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보다 더 귀한 믿음 | 최은숙 | 2022-07-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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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보다 더 귀한 믿음 > 오늘은 베드로를 통해서 나그네와 택함 받은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환경으로 막아주시고 보혈로써 씻어주시며 하늘만 바라보고 갈 수 있도록 하신 구속의 은혜를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 말씀이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듬어 가시고 살리시며 성령의 역사로 거룩하게 하나님을 닮아 가게 하는 하늘에 속한 새 언약의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식민지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영광을 취할 것이 없고 우리를 나그네라고 하고 이방인으로 살라 하십니다. 세상에 있지만 하늘에 속한 구별 된 자로서 다르게 살라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자이기 때문에 빛의 자녀라고 하는데 세상의 어둠 속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다른 모습이 나와야 합니다. 베드로가 부활신앙으로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던 것처럼 우리의 삶도 달라져야합니다. 썩지 않을 산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썩어질 것과 지나갈 것에 매이지 않습니다. 모두가 죽음의 멸망의 길을 간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신 것처럼 우리의 끝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이기 때문에 죽으면 영적으로 부활의 세계로 들어가 새 하늘 새 땅으로 부활체를 입고 가는 것이 우리의 산 소망입니다. 나의 관심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부활 신앙인가? 아니면 썩어지고 없어질 이 땅에 속한 것인가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5절,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베드로는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되고 주님의 오시는 때를 준비하는데 성화의 구원을 위하여 끊임없이 믿음으로 성장해 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환경에 묶어두시고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데 나는 심판대에 설 자신이 있는가를 돌아보고 말이나 일에 주께 하듯 하라 하신 것이 늘 심판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진행을 하시는데 첫 번째 진행 단계가 거듭남의 단계입니다. 거듭 났다는 것은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세상에서 건지셨다는 것과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했던 것들을 화목하게 하시는 역사가 거듭남입니다. 우리를 구속하셔서 내 뜻대로 살 수 없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역에 묶어두시는 것은 의롭다 하심을 입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본성을 떠나 하나님의 생명 안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을 통해 우리가 거듭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이제 하나님의 영원한 구원과 영생에 들어가는 생명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들어가는 맏아들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구원의 인침을 받으면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말씀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십니다.
두 번째는 변화의 단계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성에서 자유함을 받아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생명이 변화되고 성장하여 심령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건축 되는 것입니다. 건축의 재료가 말씀입니다. 우리 속에는 사망과 저주의 법이 거하고 있는데 생명의 법이 나를 다스릴 수 있도록 나를 비워드리면서 순종하며 들어가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성령에 의해 하나님의 본성을 따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우리를 날마다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의 길 주안에서 말씀 듣고 헌신하는 것이 절대로 헛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생명주는 영에 의해 감정과 소견이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시켜가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의 성품 안에서 우리를 구원해 가고 있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6절,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베드로 전서의 목적은 택정함입니다. 만세전에 하나님이 구별하여 우리를 은혜 입을 자로 부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를 뿌리시고 산 소망을 얻게 하시고 하늘의 유업을 받게 하시고자 나그네로 있을 때에 고난을 주시고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자신을 비울 수 있게 하십니다. 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연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금이 제일 귀한데 금을 얻기 위해 불순물을 골라내려고 용광로에 집어넣고 제련을 하듯이 우리의 믿음도 시련을 통해서 시험을 받게 됩니다.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우리 믿음이 귀합니다. 금은 없어져도 믿음은 영원히 남아서 주님 임하시는 날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도 부활하시듯이 우리 육은 죽으면 죽을수록 영으로는 살아나고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믿음을 더욱더 견고하게 하십니다.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꼭 붙잡고 있으면 금보다도 더 귀한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십니다. 믿음의 시험이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되는데 칭찬은 시련을 통해 증명이 됩니다. 어떤 불같은 연단에도 남아있는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칭찬하십니다. 영광은 그리스도로 충만한 상태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나타나실 수 있도록 참아내고 감당하는 것이 영광입니다.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 영광입니다. 오늘날 주님은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가려져 계셔도 영으로 살아난 자에게는 역사하심이 보입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에 주님이 우리 심령에 임하시기 원해서는 우리의 혈과 육이 심판을 받아야합니다. 심판받은 만큼 내 안에서 주님이 자라시고 거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심판의 고난이 없이는 육성이 녹아질 수 없고 시험이 없이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구원을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나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령의 사람인 것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이 증거 되어져야 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완성단계입니다. 우리 안에 육이 없고 완전히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면 얼굴이 해 같이 빛나게 됩니다. 눈이 열려 영광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되려면 주님과 연합 되어서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이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 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 받는다 합니다. 홀권을 가지고 오시는 주님을 보게 될 것이라 했는데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통해서 행하시면 말씀하시는 대로 그대로 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1) 우리의 생각과 의지 감정까지도 하나님의 성령에 묶여 구속함을 당하면 주님의 영향을 받아 그 빛 아래서 변형 되어져 거듭난 영이 되게 하시고 변화 된 혼이 되게 하시고 변형 된 몸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영으로 혼으로 우리를 변형시키시고 변화시키시는 이 길을 갈 때에 할렐루야하며 감사하며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환경과 말씀으로 우리를 다루셔서 의롭게 하셔서 영화롭게 하는 단계까지 가면 우리의 모습은 없어지고 예수만 있는 것으로 이 땅에서 육 있는 동안 이루어져야 그 자리에 들어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이 주님이신데 말씀이 우리 안에서 나타나시려면 날마다 심판대를 거쳐야 하며 즐거움으로 받아야합니다.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슬피 울며 이를 갈지 말고 아멘으로 받고 가다보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거듭나야 영생으로 들어가는 생명이 옵니다. 생명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세상 태평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해서 살아 있고 충만한 단계까지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는데 이 생명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유업인 것입니다. 환란 가운데 입을 열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때 성령과 은혜가 풍성한 심령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목적이 된 인생은 고난이 필수이고 죽음의 시련 앞에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고 그들이 간 길이 우리에게 길표가 되어 우리에게 그 길을 가라고 합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을 때 받을 것 받는 것이고 들을 소리 듣는 것으로 알고 죽고 가면 됩니다. 환경에 순종하고 잘 다루심을 받아서 말씀 붙들고 가면 모르는 사이에 거룩한 주의 형상을 입게 되고 변형되고 영화롭게 되는 삶이 되어 이 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주님 만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주님만 내 안에서 나타나신다면 이것이 산 소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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