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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심미화 2011-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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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1장1-18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하신일이 무엇입니까?열두제자를 부르시고 하늘에 비밀을 가르쳐주시고 그리스도의 영을 담아 하나님의 대행의 그릇으로 쓰시고자 그들을 훈련하십니다.

열두제자중에서도 가장 열정적으로 주님을따르던 베드로가 주님의 수제자가되어 오순절날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아 그가 가는곳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 하고 변화되며,죽은자를 살리시고 병든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누가봐도 주의 능력으로 행하는 베드로의 모습임에도 그의 심령깊은곳에 타락한 본성이 도사리고있음을 말씀가운데 드러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릇이 필요하시기에 베드로를 택하시고 그를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셨음에도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통과 율법에 매여 “주여!그럴수 없나이다”라고 거부하는 베드로에게 세 번 거듭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시므로 순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 구원받은 택한 선민이라고 생각하는 우월감에 젖어있든자들입니다.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초대교회 교인들 특별히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그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은 했지만 아직은 전통과 율법 에 매여

살고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과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가서 이방인들과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소식을 듣고 힐란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어떻게 구약의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할 수가 있는가

라고생각한것이었습니다.

11장1절에보면 그들은 베드로를 힐난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은 다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가 생각한 것이

가장적합하며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만을 구원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이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실

구원받는다고 하는 사실, 성령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처음에는 이들과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먹으라는 음식을 세번 씩이나 못먹겠다고 거절한 것입니다.

그런 그가 고넬료를 만나고나서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즉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자신이 잘못됐다고 판단되었을 때 비겁하게 핑계를 대거나 따지거나 하지않고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위대함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유대인들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차근차근 설명합니다.(5절~16절)

우리만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나만이 선택된 사람이라는 오만과 편견을 갖게 된 이스라엘사람들 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시는 구속사의 흐름을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사람이 누구관대 하나님의 능을 막겠느냐 내가 누구인줄안다면 우리가 어찌 여호와의 뜻을 거스리겠느냐 라고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며 베드로 자신도 자신의 분수를 알게 된것입니다.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이 누구인줄 안다면 만입이 있어도 할말이 없는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전에 예수님으로부터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 베드로도 고넬료가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이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기억난 것입니다.

유대인들도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원칙은 이방인들에게는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는 성령충만을 얻게 하지 않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는 물로 세례를 주지 않는 것이며 이방인들과는 교제하지 않는 것이 자신들의 원칙이었지만 베드로의 말을 듣고보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방인들이 성령충만을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방인들에게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지만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지켜오던 관습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습관을 무너뜨리는 것이며, 생활방식을 포기하는 것이며, 싫어하던 사람들을 사랑해야만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그렇게 하기가 너무도 싫었습니다. 설사 그런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가로 막는 것이라고 해도 그렇게 순종하고 싶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또한 아무리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도 지금까지 해오던 관습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는 속성. 살아온 습관을 바꾸고 싶어하지 않는. 오랫동안 익숙해진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싶어 하지않습니다.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과 장소와 환경에 대해서 거부하며 오히려 하나님이 뜻을 바꾸시기를 기대하며. 하나님의 의지가 꺽이기를 기대합니다. 가능한 하나님을 막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이 우리 속에 있습니다.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뜻을 거부한 요나를 생각해보십시오. 그가 알고 있었던 것은 니느웨가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의 수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은 민족을 멸망시킨 나라의 수도에 구원을 전파한다는 것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순종치않는 요나에게 스올을 경험하게하시는 하나님.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환경으로 몰고가시는 하나님 결국은 주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

베드로를 생각해보십시오수없이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리에 들어가는. 그는 당장의 죽음의 위협이 두려워서 주님을 거역하고 “주여 그럴수 없나이다”라고 모두가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주님을 버리지 않겠노라고 자만했던 베드로였지만 타락한 본성가운데 의로운것이 하나도없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된것입니다.

아브라함도 말씀으로 부르셨지만 끊임없이 자기길을 열고가는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격을 입히시기위해 환경을 통해다루시고 결국에는 열국의 아비로 믿음의 조상으로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라는 고백 으로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내가누구인지 근원을 알면 환경이 주의 뜻을 이루기위함임을 알아 모든 것에 감사가 되어지는 것입니다.“내가누군관대”하는 자신의 분수를 아는자되기를 원합니다.

예루살렘 성도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비로소 잠잠해 졌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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