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룩한자가 되라 | 이명빈 | 2022-08-12 | |||
|
|||||
[성경본문] 베드로전서1:13-17절 개역개정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14.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 되여지면 우리가 인생이 목적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갈바를 알고 갈데가 있고 어떤 불같은 연단으로 우리를 막아도 하나님을 찬송하며 가게 될줄로 믿는다. 이 산소망의 근거와 원천은 하나님이 우리를 만세전에 미리 택정하셨다는 것이다. 고전 12:3 성령이 아니고는 누구도 주를 시인할 수가 없다고 말씀을 하신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성령의 도움심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것이다. 우리는 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말씀과 내삶이 엇박자로 따로 놀때가 많다. 자신의 의로 최선을 다해서 살지만 그 끝은 허망한 것이다. 흩어진
나그네로서 베드로 서신에 수신자나 우리는 어느 지점을 지나가는 순례자이다.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 끝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다. 13절: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이 구원 받은것처럼 우리도 영혼구원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원구원을 위해서 살아 갈려면 우리의 모든 행실에서 거룩하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혜을 온전히 바라라는 것이다. 허리를 동인다는 것은 결단하는 것이고 다짐을 하는것이다. 이 근신은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견디고 가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 안에서 느슨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에서 적당히 믿지 하는 것은 구원의 세계에서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끝나게 되여지는 이런 세계를 가는것이다. 14-15절: 주님을 알지 못했던 사욕에 욕심들, 각자의 성향과 비전과 이런 것들을 더 이상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로 출애굽한 이스라엘백성이 몸만 출애굽했지 마음은 아직 출애굽하지 못하였기에 여전히 애굽의 부추와 마늘을 그리워 했다. 그들이 마음을 동이는것에 실패한 원인이 광야에서 원망하고 불평하였다는것이다.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가 장자총회, 맏아들 천국, 구원 이런 것에 가치를 안다면 우리가 불평하지 않는다. 우리가 흩어져서 사는 나그네이지만 하늘나라에 가면 다 주님의 신부가 되여 지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여 지는 자들인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분명히 안다면 누구도 우리가 천성을 향하여 가는 길을 막을수 없는 것이다. 16절: 무엇이 거룩인가? 거룩은 인류의 죄악을 위하여 우리들을 살리시기 원하여서 예수님이 그 큰신 영광을 다 내려놓고 그 핍박과 고난을 받으면서 십자가를 지신것이 거룩인것이다.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바된 우리는 제물인것이다. 제물이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먹을 건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주장을 할길이 없고 우리의 의미대로 살수가 없다. 영벌에서 값을 치루어 주셔서 영생으로,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이끌어가시는데 여기에 우리의 주권이 없다. 인도하심에 따라 성령의 역사하심에 따라 그냥 우리가 할것은 하나님 앞에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분의 뜻 안에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여서 애쓰는것 밖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없다. 말씀이 애굽에서 들리는것이 아니라 내심령 깊은곳에 7곱족속이 있는 가나안 땅까지 이미 왔으면 이본성과 다르게 살라는것이다. 과거와 결별하고 과거에 묶여 살지 말라는것이다. 아브라함에게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고 모세에게 직접 돌에 새겨서 십계명을 주셨다. 거룩하게 사는 방법이 십계명이다.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거룩에 있다. 우리의 사는것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다. 내안에 하나님의 아들의 형상을 이루어가느냐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느냐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왜 거룩하게 살아야 되는가?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자만 하늘에 올라갈수 있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라고 하신다.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앞에 우리는 의미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심판장
앞에서 심판대에 설 준비를 해야 된다. 내가 주님의 심판대에 설준비를 일상의 삶속에서 해야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기에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의
목적이 거룩이 되면은 우리의 행실도 거룩하게 되여진다. 잠간 보였다가 없어지는 인생이 한오백년 살 것
같아도 안개가 눈앞에서 사라지듯이 우리도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 말씀을 통하여 정결함을 받지
않으면 진짜 헛된 신앙생활을 하는것이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이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자는 다 죽게 되여 있다. 육성이 녹아지고 본성에서 떠나게 되여있다. 날마다 말씀을 따라가는것이
거듭난것이다. 행실에서 거룩하지 않으면 그 거룩지 않는것을 심판하러 주님께서 찾아오신다. 그래서 믿는사람, 만세전에 택한 사람에게 고난은 불가불 한것이다. 우리의 못된 행실을 처리하실려고 심판장으로 오시는 것이 고난으로 오시는것이다.
17절: 하나님과 만나는 거룩한
현장에는 늘 견건과 두려움이 있다. 그 두려운 마음으로 구원을 사모할 때에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그것이
삶을 운행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거룩한 두려움이다.
구원의 길에는 하나님의
경륜이 있다. 우리 눈에는 바다의 길, 하늘의 길이 안보이지만
그들은 각도를 지어서 길을 열고간다. 구원 안에도 분명한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 있다. 길은 내가 마음이 청명해야 되고 생각에 온전히 허리를 동이고 마음에 허리를 동이라고 하신것처럼 우리의 생각이
번잡하면 안된다. 오직 올곧게 단순하게 하나님만 행하여야 되고 우리의 생각이 세상의 번뇌로 꽉 차있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소리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생각을 사로잡아서 생각이 굉장히 조용하고 차분하고 맑아야 된다. 생각이 더럽혀지면
마음이 더럽혀지고 행동도 복잡해진다. 두려움이나 열정이나 그어떤
일에 분주함에 방해받지 말고 우리의 소망을 오직 은혜에 두라는것이다. 산소망은 우리에게 날마다 거듭남을
산출한다. 우리는 은혜안에서 완전히 누림을 기대하면서 가는것이다. 작은
분깃 같지만 이것이 온전하고 완전한 단계까지 가게 되여 지면은 영광으로 영광에 화하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은혜 안에서 완전한 누림을 위하여 가고 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에 똑 같은 체험이 없는 사람은 알수도 없고 볼수도 없고 그런 것이 어리석게만 보이는 것이다. 이제는 가치를 아는자 되기를 원한다. 은혜를 헛되이 받는자 되지
않기를 원한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