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에게 열렸던 하늘 | 구인희 | 2011-01-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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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성경에 하늘이 열리는 은혜를 받은 인물들이 많지만 특별히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늘을 열어주신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시고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였습니다. 이방인 중에 경건한자 고넬료를 만나 죄사함 주시기를 원하시고 영생의 길을 주시길 원하셔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대행할 수 있는 살과 뼈가 있는 그릇이 필요하겠기에 베드로의 그릇을 쓰시고 주의 입이 되어 그에게 말씀을 선포하기를 원하시지만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심지 아니한 가라지로 인해 하나님의 진행과 말씀을 가로막는 자리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고 오늘 기도 중에 베드로를 만나 그 안에 있는 정체를 잡으시고 말씀에 굴복할 수 있도록 다져주십니다. 기도하기 전 베드로가 어떤 자였습니까? 성격도 급하고 욕심도 많아 다른 제자들보다 특심이 되어 주님을 따랐던 베드로. 이 욕심이 주님을 앞지르기도 하고 가로막는 자리에도 들어갔었지만은 3년 반동안 양육을 받으면서 예수님이 행하시는 모든 행적을 보고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을 통하여 주의 영이 그 안에 임함으로 엄청난 능력이 베드로를 통하여 일어나 3천명씩 회계하며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역사, 앉은 자를 일으키고 중풍병자를 고치며 죽은자를 살리기까지 하는 역사들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주셔서 베드로를 쓰시고 나타 나셨지만은 여전히 베드로 속에서 벗지 못하는 유대전통, 관습, 규례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장한 중에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영육간에 시장하였을 것입니다. 영적시장함이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몰라 헤매일때에 영적시장기가 있어 배고픔으로 말미암아 주님 앞에 간절히 영의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하러 갔던 베드로처럼 영혼의 세계에 양식이 부족하여서 시장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육적인 사람은 세상의 먹고 마시는 것에 매여 있지만 우리가 영혼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묻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응답으로 오지 않을때에는 영혼의 굶주림으로 말미암아 주님앞에 무릎꿇을 수밖에 없고 입술을 열때마다 주님을 부르면서 호소할 수밖에 없는 영혼의 굶주림의 시장함이 우리에게 있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주의 뜻을 묻자와 무릎을 꿇었을때에 알게 모르게 내안에 있는 기준, 내가 원하는 것대로 응답이 되기를 바라는 것처럼 베드로가 영육간에 시장할 때 기도중에 음식이 내려왔는데 보니 너무너무 먹기 싫은 음식이였고 지금까지 먹어보지 아니한 것이였고 더럽다고 상종치 아니한 부정한 음식이였습니다. 그때 당시에 유대인들이 상종치 아니하였던 이방인을 이 음식에 비유하시면서 보자기의 네 귀의 의미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주의 복음이 안 미칠곳이 없이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피값으로 사시고 난 후 모든 구원의 역사가 전 세계를 향하여서 열려져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잡아 먹으라’는 소리는 이때까지 네가 상종치 아니하엿던 사람들을 교제하고 사귀어서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구원시키라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기도중에 직접계시를 하늘이 열리면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과 맞지 아니하는 방법으로 내려오니까 두 번 다시 돌이켜 보지 아니하고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 하고 바로 자기소견을 이야기합니다. 자기 전통과 관례와 맞지 않으니까 계시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베드로에게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말라’ 거듭거듭 말씀해 주심으로 거역의 영을 하나님께서 빼셨던 것처럼 말씀에 순종치 못하는 내안의 거역의 영으로 인해 주님이 살아있는 성령의 역사를 방해하는 것들을 온전히 하나님께서 걷어내기를 원하셔서 세 번을 거듭 말씀하시는 사랑을 우리들도 말씀을 통해서 형제의 입을 통해서 지나 가실때에 하나님 은혜로 받는 우리들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얼마나 큰 능력을 행하는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있는 속성을 볼 수 있는 자가 되어 내가 얼마나 부정하고 더러운 중에 주앞에 구원을 받았고 주님의 생명을 속전으로 드려서 나를 살리신 은혜를 아는자가 되기를 원하셔서 주님의 능력앞에 무릎 꿇는 베드로가 되기를 원하셨고 자기소견을 쓰지 않기를 원하셨던 하나님. 베드로가 큰일을 하고 큰 능력으로 쓰임을 받아서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길잡이가 됬다 할지라도 여전히 베드로 속에도 선한 의가 나와서 하나님의 진행을 거부하는 속성이 일어났듯이 오늘 우리들도 십자가에 못박혀야 될 우리 속성들이 스스로 의로움으로 하나님의 진행을 막는자, 하나님의 계시를 거스리는 자, 말씀앞에 거역하는 자가 될까 두려워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들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이제 내가 속되다고 했던 것을 주님의 피로 정결케 하신 것을 알기 원합니다. 내안에 속된 것 부정한것도 주님께서 정결케 하셔서 사하여 주신 것을 알아 형제를 내가볼 때 속되다고 판단 할것이 없는 것을 아시고 천방지축 자기 생각에 꽉 차 있던 자를 3년반동안 양육하시고 주의 영을 그 심령가운데 부어주셔서 직접 하늘의 계시를 받으면서도 불구하고 거역할 수밖에 없었던 베드로도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완성을 이루기까지 끊임없이 품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우리에게 와있기에 오늘 우리들도 상대를 속되다고 판단했던 것이 제거되기를 원하고 상종치 아니하겠다고 거역하였던 것들을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기도하기를 하나님의 공의의 법이 오늘 우리에게 와서 사람을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거역했던 것들을 베드로와 같이 하 나님의 계시를 막는 속된 것을 보고 용서를 구하고 이런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앞에 은혜를 구하는 기도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베드로에게 유대전통에 얽매여 있던 것들이 오늘 우리들은 무엇에 얽매여 놓고 있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은혜가운데 가지 못하도록 묶고 있는 지를 발견해 내게 속된 것이 없도록 모두를 감당하고 모두를 주께로 이끌어 올수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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