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의 영 | 김경화 | 2011-04-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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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3:13~23(2011.04.17말씀) 본문의 13장은 바울의 1차 전도여행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바울의 대 전도여행은 예루살렘교회의 핍박으로 흩어졌던 유대인들에 의해서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에게 대한 성령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행 13:1-3). 교회는 이 지시에 따라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게 되었다. 요한 마가가 동행하였다. 바나바는 구브로 섬 출신의 레위인 요셉의 별명이다(행 4:36). 바나바는 초기에 그리스도교에 개종하여 자기의 소유지를 팔아 그 값을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바쳐 가난한 형제들의 구제 자금으로 하였다(행 4:36). 안디옥 교회에서의 그의 큰 역할을 볼 수 있다. 안디옥 교회에서 몇 사람의 구브로 사람과 구레네 사람들이 이방인에 대한 전도(유대인도 포함)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파송하고 그리고 그는 다소에 가서 사울을 데리고 왔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의 중진 지도자 중의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바나바는 사울 속에서 함께 하시는 창조의 영을 알았고 하나님께서 쓰실 큰 그릇임을 알고 있었기에 밑으로 들어가 섬길 수 있었다. 둘이서 한마음 되어 1년 동안 가르치고 세웠고 주를 섬겨 금식하며 사명을 감당했던 교회, 학연, 지연, 혈연 등 모든 것을 돌파했던 교회였기에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된다. 바나바와 사울이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내가 불러 시키는 일" 하라고 따로 세움을 받는다(행 13:1-3) 한참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교회인데 성령께서는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 선교지로 파송케 하셨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두 사람 중 그 누구도 빠져도 안 될 것 같은데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교회를 통하여 사람이 영광 받으려 할 때쯤 파송케 하셨다. 하지만 누구도 주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왜냐고 소리 내어 주의진행을 가로 막지 않았다. 이들은 먼저 구브로 섬에 건너가 섬 전체를 순회하고 그 후 소아시아에 건너가 밤빌리아의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였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나바의 고향인 구브로에서 총독서기오 바울을 전도하려할 때 말씀의 진행을 가로 막았던 거짓선지자 엘루마의 정체를 성령이 충만했던 바울에 의해 드러나게 하셨고 총독 루기오 바울을 구원하게 하셨다. 바울의 사역은 홀로가 아닌 적극적이고 팀워크였다. 바울이 사역에 생명을 걸었다 할지라도 그들이 없었다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구원이 나 혼자 능력으로 되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바울은 진리를 비 진리와 타협하지 않았기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바울을 통해서 나타났다. 성령의 지시함 속에서 움직임을 당했기에 13절부터는 선두주자가 바뀌었다. 지금까지는 바나바가 앞섰지만 구브로 에서는 바울을 쓰셨다. 루기오가 말씀을 듣고 회심하므로 경계에 섰던 바울이 온전히 주 앞으로 나왔다. 바울의 육성이 먼저 나가지 않고 주가 먼저 나가는 바울은 성령으로 준비된 자가 되었다. 바나바 또한 육으로 생각하여 바울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예수의 진행을 가로막는 자리에 들어 갈 수도 있었지만 영으로 깨어있었기에 주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에 동참 하였기에 오늘날까지 존경받는 인물이 된 것이다. 갈렙 또한 마찬가지였다. 출애굽 후에 갈렙은 여호수아와 함께 이스라엘 역사의 전면에 부각되었다. 가나안을 정탐했고, 다른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고 정탐했던 인물로 가나안이 허락된 단 두명이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다른 모양을 보인다. 여호수아와 함께 모세를 섬기는 일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똑같은 위치에 있는 여호수아를 섬겼던 갈렙 그러기에 여호수아보다 더 갈렙은 자신을 내려놓았던 자가 아니었을까? 우리도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헛된 영광 때문에 음부의 길을 가게 된다. “요한은 저희에게 떠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선교 중 포기하고 도중하차 한다. 바울이 심령을 세우고 악행 하는 자들과 싸워야 하는데 요한은 자기 기준에서 어쩜 말씀의 진행을 가로막는 자리에 있었기에 결국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바울이 냉정했었던 것 같지만 어느 시점부터 바나바의 이름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나바가 먼저 세움을 받았고 ⇒바나바가 다소에서 바울을 데려왔고⇒ 함께 사역 하였고⇒ 전도여행을 출발 할 때는 바나바가 앞섰고⇒구브로 섬을 지나면서는 바울의 이름이 앞선다. 이러한 성령의 흐름을 우리는 바나바의 겸손한 모습으로만 봐야할까? 두 사람이 예수의 제자로 헌신하며, 교회를 세우며, 심령을 세우며, 자신들의 소유를 다 팔아다 할지라도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기도하지 않고 깨어있지 않는 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우리를 통하여 일 하시지 않는 다는 경고의 모습으로 본문의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에 오늘도 사용하여 주심이 감사하다는 이 고백이 진리가 되길 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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