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박할 죽음 앞에 | 최은숙 | 2023-03-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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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박할 죽음 앞에 > 불신자에게 죽음은 끝이고 영벌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영원한 영광 에 이르는 참된 은혜로 멸망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건너가게 해주십니다. 성경에 구속사의 인물들의 죽음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이 죽음을 통해 나타납니다. 죽을 기회 되었을 때 잘 죽으면 가장 아름답습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준비 된 죽음을 통과해야합니다. 살아 있으나 육의 속성대로 살지 않고 생명의 주인은 주님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라도 오늘이라도 가야합니다. 부르심 앞에 늘 준비하고 사는 것이 심령천국을 맞이하기 위함입니다. 장막을 벗을 날이 임박한 베드로는 죽음 앞에도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았고 다만 자신이 받은 부활의 생명을 후진들도 받아 부활의 영력으로 로마의 핍박이나 연단을 이겨내기를 원하고 자신이 육을 벗는 가운데 어떤 것을 후손들에게 심어줄 것인지 남은 자들의 믿음을 걱정했습니다. 믿음 없고 영적 분별이 없는 자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미혹을 받고 쓰러지고 넘어지는데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이 진리를 생각나게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남은 자들의 영적 성숙을 위하여 어떠한 핍박과 연단과 미혹이 온다 하더라도 넘어지지 않도록 유언과 같은 메시지를 “항상 너희로 생각하게 하려 하노라.”하고 신앙의 진리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에 집중해야합니다. 우리 마음에 간절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원을 간절히 요청하는 사모하는 중심이 있는가? 진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그 생명이 거룩한 형상을 입게 합니다. 진리에 목표를 두고 주목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 예배가 있고 제물이 있고 거룩한 의식들이 있는데 진리를 찾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어서 갈 하고 하나님의 임재가 없어 애통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는 많은데 진리를 구하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 천국은 예수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 없이는 길이 없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롬1;25)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롬1;18)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고 막고 있는 행위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하나님 만나기를 원해서 찾고 사모해야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진리는 예수이고 예수의 영이 우리 심령 가운데 와서 죄를 대속하고 가신 그 능력으로 죄에서 자유하게 해 주시고 부활의 생명으로 우리를 주장하실 때 가능한 것입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거룩케 하시고 진리만이 우리를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시고 구원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진리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하게 해주십니다. 세상으로부터 건너오게 하시는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고도 진리를 놓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자가 있을까? 심히 두렵습니다. 자기 열심으로 진리와 상관없이 주의 전을 삼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사모하는 심령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예수님의 기도가 이것입니다. 진리의 영이 오시면 우리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그가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그가 행하게 하심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진리의 영과 연합 되지 않으면 하나님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은 종교인으로 영이 죽은 자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은 주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릇 안에 예수의 영이 담겨야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우리는 교만하여 스스로 배불러서 주를 찾지도 않고 부족함이 없다하는 것으로 속지 않아야 합니다. 구원의 공동체의 사명은 무슨 일을 하든지 늘 말씀이 생각나야 하고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고 믿음이 요동하지 않는 주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막 서신에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지 않고 오직 말씀이 생각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장막은 임시처소입니다. 심판을 준비하지 않는 죽은 믿음을 갖지 말고 바울은 육체는 날마다 후퇴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경주를 하며 천성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임박한 죽음 앞에 내가 어떻게 유언을 남기고 가야 할 것인지? 썩어질 것 지나갈 것에 매여 유언을 남기지 말고 말씀이 생각나게 하여서 늘 하늘에 소망을 두고 구원의 방주를 지으면서 세상과 상관없이 바다를 밟고 감당하고 불같은 연단이 와도 침몰 되지 않고 믿음으로 우리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고백하고 가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길 원합니다. 험악한 세상에 다음 세대가 살아 갈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자녀들의 영혼을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말씀이 생각나고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인생을 우리가 살아야합니다. 구원으로 이끄는 것이 말씀이 교과서이고 성령님이 스승인 것입니다. 생명 걸고 말씀을 잡아야합니다. 사순절을 지내면서 우리를 위하여 물과 피를 다 쏟으신 그 주님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도록 은혜에 보답함으로 구원에 애통하는 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작하신 이가 마치기까지 말씀을 이루실 때까지 이 말씀으로 우리들을 거룩한 형상을 입히실 것을 믿고 인생의 마무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 떡과 포도주만 내는 멜기세덱의 영이 함께하는 간증과 고백이 있는 주님의 형상을 입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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