이 거듭남인것이다. 이렇게 첫 번째 반열의 인침을 받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 주님이 이미 우리 속성을 다 아시기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가 말씀으로
들어 가시기를 원하시지 네가 어느 때에 이렇게 했으니 자격이 있어 없어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원히 명망 하지 않을 유업으로, 천국에 들어갈 처소와 자녀의 자격을 우리에게 말씀으로 날마다
덧입혀주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변화의 단계이다. 변화의 단계에서는 이제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성에서 굉장히 자유 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게 되니 생명이 점점 변화가 되면서 성장이 되여 진다. 혈과
육으로 더 이상 살지를 않는다. 우리가 아무리 옳다고 주장해도 처할 곳이 멸망이고 썩어질 것이고 지나갈
것임을 알기에 허무한데 굴복하는지 않는 것이다. 자유 함을 받아 생명이 법이 우리를 다스리게끔 나를
자꾸 비워가야 하는것이다. 모든 것이 합력함으로 말미암아 생명주는 영으로 혼이 길들여지기 시작하는데
나의 감정도 소견도 의지도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 되여 가는 역사가 일어난다. 이것을
나는 죽은 자의 하나님의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가면서 만세 전에 하나님이 택한 자고 구원을 받은 자라면 시험은 불가피 한것이다. 학생들도
시험을 통하여 실력을 검증을 받듯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증명을 받기 원해서 우리도 시험을 받게 되여지는데 고난으로 시련으로 키질을 당하게 되여진다. 키질을 당할 때 진짜 믿음이 있는 자는 시험을 당하면 당할수록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는데 껍질은 밖으로 밖으로
날아간다. 우리가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처럼 이론을 가지고 나오지만 키질을 한번 당해보면 여지없이 떨어지고
상처받고 게걸거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믿음이 검증을 받는다.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데 하려 함이라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우리의 믿음이 더 귀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귀하다고 하는 금도 녹아지고 없어지는데 우리의 믿음은
영원히 남아서 주님이 나타나시는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고난과 시련은 구원을
무력화 시키지 못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여도 부활하듯이 우리도 죽으면 죽을수록 영으로 더
살아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믿음을 더 견고케 하신다. 이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를 꼭 붙잡고 있으면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신다는 것이다.
마28:20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신다.오순절
성령이 임하니 120명 문도에게 혀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의
소원도 혀가 갈라지는 것이다. 이 뱀의 혀가 잘라지는 것이다. 이제는
내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그가 말하게 하심에 따라 말하는 성령의 증인이 되는 것이 우리모두의 소원이다.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하리라 하시는 증거를 삶으로 나타내야 하는데 내 안에 계시는 주님보다 내가 너무 커서 가려져서
자꾸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하듯이 육으로 난자가 성령으로 난자를 핍박한다. 왜 이렇게 원치 않는 우리의
이기적인 속성대로 살아가는지 늘 우리는 말해놓고 후회하고 한다. 그래서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말씀에 꼭 붙어가다 보니 언제 성령으로 난자가 내 안에서 자라났는지 이제는 육을 핍박해서 막히지도 않고 유유히
고난이오나 연단이 오나 성령으로 난자의 세계를 가게 되여 진다. 성령의 증인이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존귀케 하신다. 하나님이 영이 함께 하는것이 주위에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때 사람에게나 모든 자리에서
존귀케 되여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기이름을 내기 원하고 자기 자리를 높이게 원한다고 되여
지는것이 아니고 존귀한 분이 우리 안에 오셔서 그 존귀한 분으로 말미암아 우리 그릇까지도 그분 때문에 존귀케 되는 이런 자리에 들어가게 되여 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양육해
가시는 목적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성화의 구원을 이루게 하시고 우리를 더 높은 구원의 단계로 이끌어 가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3번째 단계로 가면 완성단계이다. 우리의 몸의
완전히 변형되고 예수님은 나사렛 비천한 목수의 아들이 육을 썼는데 천상의 회의를 할때 잠간 비닐이 벗겨져서 보니 몇백년전에 죽은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천상의 회의를 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니 완전히 변형이 되여서 영광히 광채가 나타났다. 우리 안에
육이 없고 완전히 주님의 영광만 나타나면 얼굴이 해같이 빛나게 되여 진다. 빌3:21 우리의 낮은 몸을 거룩한 영광의 몸으로 변형시킨다는 것이다. 우리의
혼의 구원이 되여 져서 생각, 감정, 의지까지도 하나님의
성령에 딱 묶여서 구속함을 당하니 몸이 그 영향을 받아서 그 빛 아래서 변형 되여 져서 말도 구별되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일하는 것도 달라져서 자기 꾀에 속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거듭난 영이 되게 하시고
변화된 혼이 되게 하시고 변형된 몸이 되게 하여 주신다는 것이다. 이 엄청난 세계가 벌써 이 땅에 있느니라
하시는 그 영으로 말미암아 부활 체를 입고 들어갈 영의 세계를 열어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짐승의 속성을 가지고 으르렁거리면 저만 괴로운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우리는 짐승이다. 우리의 영이 거듭나셔야 되고
혼이 변화 되여야 되고 몸까지도 변형이 되여 져서 살면 살수록 우리의 육성이 다 무너지고 흐물흐물해지고 그냥 꼿꼿했던 색갈이 분명하고 자아가 분명하고
성격이 대쪽 같던 이런 사람들도 예수를 믿고 말씀에서 변화되고 변형이 되여서 온유하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만 일어나기를 원한다. 환경에 순종하고 잘 다루심을 받아서 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고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말씀을 붙들고 가다 보면 우리들도 모르는중에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게 되여 지고 변형 되여서 영화롭게 되는 삶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이보다 더 큰 복이 없다. 이러면 저러면 어때요, 오직 주님만 내 안에서 나타나시고 주님만 내 안에서 역사하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것이 산 소망이다. 한주간도 고난으로 제련하실 때 잘 녹아지는 삶이 되시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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