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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말씀대로 살 수 없을까? | 최은숙 | 2021-11-2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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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말씀대로 살 수 없을 까? > <말씀 정리> 날마다 말씀을 듣지만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아 애통이 됩니다. 그러나 열심을 내고 애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곤고한 자에서 자유로움을 받을 수 있을까? 사망의 법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답을 몰라 헤매고 다닐텐데 바울이 열어놓은 그 길이 우리에게는 엄청난 영의 세계를 열어주는 생명책이 됩니다. 인간에게는 눈으로 보이는 물질세계,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세계가 있습니다. 영적세계와 소통하려면 영의세계를 지으신 하나님을 알고 만나야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육인 우리는 도저히 만날 수가 없는데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자의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빚으시고 하나님의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영의 세계도 함께 있는 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이 존재하는 그릇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거듭나기 전에는 영이 죽은 자에게 영의 세계를 설명해도 와 닿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를 어떻게 깨달아 알 수 있을까? 영의 세계를 이론으로 설명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아서 답답하고 힘들어할 때 주님께 매달리는 간구함이 있어야합니다. 살려달라고 변화시켜달라고 부르짖는 자에게는 어느 날 강단의 말씀으로 환경으로 지체 가운데 찾아오셔서 캄캄하고 막혔던 것들이 열어지면서 영의 세계가 열려지기 시작합니다. 영적인세계가 열리면 주님과의 교통이 눈으로 보듯이 귀로 듣듯이 가는 세계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거듭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이 내가 타고난 것을 애쓰고 노력한다고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변화 되려면 내 권을 쓰지 않고 죽은자로 여기고 나를 주장하던 자가 자신을 부인하는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영적 감각을 다시 배우기 원해서 하나님과 소통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영적인 세계를 살아 갈 것인지를 날마다 말씀으로 찾아와 가르쳐 주시는데 자신의 육과 혼을 내려놓고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의 중심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는 인간은 영과 혼과 육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영육이 다 구원을 받아야하는데 육은 육신이고, 혼은 지 정 의 의지와 감정과 이성이 있고, 영은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으면 하나님을 감지합니다. 나의 양심과 믿음이 순간 순간 성령이 문을 두드리고 조명해주시는 것을 직감 할 수 있는 능력이 영으로 살아나는 영적기능이 활성화되는 과정입니다. 영 혼 육을 지으셨을 때는 질서의 하나님은 영이 혼을 지배하도록 지으셨고 혼이 육을 지배하도록 지으셨는데 영이 죽으니까 혼이 통치함을 받지 못하고 자신 임의대로 하고 그 혼을 창조주를 대적하여 높아진 교만한 영 사단이 주장합니다. 이런 상황에 살다보니 저마다 제각기 자기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는 것이 복잡하고 지옥 같고 세상이 질서 없이 어지럽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것에 대해 로마서가 정답을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질서를 주시고 질서에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질서대로 살지 않아 질서가 무너진 피조세계를 보면서 인간의 타락성을 보게 됩니다. 질서를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의 다스림을 받아야합니다. 우리 영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령을 받아들일 영이 있어서 우리 안에 들어오시면 우리 영과 주님의 영이 하나가 되어져 내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죽었던 영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고 성령이 임하셔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내주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하면 성화의 구원을 이루는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는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영의 세계를 사모하게 하시고 영원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십니다. 성령이 함께하시는 자가 되면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닌 것과 영원한 세계에 접속 되어 사후의 세계를 갈 수 있는 소망을 두고 준비하고 볼 수 있는 것이 영으로 충만하여 천상의 움직임을 볼 수 있는 영적 성장이 일어납니다. 영이 오지 않으면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육신입니다. 영이 죽었는데 성령이 우리 영 안에 오셔서 우리를 다스릴 수 없고, 성령이 통치하는 영의 세계가 우리에게 오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혼을 사단이 주장하여 제멋대로 제각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기분대로 하는 생명 없는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런 실상의 상태를 로마서 7장 21절~25절까지 기록했습니다. 21절,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절,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을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24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대대로 믿음의 가문에서 자란 바울도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을 만난 후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빛을 모르고 내가 죽었고 사망에 속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신약서신을 써놓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열리는 영적 세계를 검증 받을 길이 없습니다. 