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생명을 이 그릇에 채우소서 | 홍양학 | 2011-0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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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3-23 바나바와 사울을 구브로라하는 바나바의 고향으로 보내심을 보게 됩니다.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못받는다고 하셨는데 바나바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어려움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들도 말씀에서는 이론이고 신령인 부분이 많고 진리로 알지 못하고 그래도 표적이 미끼가 되어 따르는것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 그 바예수라 하는 엘루마가 바로 나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또한 환경에서 드러나게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잘하던 기도도 막히고, 말씀도 안보이고, 무엇이든 다 할 것 같은 그 믿음 자신도 남도 속일 수 밖에 없는 박수의 역사가 점점 없어지니 이게 웬 일이예요? 잘못된것은 아닌가? 그렇게 잘 보이고 잘 맏추고 말씀 잘 전한다고 했던것이 끊어지는데 안되는 것이 되는것이라,마술의 역사가 끝나야 이제 생명의 시작인것을 알게 되어 다시 시작하겠다는 고백을 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앞서 기록되어 위치가 바뀌는것을 보게됩니다. 사울에서 또한 바울과 사울이라는 경계선에서 완전히 바울로 즉 "작은 자"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그릇이 되어 3차전도여행까지 이르러 교회를 개척 하며 굳건하게 하며 오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위대한 업적과 엄청난 영향을 이룬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특성은 적극적이고 늘 팀워크로 사역을 하였으며 훌륭한 조력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말없이 이름없이 보조하며 뒤처리를 해주는 협력을 하는 바나바, 실라, 누가와 같은 함께 생명을 건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이 홀로 갈 수 없는 것을 아시기에 아버지께서 붙여 주셨고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어야 되는 줄 압니다. 어떤것에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행치 아니하며 단호하며 진리를 비진리로 혼합을 하지 아니하는 생명을 걸고 푯대를 향해 달리신 것을 통하여 전능한 영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였습니다. 그들의 선교는 오로지 성령의 지시 하심과 인도하심이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이 바나바를 앞서 선두주자가 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 신앙의 년배나 교회사역도 바울 먼저이고 인격이나 인품도 바울 보다 앞섯지만 선교 여행가운데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는 엄청난 표적을 통하여 바울 안에 역사하시는 것은 육이 아니고 열심이 아닌 영이신지라 이제 바울이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되고 바나바도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 크고 작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찌 하던 간에 심령을 살리고 흐름에 인도함을 받는 그들에게는 홀연히 이면 체면 자존심을 내려놓는 바나바의 영성을 볼 수 있듯이 육으로 해석을 하지 않았기에 기꺼이 끝까지 감당을 하였음을 믿습니다. 구약의 배경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또한 이 생명을 볼 수 있음을 알게됩니다. 40년동안 묵묵히 섬기다가 어려울 때 십자가를 제가 지겠다고 문제가 터졌을 때 내것으로 안고 감당한 그 생명이 앞장 서 있는 여호수아 보다 더 귀한 우리가 취해야 할 영성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앞장 서고 싶고, 드러나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을 텐데 그림자같이 있다가 어려울 때 나타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내안에 없는 것임을 고백하며 그 생명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그 믿음 그 열정 그 생명 그 갈렙의 영이 우리안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그 중심이 이러한 역사를 쓰게 됨을 알게됩니다. 또한 전도여행가운데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수종들던 마가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갑니다. 우리안의 의로움과 남보다 자신을 낮게 여기는 것이 주의 길을 방해 하며 진행을 가로 막는 역사가 있는 것을 마가요한을 통해 보는 것 같습니다. 유대인이라는 할례민족이라는 우월적인 의식과 자신이 가지고 있은 경우와 소견이 그로 선교팀에서 떠나게 한것입니다. 얼마나 팀의 사역에 중상을 주었으면 2차전도여행 때는 바나바와 다투기까지 하며 데리고 가지아니하는 바울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다툼을 통하여 두 사람도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와 육을 보게 되며 더욱 육을 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나의 나 된것은 주님의 은혜요 모든 사역은 아버지가 하셨다고 고백을 하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사도들이 아니되였나 싶습니다. 아직도 온전함을 이루고 있는 육인지라 일을 중히 여김과 사람을 중히 여김의 어려움은 보지만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있어야 할 것은 에스겔서 1장에 온전한 생명의 역사가 때로는 사자의 형상, 때로는 인자의 형상 ,때로는 소의 형상으로, 또한 독수리의 형상으로 역사하는 온전함이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함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2차전도여행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계속하여 사역을 하심을 보게 됩니다. 냉정한것 같으나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사사로운 감정과 육정을 떠나 목숨을 건 바울을 통하여 이방선교와 주의 사역이 이루진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 변화 받은 바울이 그리스도로 살아 주의 역사를 쓴 것과 같이 우리도 부르짖기를 이 그릇에 부활의 영을 채우소서 기도하는 고난주간이 되고 부활절을 맞이 하며 사울의 인생이 바울의 인생으로 변회되었듯이 우리의 인생도 주님을 만나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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