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목자 나의 예수님 | 최은숙 | 2022-10-30 | |||
|
|||||
|
< 나의 목자 나의 예수님 >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내적 증거가 있는가? 그리스도 예수님은 누구신가? 나는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 내게는 어떤 분으로 역사하시고 계시는가? 알아야 하고 이 시간 듣는 메시지를 통해 나의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시간이 되기를 원하고 예수님은 나에게 어떠한 분이신지 바로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것이 죄이고 상관없이 살면서 열매 맺는 것이 모두 죄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사형 선고를 내리시고 “반드시 죽일지니라.” 하십니다. 우리가 볼 때는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는 죄의 문제는 우리와 심한 괴리가 있습니다. 아담에게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신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 엄청난 죄이고 이 말씀 한마디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세계의 아름다운 축복권을 잃어버리고 인류를 멸망하게 하는 자리에 들어 온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기준을 삼는 삶의 지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일생에 애쓰고 힘썼던 모든 일을 내려놓고 마지막 홀로 남는 죽음의 순간에 다른 사람은 다 내 곁을 떠나지만 주님만은 나를 지키시고 끝까지 나를 떠나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일대일 대면이 육 있는 동안 일어나야 하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죄에 대해서 조금도 용납하시지 않는 거룩하고 공의로운 주님 앞에 서려면 대면이 있어야합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리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앙으로 예수님은 누구신가? 또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회개하고 돌이킨 자, 주의 보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을 인정받은 자, 주의 보혈로 씻김을 받은 자 이런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원본이고 말씀만이 우리의 본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본으로 삼아서 우리가 그리스도로 재생산 되어 가는 과정이 바로 이 예배시간입니다.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절,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하나님과 일대일 관계에서 구원의 본을 보이시고 가신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고 내 양심이 하나님의 영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하나님이 경멸하시는 거짓과 위선과 교만과 자기를 사랑하는 돈을 사랑하는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우리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문제를 해결 받아야합니다. 24절,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우리가 죄를 인해서 받아야 할 모든 수치와 모욕과 핍박과 죽음까지도 주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그 고난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내 속에 있는 모든 죄를 다 주님께서 맡으셨습니다. 영벌로 들어 갈 수밖에 없는 엄청난 죄를 주님께서 생명을 대속해서 대신 져 주시고 죽어주신 은혜를 안다면 그 사랑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의 영으로 회복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경영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주홍빛 같은 붉은 죽을죄로부터 말씀을 받으며 변화를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로우신 통치 안에 자신과 자신과 관계 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면서 복종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상함으로 나음을 입었기에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으로 만날 줄 아는 역사가 일어나야하기 때문에 자신을 쳐서 말씀 앞에 복종하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부활 안으로 들어가게 합니다. 부활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의 사망에 속한 것을 치료하기 시작합니다. 부활의 영이 들어가면 이해가 되고 묻어지고 쏘이지 않게 됩니다. 부활의 영으로 유유히 바다를 밟고 건너 갈 수 있습니다. 심령천국을 누리고 갈 수 있습니다. 25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전에는 목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제 소견대로 살아 길 잃은 양 같이 갈 바를 알지 못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양떼를 먹이시는 영의 목자이신 예수님을 말씀에서 만난 것입니다. 다윗은 영의 목자를 만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23;1) 라고 고백을 드린 것처럼 우리들도 내 영혼의 목자가 예수님이시고 나의 모든 길을 선한 길로 인도하여주시는 것을 가슴으로 받고 믿어야합니다. 주님이 내 인생의 나의 목자 되심을 간증 할 수 있는 간증거리가 있어야합니다. 길 잃은 유리하는 자처럼 헤매지 말고 영혼의 목자이신 말씀 앞에 잘 양육 받는 역사가 있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목양을 하신 결과 우리의 생각이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복잡했던 생각도 정리되고 어찌할 바를 몰라 방향을 잃고 헤매다가 말씀으로 답을 찾게 되면 감정도 정리가 되고 행동반경도 간결하게 됩니다. 우리의 감정도 주님의 목양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올곧은 길로 인도함을 받아 감정도 위로 받게 하시고 상한 심령도 위로받게 해주고 교정 받게 해주십니다. 인생을 살면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 내 생각과 의지도 방향도 하나님께서 설정하시고 지휘하시며 시온산 성전으로 이끌어 가시는 100% 옳으신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살아있는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원해서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실 이유가 있으신 것입니다. 생명주는 영으로 빛의 세계로 생명의 세계로 우리 안에 거하실 때 그 분의 뜻을 따라 돌이켜 순종하며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엠마오에서 만난 제자들에게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 말씀을 하실 때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깨닫고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게 되는 것이 주님의 목양인 것입니다. 우리도 갈등을 겪으면서 주님에 대해 어긋난 길을 갈 때 누군가를 보내셔서 성령으로 깨닫게 해 주셔서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여 주시는 모든 것이 주님의 목양입니다. 이분이 우리의 목자인신 것입니다. 우리의 초점을 주님께로 향하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임한 후에는 영의 역사가 심령 가운데 풍성해졌습니다. 심령 안에 성령의 역사가 풍성한 사람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에 확신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생명의 주님이시라는 것과 그 분을 따라가야 하는 우리의 본이 되십니다. 우리는 생명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타고난 경험과 성향의 목양을 받지 말고 목자장이신 예수님의 목양을 잘 받아야합니다. 말씀만이 목양이므로 말씀을 잘 받고 질서에 순종하고 가면 주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구원의 도구가 되시고 구원의 구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고 안내해 가시는 감독자로서 체험을 하고 주님께서 다 해주시고 미리 정해 놓으신 것을 순종하고 가면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이 갈라지듯이 주님은 우리의 본이 되시고 목자가 되시고 감독이 되시는 것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모르는 허물투성이이고, 예수님은 만군의 왕이시고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족입니다. 구원의 자존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구원을 이루면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