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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목자 나의 예수님 | 이명빈 | 2022-10-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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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베드로전서2:21-25절 개역개정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하나님이
아담에게 에덴동산에 모든나무의 실과는 임의대로 먹을수 있으되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세계의 모든 축복건을 다 잊어버리고 자기심령안에 저주받은 땅에서 일어나는 가시와 엉거퀴만을
먹으며 종신토록 땀을 흘리고 수고하면서 서로서로의 적대관계에서 경쟁코드에 물려서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 갈수밖에 없는것이 저주이다. 이렇게 한마디 불신종이 전인류를 멸망케 하는 자리에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보는 죄와 하나님이 보시는 죄에는 엄청난 궤리가 있다. 말씀을 우리의 삶에
기준으로 삼고 말씀이 삶의 지침이 되였으면 좋겠다.
21-22절: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본을 보이시고 가셨다. 그분은 죄도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신 분이다. 그분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에 나오는 말에 엉키고 실수를 하면서 살아온다.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기에 한치도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 갈수가 없다. 내 양심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전히 거짓과 교만과 자기를 사랑하고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돈을 사랑하는 이런 자리에 들어간다. 내
양심이 하나님의 영으로 회복 되여 지고 우리들이 마지막이 오기 전에 이 죄의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한다.
23-24절: 우리가 죄로 인하여 받을 모든 수치와 모욕과 핍박과 죽음까지도 그분이 대신 받으셨다. 그 중한 고난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분이 우리의주님이시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확실히 보았기에 “보라 세상죄를 지고 가시는 어린양이로다” 고백했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영으로 회복이 되여야 하나님이 경영이 보이기 시작하고 우리의 주홍빛같이 붉은 죄로부터 한땀한땀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여지는 것이다. 이 시간에 나의 구주, 예수님을 꼭 만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받아야 할 죄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진노하셨는데 그 진노의 심판을 주님께서 단번에 우리를 위해 지신 것이
십자가이다. 적어도 양심이 있다면 말씀을 들을때 우리가 어찌할꼬 하면서 내죄에 대하여 부끄러워 할줄을
알아야 하고 이 죄성을 가지고 사는것 때문에 통회하며 가슴을 치며 회개 하는자가 돼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구원받은 자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우리는 이미 끝냈다. 이 끝냄이 새사람이 시작이다. 여기에 우리는 모양을 꾸미고 카멜레온처럼 계절 따라 색갈을 바꿔가며 변장을 해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 대신에 상함을 받으시고 죽어짐으로 말미암아 내안에서 사망의 영들이 치료를 받고 생명의 영으로 변화되는 역사 일어난것이다. 이 시간에 이 말씀이 믿어지는것이 은혜 입은 자 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고난이
우리들로 하여금 부활 안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우리안에 사망의것들을 치료하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이것을
조금이라도 맞을 봐도 천국을 다 얻은 것처럼 기쁜 것이다. 부활의 영이 들어가면 상함도 없고 해함도
없고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다고 하시는 것처럼 정말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럴수 있지 이해가 되고 묻어지고 가게 되여진다. 말 한마디에 눈빛 하나에도 쏘이고 쌓이고 묵이고 하는 것은 내안에 부활의 영이 미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누가 뭐라도 부활의 영으로 유유히 바다를 밟고 걸어갈수 있는 이런역사가 일어나면 심령가운데 천국을 보여주고
누리고 갈수 있는것이다. 왜 나는
밴댕이 속앓닥지처럼 말 한마디에 안색이 변하고 이러는지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면서 말씀으로 자꾸 들어가셔야 한다.
내 안에 귀신의 역사와 싸워야 한다.
25절: 전에는 길잃은 양처럼
갈바를 몰라서 분별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영혼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만났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날마다 나는 선한 목자라 하신다. 진정한 목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을 공급받아서 맡겨준 양떼를 좋은길로
이끌어 가신다. 하나님께 나온 목자는 예수님밖에 없다.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시는 영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말씀에서 만난 것이다. 시편23편에 다윗은 이런 영혼의 목자를 만난 것이다. 양의 가장 큰 위기는
목자의 부재이다. 시편 23편의 고백처럼 다윗이 깨진 것처럼
우리들도 주님이 내 인생에 고비고비마다 나의 목자라고 간증할수 있는 간증거리가 있어야 한다. 수십년을
성전 뜰을 밟고 살았음에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말씀에 감동도 없고 성령의 체험도 없고 구원주가 누구신지 모르는 이렇게 길 잃은 양처럼 헤메이지
말고 정말로 영혼의 목자이신 말씀앞에 잘 양육받는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감정안에서 주님이
목양이 넘 필요한것이다. 감정에 기복에 메여서 살지 않게 하시고 감정도 위로를 받고 상한 심령을 위로를
받고 우리의 의지 역시도 위로 받게 하시고 교정을 받게 하신다. 주님은 늘 옳으시다. 우리가 아닌 것 같아도 주님은 백프로 옳으시다. 주님은 천국에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잘했다고 칭찬하시는 그런 목자로 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육에 있을 동안 우리와 똑 같은 육을 쓰시고 때마다 시마다 말씀으로
만나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살아있는 우리의 목자가 되기 원하셔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다.
엔마우로 가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그들의 오해와 갈등을 풀어주시고 그들이 마음이 뜨거워지게 하셔서 그분이 목자이신 것을 알게 하신다. 오늘날도
우리가 구원에 대해서 잘못알고 잘못해석하고 방향을 틀고 할때마다 누구를 보내시든지, 성령을 보내셔서
깨닫게 하시고,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셔서 우리 마음이 돌이키게 하여주시는 이 모든 전반적인 구원의
역사는 주님의 목양이시라는것이다.
그리스도가 우리안에 생명의
주시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가야 되는 우리의 본이시다. 부활의 영으로 우리안에 오셔서 말씀을 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그대로 되니라를 우리교회에서 체험 하지 못했다면 이것은 죽은 신앙이다. 주님은 날마다 말씀으로
경영을 이끌어가신다. 우리의 타고난 경험과 성향에 목양을 받지 말고 말씀만이 목양이다. 말씀을 잘 받으시고 질서에 순종하고 가다 보면 보기에도 아까운 주의 사람이 되여질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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