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은혜 | 최은숙 | 2022-08-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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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원의 은혜 >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구원의 은혜를 알고 심령 가운데 하나님의 성령의 열매로 기쁨이 충만하게 되어 어떤 어려움을 당한다 할지라도 나그네의 삶은 잠깐이고 영생의 복은 영원한 것이라 벗지 않고는 못가고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고 우리는 언젠가는 떠나갈 자들로서 육 있을 동안에 하늘나라에 가서 거할 처소를 준비하는 것이 이 땅의 삶이라고 생각하니 이 땅에 집착 할 것도 없고 유유히 지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이 나그네의 삶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는 베드로는 위협과 위험과 고난과 핍박과 불같은 연단이 온다 하더라도 마땅하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세상의 행복은 조건적으로 성공해야하고 건강해야하고 돈이 있어야하고 누려야하는데 유통기한이 매우 짧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참 된 행복을 찾은 사람,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세상도 감당치 못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 때문에 너무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고 구원의 반열에 인침을 받은 것 같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 오셔서 구원의 은혜를 허락 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동안에는 당연히 고난이 필수적입니다. 육을 가지고는 갈 수 없고 본성이 죽지 않고는 갈 수 없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본성에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하나님의 아들의 성품을 닮아 가게 하시고 긍휼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1;6) 베드로는 구원의 은혜를 알기 때문에 불같은 연단이 와도 목숨을 내 놓아야 하는 위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올곧게 갔고 오히려 크게 기뻐하게 되는 것은 구원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 것입니다. 암투병으로 죽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를 만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렌다.”고 한 김정아 사모의 고백은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내가 주인이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막고 있는 환경에서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진정한 은혜입니다.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 받았기 때문에 은혜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만 걸림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주님의 길 가는 방해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내 원대로 되지 않도록 고난은 필수적으로 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베드로는 베드로전후서를 통해 권면과 위로 격려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감옥에서 “찬송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언약의 말씀대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주시고 고난을 주시고 핍박을 주시면서 육을 조금이라도 갖고 가지 않도록 때마다 시마다 나를 쳐서 복종하고 체질이 녹아져 온전하게 하실 것을 믿고 이끄시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메시지는 종교적이지 않고 세상적이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영적 체험에 의해 지식과 지적인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영적체험 한 것이 그대로 나와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을 체험한 후에 뼈 속 깊이 박혀있는 히브리민족의 언약과 율법 종교적 의식 전통을 다 빼버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류와 방식도 다 떠나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업에 소망을 갖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주시고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삶에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삶의 열매로 나타나면서 하늘에 소망을 두게 됩니다, 삶의 열매로 그 사람을 알게 되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자 구원의 은혜를 아는 자는 감사 할 것 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만나기를 원하고 영안이 열리면 하나님의 운행하심이 보여지고 느껴지는 역사가 일어나 고백을 할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벌써 이 땅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을 영으로 받아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 감동은 이 세상 어떤 언어로도 형용할 수가 없습니다, 그 영을 받으면 하늘에 소망을 갖게 되고 불같은 연단도 이겨 낼 수 있는 기쁨과 능력이 주어지고 그래서 다시는 저주 아래 있지 않고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는 세계가 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이 진리라면 기쁨이 마땅히 따라 오게 됩니다. 소망이 절로 생기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툭툭 털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믿음의 결국이 구원입니다. 신앙의 목적이 구원이고 삶의 모든 행적이 구원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완전한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이며 그 결과에 따라서 어떤 열매를 맺어지는지 어떤 영광을 취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령에 의해 택함 받은 백성이 되어서 완전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에 의해서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신성으로 충만합니다. 10절,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베드로는 구원에 대해서 자신이 증거를 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이 온전하다는 것을 확증받기 원해서 구약의 선지자들을 인용합니다. 구원의 은혜를 구약의 선지자들은 증거만 했고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4) 요한은 인성 가운데 임하신 신성의 세계를 만난 것입니다. 은혜가 아들 안에 계시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면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면서 온전하게 하시고 다듬어 가시는 은혜를 누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바울은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 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완전히 그 안에 은혜가 충만하여 성령이 거하심에 따라 성령이 말하게 하심에 따라 행하므로 성령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가시가 있고 실수와 허물투성이만 나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성령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티끌의 모양으로 낮아져 하나님께서 들어 세우실 때까지 수종만 드는 것입니다. 묵묵히 순종하며 가야하는 때가 있습니다, 증거만 받고 이루지 못하는 구약시대 머물러 있는 신앙인이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 고난에 대해서 선지자들이 예언하는 증거만 받는 자 되지 말고 말씀이 부활의 영으로 임하시면 여자의 후손이 되어 뱀의 머리를 깨트려 자유하게 하시는 구원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구원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영이 필요합니다. 하나가 되어야합니다. 내가 없어야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맞추고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삶 속에서 나타나하고 주님가신 길을 우리도 똑같이 가야합니다. 한가지로 수종 들고 티끌처럼 낮아질 줄도 알고 비천한 자리에 들어 갈 줄도 알고 생명 걸고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이 길이 우리가 가야할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고난의 영광이 부활로 나타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의 도구가 되어 복음의 증거자가 되고 복음의 생명수를 내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내가 변화 되고 그리스도를 얻는 것으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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