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구원하는 표 | 최은숙 | 2023-01-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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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를 구원하는 표 > 성령이 임하심으로 인해 크신 능력이 그를 덮고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하나님의 아들이이라 일컬음을 받는 예수를 만난 자는 이날이 너무 기쁩니다. 2000년 전에 마리아 속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의 심령에 오셔서 내 안에서 먹고 마시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구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신앙고백이 기쁨으로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가?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는 고백처럼 주님 뜻대로 하기 원해서 내 그릇을 내어드리고 사용당하고 무익한 종 사용하여 주심을 감사하고 나같이 비천한 자에게 말씀으로 찾아와 주셔서 나로서는 갈 수 없는 생명의 세계를 주께서 말씀으로 인도해 가시는 그 사랑에 늘 감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이 마리아의 순종으로 이루어졌듯이 말씀에 순종함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심령 가운데 나실 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장1절에 사도요한이 성령을 받은 후에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되는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고 확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울도 주님을 만난 후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라고 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심령 가운데 오신자도 있고 동행을 하고 그 안에서 예수가 공생애에 들어간 자도 있고, 씨앗이 심어진 자도 있는데 아직 육성의 근본 된 토지를 갈아엎지 못한 자들은 망령되이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민수기에 광야에서 달린 뱀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데 이 뱀은 실제가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패역할 때마다 그래서 엎드려 죽을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놋 뱀을 달아서 보게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상징하고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이시고 우리는 독이 없으신 주님의 형상을 입어야 하는데 형상을 입기 전에는 여전히 심령 가운데 뱀의 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근본이 성령이신데 우리도 근본이 성령이 되게끔 하나님께서 인생 채찍 사람 막대기로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 안에 요소가 인성이 아닌 신성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양육해 가시는 시점에 오늘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본받게 하려고 하시는데 우리에게 주의 마음이 없는 것에 애통을 하는 것입니다. 뱀이 사람 안에 들어왔고 모든 사람이 뱀으로 변했습니다. 입속에 거짓과 눈속에 교만 뼈 속에 고집과 허파에 위선 피 속에 혈기 이 모든 것들이 뱀이 들어와서 타락한 인생은 뱀의 후손 사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땅에 사람 지으신 것을 후회하시고 비로 사람을 쓸어버리고 구원의 방주를 지은 노아의 가족 여덟 명만 살게 하셨습니다. 그 때에 구원의 표가 노아시대에는 홍수의 물로 심판하시고 출애굽시대 때는 홍해의 물로 애굽 군대를 수장 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 구원의 반열에 인치신 것처럼 말씀이신 이 물이 우리를 갈라내시고 분별하시고 구원시켜주셔서 새 땅에서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은혜를 배설하셨습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신약은 물로 세례를 의미했는데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별하신 것입니다.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육과 영을 갈라내시고 여리고가 무너지게 하시듯 우리를 갈라내시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21절,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도 선악과는 자라고 또 자라는 것을 놓아두고 오직 선한 양심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좇아가야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표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으로 구원을 강청하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홍수를 통과 한 것이 세례 받는 예표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양심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홍수의 물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부활의 영으로 인해 그리스도로 사는 행동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으로 내안에 오직 그리스도가 사는 것입니다. 내가 죽고 부활의 영을 받아서 그 영의 인도함을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새롭게 변화된 행실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생명 안에만 있습니다. 세례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을 구하는 간청입니다. 세례받기 전에 우리는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통해 빛을 죄지은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회개하게 되고 구원받고 죄 사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으면 죽은 믿음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막힌 담을 열어 놓으시고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복음으로써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고 보고 들은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반영합니다. 세례장은 우리가 선하고 깨끗한 선한 양심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입니다. 물에 잠겼다가 올라올 때 선한 양심으로 부활의 영으로 참여하며 올라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는 죄와 허물입니다. 이것은 물 속에 장사 지내고 말씀으로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 안에 들어가니 모든 것이 사함을 받고 죄 많은 과가도 청산 되고 말씀의 사람으로 구원받은 하늘에 속한 주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 생명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생명주는 영으로 인해 살아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떠나서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과 세례를 통해서 생명주는 영을 살리는 영을 가지고 삶을 살다보면 늘 살려주고 회복시키고 세워주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세례의 실제가 부활의 생명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부활의 생명으로 거듭나기 위함입니다. 삶이 제단인데 무슨 일을 당할 지라도 참고 감당하면 육성이 녹고 하늘의 신성한 성품이 내 안에 들어와 모든 풍성을 행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들기 전과 들은 후는 완전히 달라져야합니다. 영육이 갈라져야합니다. 이제는 영광스럽고 존귀한 연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나도 살고 상대도 사는 가문도 세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받는 고난은 존귀하고 영화롭게 하는 그릇으로 영광스런 결과를 낳습니다. 그 결과를 낳으려면 모든 장소가 세례통이 되어져야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 넣어지는 것입니다. 죽으면 죽을수록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고 주님과 연합이 되어 내가 그 안에 그가 내안에 우리 안에서 나타나시는 분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예수 씨가 심어지고 예수가 자라고 예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면 천사와 권세와 능력이 그분 앞에 순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람이 되면 세상의 종노릇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모신 그릇 되기를 원하고 주님의 형상을 입어 거룩하고 존귀한 자 되기를 원하고 복의 근원되기를 원하고 진정한 복 있는 주인공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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