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나눔

  • 홈 >
  • 커뮤니티 게시판 >
  • 목장나눔
목장나눔
여호수아(이재황 집사), 느헤미야(한상윤 안수집사) 목장 김수강 2014-02-02
  • 추천 0
  • 댓글 0
  • 조회 1085

http://yeisung12.onmam.com/bbs/bbsView/15/811156

 

예배 장소: 예성 기도원

말씀 요약
악인의 밟던 옛적 길
(욥기 22:15~20)

“네가 악인의 밟던 옛적 길을 지키려느냐‘”(15)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옛적 길을 가는 자는 엘리바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의롭고, 자기는 다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을 훈계하는 엘리바스를 봅니다.

그렇다면 옛적 길이란 무엇인가요? 홍수 이전의 인류의 번성했던 자들이 아담을 타락시켰던 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서 자신의 길을 가던 자들이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집 사고, 집 팔고 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라고 알았습니다. 그랬던 자들이 점점 악이 관영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 하셨던 그것이 옛적 길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심판을 자청하고 그 옛적 길을 갈 것인지 엘리바스는 욥에게 묻습니다. 욥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연단을 하는 것이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연단을 통하여 욥을 거룩하게 하셔서 성화의 구원을 이루어 가시기 위하여 다루시고 있는 것이고 그를 멸망시키시려고 고난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인생을 살면서 고난은 심판이다. 왜 심판을 받느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심판을 받는 것이고 심판의 결론은 저주로 멸망이다. 라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의 법의 사로잡혀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호화스럽게 잘 살고 있으니까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있고 늘 욥이 믿음의 경쟁 상대방이다 보니 고통을 받고 저주의 표증을 가지고 있는 욥을 비난하고 비판하는 엘리바스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가운데 엘리바스처럼 상대방을 비판하고 판단하는 자리에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돌아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옛적 길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입니다.

홍수로 인하여 멸망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 앞의 거역하고 반역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최초의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지으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덴의 모든 것을 누리고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지만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금단의 열매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생각하기에 먹지 말라고 하는 금단의 열매 하나를 따먹는 것에 대한 죄의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나의 삶 가운데 주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행하고 있으면서도 이것이 크게 문제가 될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작은 것은 없는지 더듬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정죄 권이 없으면서도 보는 대로, 듣는 대로 엘리바스의 자리에서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나니까 그 때부터 하나님을 피하고 대적하고 거스리는 자리에 들어갑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난 후 그 속에 있던 죄의 속성이 아담에게 들어오니까 그때부터 하나님께 대적하기 시작하더니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주권에 침해하게 되어지고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가 인류 역사상 많은 사람들에게 이어지게 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작은 거역이 같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류의 죄가 시작이 되었고 그 죄로 인해 인류가 죄악 가운데 들어갔다는 것을 안다면 다시는 거역의 자리에 들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옛적 길은 이기심입니다. 자기 입장, 자기 생각만 가지고 있는 우리들을 이타적인 인생이 되기 위해 말씀으로 전환시켜주십니다. 선악과를 먹은 이유는 하나님처럼 된다는 소리에 먹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상대방을 위하여가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하여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가인의 자손은 자신의 이름을 위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살다보니 육체가 되어졌고 육체가 되어지다보니 하나님이 거하실수 없게 되어지고 옛적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기적인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지는 것을 아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 옛적 길은 교만입니다. 하와가 하나님을 반역한 이유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입니다. 지음을 받은 사람이 지으신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내가 지극히 높은 곳에 나의 자리를 자정하리라. 교만의 영이 인류를 통하여 내려와서 우리의 사상과 언어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아닌 내가가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했는데,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내가 어떻게 노력했는데, 내가가 중심이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교만의 옛적 길에서 떠나는 우리들 되기를 원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거듭 나지 않은 사람은 옛적 길을 가는 사람이고 거듭 난 사람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창조함을 입기 위하여 전환되어 새로운 산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옛적 길에 있습니까? 아니면 새롭게 창조해 주신 산길을 가고 있습니까?

