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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룩한 제사장이 될찌나라 | 이명빈 | 2022-09-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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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2:4-10절 개역개정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5.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들이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그들을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가
신령한 젖을 먹었다는 것이다. 신령한 젓을 먹으면 우리 안에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도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도 버리게 되여 지기에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한 행동으로 주님을 나타내드리는 택한 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말씀을 먹었는데 자라지 않는것도 문제가 되지만 말씀을 먹지 않고는 자라는 법이 없다.
2:4절: 베드로는 1:3에서 그리스도는 나에게 산 소망이라고 표현하고 1:23에서는 살아있는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오늘 2:4에는 산 돌라고 표현하면서 예수님을 자기가 만난 그대로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도 내가 믿음 믿음만큼만 표현하고 간증 할수있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육으로 만나서 동행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으니 베드로에게는 주님은 부활의 영으로는 자기 안에 오셔서 늘 동행하시고 역사하시고 그를 인도하여 가시면서 주의 사역을 하시는 살아계시는 분이신 것이다.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이제는 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니 “금과 은은 나에게 없으나 나에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예수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니 그 말씀에 반응하고 믿고 일어나 걷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가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이 말씀이 생명 맞아요 하는 이런 앉음 뱅 이 자리에서 일어나시기를 축복한다. 하나님의 원하시는 보배롭고 신령한 집은 말씀이신 그리스도이다. 이것이 몸이니 받아 먹으라 하고 떼여준 것이 한 조각 한 조각 말씀이다. 이것을
떼여서 날마다 먹다 보니 내 안에 신령한 집이 세워지는데 예수가 되여 져가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혀져 가는것이다. 성전건축에 가장 중요한 것이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 이시라는 것이다. 나는
버려지고 죽어져야 할 자이다. 죄인 중에 괴수인 내가 주어가 되여서는 안 된다. 주님이 감정이 중요하시고 주님의 뜻이 중요하고 주님이 내 삶에 주어가 되여 져야 한다. 2:5절: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신령한 제사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대로 살아내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는 것이고 이것이 복음이다. 어떠한 것도 이 땅에 남는 것이 없는데 오직 예수로 말미암아 지어진
집만이 이 땅에 영원히 남는 것이다. 이사야 54:12에는
홍 보석으로 내 성벽을 지으며 라고 말씀하신다. 홍보석이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통과한 부활이
생명이다. 나의 육성으로 나의 열심으로 나의 재능을 가지고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니다. 저주받은 이 본성안에는 아직 벗지 못해서 섭섭한 것도 많고 걸리는 것도 많고 나를 상자에 올려서 귀신처소를 만들다보니
남도 괴롭게 하고 자기도 더럽히게 되여 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들이 움직임 속에 인
방에 다 피를 발라서 옛사람이 죽어지고 속 사람이 나타나게 되면 부활의 생명으로 살리는 영으로 회복의 영으로 역사하게 되는것이다. 부활의 영이 되여 지면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영으로 소생 되여서 짓게 되는 것이다. 6절: 그를 믿는 자는 절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신다. 전에는 내가 산 당과 주상을 쌓고 있을 때는 자존심이 왕이고 자아가 왕이기에
누가 건들이면 용납이 안 된다. 장대에 걸면서 체면이 상하고 자존심이 너무 상하였는데 산 돌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나에게 보배롭고 신령한 집을 지어가니 더 이상 수치가 아니고 스스로
내 안에 허물을 내가 걸게 되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것도 드러나면 날수록 예수 앞에 자랑이 되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가 중요하지 더 이상 내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하여 내가 예수를 닮아가고 내 죄를 알아서 깊은 우물을 판다더니
정말 뼈 속깊이 숨어있는 정체까지 보게 되여 져서 너무 감사한 것이다. 7-8절: 말씀을 믿지 않음으로
날마다 부딪쳐서 식구들한테 부딪히고 말씀에 부딪히고 날마다 무너지고 부서지고 이런 자 되지 말고 무슨 말씀을 주든지 평소에 겸손함으로 받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아멘 이 되고 회개하고 돌이키고 근신하면서 열심을 품게 되니 그 말씀이 나를 너무나 신령한 집을 짓는 보배로운 돌이 되여 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38년 꼬불아진 자가 (땅만
보고 뭐가 그리 서러운 것이 많은지, 뭐가 그렇게 불만이 많은지)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아듯이 우리도 고침을 받아서 이 꼬부라진 것이 펴져서 하늘에 그 신령하고 그 기이한 빛의 세계가 사방에서 비치여서 다 아름답고
다 귀하게 보이는 역사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9절: 누가 봐도 우리들은
만민 중에 불러내셔서 택하신 족속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된다. 스스로 옥에 갇혀있는 자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같이 울어주는 것밖에는 없다. 예수님도 이렇게 철없이 울고불고 하는 나를 그냥 들어주셨다. 아직 우리는 미완성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딱 인쳐놓으시고 너희는 될 거야, 너는
그렇게 갈 거야, 하나님이 우리를 보증하신다는 것이다. 엘리야를 찾아가셔서 너는
왜 그러고 있니? 말씀하시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을 하신다. 우리를
어두움에서 불러내셔서 기이한 빛이 되게 하시고 어쩌면 손이 가고 발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본적이 없는데 우리를 보면서 예수님을 본 것 같고, 그
불 같은 연단가운데도 평안하고 내 죄로 여기고 가다보니 하나님 나라가 저런 것이구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되여 진다. 미물에 불과한 그 기이한 것을 맛만 봐도 이렇게 애통이 되는데 그 주님께서 이 더러운 것에 오셔서 박해를 받으시고 핍박을 받으시는 것을 눈이 열려서 본다면 눈물 없이는 갈수가 없는 것이다. 10절: 전에는 백성도 아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였고 떡과 포도주만 내는 멜기세댁에 반열에서 복을 받은 자로 구별하여 인치셨다는 것이다. 남
만들어지는 막대기로 쓰임 받지 말고 정말 말씀을 생명으로 취하여서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를 간절히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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