사망의 저주의 법이 있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시고 자신이 모두 정답이라고 착각하고 가는 위선자가 되지 않도록 바울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하신 것이 시대적인 복을 받은 것입니다. 곤고한 자가 성령의 생명의 법을 만나고 난 후 삶이 완전히 반전 됩니다. 똑 간은 상황을 보고 해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을까? 수십년 교회를 다녀도 거짓 영을 이기지 못할까? 이것이 우리의 갈등인데 안 되는 것 때문에 애통이 되고 변화 되지 않는 자신이 싫어지는 것이 아구까지 차야 성령이 임합니다. 자족하고 있으면 평생 변화의 길을 못갑니다. 율법은 우리의 한계를 보라고 주신 것입니다. 1절,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주관하고 보호하여 주셔서 여전히 연약하지만 누구도 나를 정죄 할 수 없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소리에도 쏘이지 않고 세상이 두려워 떨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애통하고 회개합니다. 신앙의 가치는 내 안에 누가 있고 내가 누구 안에 있는가가 너무 중요합니다. 성령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 오직 천국, 오직 거룩에 있고, 나의 관심은 오직 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더 이상 내가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므로 모든 것 하나님께서 하시므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자신을 변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2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빛이신 성령의 법이 내안에 오니까 내 안의 곤고한 사망의 법을 보게 되고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눈으로 볼 수 있고 부당한 대우도 참아지고 자신이 변화 된 것을 자신이 느끼게 되고 죄의 종에서 자유를 누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신다는 말씀이 깨달아집니다. 말씀을 알아 갈수록 말씀의 능력이 무엇인지 생명이 무엇인지를 자신이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이 주시는 새로운 법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 주시니까 십자가의 법이 사망의 법을 깨뜨리시고 은혜의 법으로 옮겨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 안에 있으면 코람데오의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면 형식적인 것 사망 정죄 습관에서 다 풀어 주십니다. 3,4절, 예수님이 오셔서 율법의 완성 마침이 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지켜 살려고 해도 안 되던 것이 나도 모르게 뜻대로 살기를 기도 했던 것이 응답이 되어서 주님이 오셔서 참게하시고 용서하게 하시고 헌신하게 하셔서 나의 신앙생활을 그 분의 방식대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내가 증언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자신의 한계를 알게 하는 것으로 나는 말씀대로 살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게 되고 불쌍히 여기심을 청하는 죄인의 자리에 들어가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회개하는 이런 심령에게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주님은 죄인을 위해서 오셨고 나는 할 수 없음을 고백하면 주님이 내 안에 오셔서 말씀이 응하여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5절,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면 육신의 사람이고, 영의 일을 생각하면 영의 사람입니다. 위에 것을 찾는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인식합니다. 영의사람은 본질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의 사람은 영의 세계가 걸림돌이 됩니다. 6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절,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사망의 영에 속한 것으로 이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안식을 놓치고 늘 불안하고 근심하는 것은 그리스도 밖에 있기 때문입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환경이 막히고 감옥에 가도 찬송하고 기도 할 수 있는 샬롬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영의 생각은 평안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연합하면 신실해지고 정직해집니다. 구원은 깨진 질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교통하기를 원하시고 내 영을 살려서 하나님의 영을 담아 늘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준행하게 하여 하나님의 뜻을 두게 하십니다. 영이 죽어서 혼이 자기 마음대로 자기 생각대로 살아 생각나는 대로 기분대로 감정 따라 살아 타락했는데 타락의 본질은 질서가 깨진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행동은 다릅니다. 마음은 원인데 육신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육신이 혼을 따르지 않습니다. 항상 두 법에서 싸웁니다. 이것은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순종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것은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답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절제는 잘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잘 순복하도록 절제를 통해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정상적인 모습은 질서에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세상 소리를 듣습니다. 영의 사람은 말씀을 듣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이 약하다는 말씀은 구원은 받았지만 영이 약합니다. 