한 주간 거역하는 영, 이기적인 영, 교만의 영으로 살았던 옛적 길에서 떠나 새롭게 창조해 주신 생명의 길을 가는 우리들 되기를 원합니다



 

김수강 목사

육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래식장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부모님이 이혼 하신 후 한번도 저희들이 당하는 어려움에 대하여 물어 본 적도 없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큰 아버지, 큰 어머니로써 위로의 말을 한 적도 없으신 분들이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래식장에서 자식으로써 도리를 했는가부터 시작해서, 왜 장래식을 기독교 장으로 하는가, 화장을 하지말고 산소에 묻어야 한다등등 불평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참고 참았지요. 그런데 저희 어미니가 오시니까 그때부터 어머니 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더이상 화를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습니다. 부모가 돌아가면 자식들이 가장 힘든거 아니냐구 왜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시고 불평만하시냐구 당장 가주세요... 그후 찾아가지도 않고 인사도 하지 않고 있는 제 마음 속에 늘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정말 욥이 세 친구들을 통하여 무슨 말을 하든지 예만 하면 구원의 시간이 될 것인데 끓임없이 친구들의 말의 자기의 소견을 내 놓고 있는 욥처럼 내 죄를 보지 못하므로 상대방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는 저를 보면서 그 환경을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다루시는 것도 하나님이신데 큰 아버지, 어머니를 인정하지 못하는 내 안에 거역하는 영을 보게 되었고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나의 정체를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봉완 집사

하루는 나눔의 집에서 김병기 장로님과 다툼이 있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 날 주은이가 장염이 결려서 아프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봐라 잘못을 하니까 자식이 아픈 것이지" 제 안에 판단이 들어갔습니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 죄를 보면 결코 다툼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 죄를 보지 못하니까 주은이가 아픈 후 제 딸에게도 장염이 왔습니다. 주은이가 아플 때는 내 죄를 보지 못했는데 막상 제 딸(기쁨)이 아프게 되니까 기도가 되어지고 상대방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보게 되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인정하지 못하는 내 안에 거역의 영, 나 는 잘했는데 상대방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기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임현준 형제

신학교를 가게 된 동기는 나의 자발적인 마음 보다는 장모님과 아내가 원했기 때문에 신학을 하게 되었고 1학기를 마친후 잠시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늘 나보다 아내를 위하여 신학을 해 준다는 자만심이 있었습니다. 예성교회에 오면서 다시 신학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설에 집에 가면 모든 사람들이 잘했다고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집을 갔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너가 신학을 한다고, 만약 너(현준)가 신학을 하면 내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다니겠다는 친구들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한번 내 안에 욕심(이기심)을 보게 되었고 아내와 장모님을 위하여 신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찬희안수집사

사업을 하다보면 물질때문에 마음 고생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설이 가까이 오면서 직원들의 월급을 줘야하는데 돈이 들어오지는 않고 시간만 가다보니 점점 마음의 무거워졌습니다. 한번 우리 목사님의 간증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나눔의 집을 운영하는 가운데 100%하나님이 주시 않고 90%만 주시고 나머지 10%로는 기도 할 때 채워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고 힘든 시간이 그때그때마다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자른 것 같지만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늘 사업을 하면서 어려움이 오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제 안에 거역하는 불신을 보게 됩니다. 이번 설 또한 원급 문제로 염려하는 나를 보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상윤안수집사

아침의 심미화 목사(아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차 사고가 났다는 것입니다. 아주대 근처에 있다고 연락을 받고 급하게 출발을 해서 아주대 주변을 다 찾아봐도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아주대 근처가 아니라 집 부근에서 사고가 난 것입니다. 현장에 도착해서 사고 경위를 확인했는데 도저히 내 생각으로는 사고가 일어날 수 없는 사고였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였지만 화가났습니다. 아내의 잘못된 운전 습관을 고쳐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화를 내고 바로 집으로 왔습니다. 말은 아내를 위한 것이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내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최동길 장로

사업때문에 부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주일이 되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수원으로 올라옵니다. 부산에 내려 가기 전에는 나눔의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말씀이 있기때문에 형제들의 어려움을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면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나눔의 집을 떠나서 살다보니 형제가 무슨 말을 하면 이해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나를 보게 됩니다.

박주석 형제

말씀을 듣고 삶 가운데 살아가다보면 말씀을 적용해야 할 때가 옵니다. 하지만 말씀을 적용하는 것보다는 내 육이 나도 모르게 반사신경처럼 나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육이 나오는 것처럼 말씀이 반사신경처럼 삶 가운데 적용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영모 집사
신홍근 집사
백영선 집사

설 명절 관계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 느헤미야 목장 연합 예배로 드렸습니다.

    추천

댓글 0

자유게시판
번호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목장보고서(기쁨,이레,화평)[ 김경화 2014.02.04 0 980
다음글 옛적길 (목장복고서) 양미경 2014.02.02 0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