어떻게 하면 영이 강해지는가? 성령을 따라 행하라 하시는데 성령의 역사가 내안에 없으면 성령공동체의 인도함을 따라야합니다. 매사에 순종하면 갈등이 없어집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고 두 법에서 날마다 싸웁니다. 그러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역사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영을 좇아 행하고 영의 일을 생각해야합니다. 늘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절제하고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말씀을 좇아서 순종하고 가려고 애쓰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노력하고 애쓰며 자기와의 싸움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해서 애통하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생명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육의 생각만 하고 영에 속한 사람은 영의 생각만 하고, 혼에 속한 사람은 혼의 생각만 합니다. 혼은 육보다 강해서 자기 꾀를 좇아 삽니다. 자기생각이 발 빠르고 괴략을 꾸밉니다. 자기에게 우리한 쪽으로 이끌고 갑니다. 혼의 생각은 항상 자신에게 있고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다. 혼이 강한 사람은 고집이 세고 기준이 항상 자기 자신입니다. 늘 하나님의 일을 번거롭게 만듭니다. 자신이 유리한 쪽을 찾습니다. 그리고 자기 보호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매우 교활 합니다. 상황이 불리하면 거짓말을 죽 먹듯이 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절대 하지 않습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의로운 척 거룩한 척합니다. 절대로 내놓지 않고 정숙한척 합니다. 자기 보호하기 위해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고 하려고 비판과 정죄도 잘합니다. 내놓지 않으면 인생을 망칩니다. 그런 그릇이 누구를 살릴 수 있겠습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이 빛이 들어갔다면 벗을 줄 알고 내놓을 줄 알아야합니다. 언제까지 두더지 같은 옷을 입고 속이고 거룩한 척 의로운 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고치고 변화 되고 벗어야합니다. 인도자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화되지 않는 것 때문에 애통해야합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여 진정성 있는 회개를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위선되고 거짓된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야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면 빨리 시인하고 인정해야 새 옷을 입을 수 있습니다. 순종할 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가면서 율법의 마침이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왕 신앙생활 하는 것 하나님께서 옳다 인정하시는 위치에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합당한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하시는 자리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말씀에 비추어 안 되면 애통도 할 줄도 알고 시인도 할 줄 아는 이런 자리에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 나 눔 > 로마서 8장 1절에서 11절까지의 말씀을 주실 때 듣고 은혜를 받아 다시금 되새김을 해 봅니다. 말씀대로 살아지지 않아도 심히 애통 한 적은 없지만 요즈음 들어서 저의 행동과 마음이 주님이 원하시는 말씀 들은 자로서 해야 할 자세는 아닌 것 같아 마음을 스스로 괴롭히고 있었는데 오늘 말씀을 듣고 많은 깨달음과 찔림을 받아 이렇게 저의 죄와 잘못된 행실과 벗어야 할 것과 시인해야 할 것을 적어봅니다. 제 안에 있는 죄와 사망의 법으로 인해 늘 정죄하고 비판하고 경우 이치를 따져 주위의 사람들의 숨통을 막히게 하는 자리에 들어가 동료들을 편안하게 해주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이래야하고 저것은 저래야 하는데 왜 이렇게 했냐고 따지는데 이것보다 더 저주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심장을 멈추게 해 숨을 막히게 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으니 얼마나 저주의 구렁텅이에서 사단의 노리개 역할을 했는지 부끄럽다고 말하지도 못 할 정도입니다. 영은 죽고 혼의 지배를 받는 저는 창조주를 대적하여 교만해진 사단의 영의 지배를 받아 내 생각이 발 빠르고 내 기준이 정답이고 쉬운 방법과 내게 유리한 방법으로 일을 몰아가며 나의 잔꾀를 내어 내 임의대로 묻지도 않고 내 뜻대로 행했던 일들이 무수히 많아 *임의*라는 단어가 나오면 도둑질 하다 들킨 마음입니다. 그리스도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고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씀을 듣고 애통하며 잃었던 생명을 다시금 찾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성령의 법안으로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또 한가지 자신을 너무 사랑하여 지기보호를 위해 상황이 불리하면 눈도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합니다. 참으로 교활하다고 하셨습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의로운 척 정숙한 척을 합니다. 남이 다 알고 있는데 해를 손으로 가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면 인생을 망치고 누구를 살릴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허우대는 멀쩡하게 안 그런 척하며 무엇이든 다 알고 있는 척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속빈 강정입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전하시는데 언제까지 멍청하게 듣고 유출병환자로 머물러 있을지 모릅니다. 로마서의 말씀으로 깨지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수박 겉핥기식의 삶을 돌이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고 깨달아 거듭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수 없이 회개를 외쳤는데 오늘도 부끄럽지만 다시금 회개를 합니다. 회개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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