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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생명을 이 그릇에 채우소서 홍양학 201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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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13-23
 예루살렘의 부흥과 동시에 스데반의 사건으로 일어나는 핍박과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수를 안디옥에 전파하여 이방인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안디옥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교회에서는 요셉이라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제자들의 발앞에 두며 제자와 성도들에게 "안위자  권위자"라는 칭함을 받아 성령이 충만한 바나바를  파송하였고 후에 바나바는 다소에서 주의 때를 기다리는 사울을 찾아 일년간 유하며 가르치므로  무리가 형성이 되었으며 이제 선지자들과 교사들까지도 세워지게 되는 온전히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는 교회가 되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칭함을 받으며 생명이 넘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부흥하고 역사하는 가운데 성령이  사람을 따로 세워 파송케 하심을  교회가 마음을 다하여 자신들의 원함과 뜻을 떠나 자신들의 소견을 쓰지 아니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며 보내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중심적이고  만의 필요와 원함을 추구하는 그리하여 주의 뜻과 흐름을 놓칠  밖에 없는 이기적인 정체를 보게 됩니다. 언제든 나의 뜻을 내려 놓고 내가 원하는 것을 버릴  많 보이는 주님의 손길과 뜻이 오늘  안에서 이루지기를 바랍니다.  한편으로  머물다보면 성도들의 우상과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취할 수도 있는 사람의 약하심을 아시기에 떠나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도 보게됩니다.
계동예성교회를 섬기는 가운데 모든것이  분이 말씀대로 이루셨고 지금도 아버지께서 일하심에도 불구하고 부지중에 자신을 드러내며  이름을 내려고 하는 속성과 아울러 심령들 가운데 예수의 이름을 남기기보다 나의 이름을 세기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신령으로나마 그런 자가 될까하여  성도들 앞에서 자신의 이름이 남기를 원치 않는다고 제단에서 전하기는 하지많은 여전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뿌리게 되는  때문에 두렵고 떨림이있습니다.처음부터 지금까지 성령님이 이루신 것이기에 머리털 만큼의 영광도 취하지 말아야 하며 취하고 싶지도않습니다무엇보다 교만과 자만 때문에 임재와 동행의 은혜 잃는 다면 이를 갈며 슬피  뿐인 것을 알아  조심스럽습니다 안에 주님의 영광을 취하고자하는 타고난 본성이 소멸의 영으로 바싹 태워지기를 바랍니다.제가 없어도 아니 제가 없으면  더욱  이루어져  것을 믿는 것은 창조의 영이 말씀하셔서 뭍이 들어 나게 하시고 없었던 것에서 있게 하셨으니 시작하신 분이 이루시고 풍성한 열매 맺을 것을 믿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구브로라하는 바나바의 고향으로 보내심을 보게 됩니다.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못받는다고 하셨는데 바나바에게 있어서도 그러한 어려움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계동에서 자랐습니다. 나를 알고 부모도 잘아는  에서 힘들고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면서 주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했었는데...이미 아버지는 이곳에 다 준비를 해놓으셨습니다. 예비하신 심령들이 있고, 성전이 있고, 물질도 있는데 들어나지 않았을 뿐이였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로 순종만 하고 따르기만 하면 되는데 내가 하는  착각하기에 괞이 근심하는것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듣고 따르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방해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방해자들을 보니 이곳에서도  믿는다는 사역자들이 오히려  도를 가로 막는 자신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남도 못들어가게 하는 외식한 바리새인들과 같이 비방하고 훠방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누구도 실체를 보지 못한 "바예수" 예수의 아들이라는 이름 가진 박수 엘루마였는데 성령이 충만한 바울을 만나  정체가 들어나게 되었고 대적의 기도에 소경이 되어 해를 보지못하는 것을  총독 서기오 바울은 말씀에서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표적을 보고 기이히여기며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우리들도 말씀에서는 이론이고 신령인 부분이 많고 진리로 알지 못하고 그래도 표적이 미끼가 되어 따르는것이 더 많은것 같습니다그 바예수라 하는 엘루마가 바로 나였다는 것을 말씀을 통하여 또한 환경에서 드러나게 하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그렇게 잘하던 기도도 막히고, 말씀도 안보이고, 무엇이든 다 할  같은 그 믿음 자신도 남도 속일 수 밖에 없는 박수의 역사가 점점 없어지니 이게 웬 일이예요잘못된것은 아닌가그렇게 잘 보이고 잘 맏추고 말씀 잘 전한다고 했던것이 끊어지는데 안되는 것이 되는것이라,마술의 역사가 끝나야 이제 생명의 시작인것을 알게 되어 다시 시작하겠다는 고백을 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앞서 기록되어 위치가 바뀌는것을 보게됩니다.

사울에서 또한 바울과 사울이라는 경계선에서 완전히 바울로 즉 "작은 자"로 등장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그릇이 되어 3차전도여행까지 이르러 교회를 개척 하며 굳건하게 하며 오늘 우리에게 이르기까지 위대한 업적과 엄청난 영향을 이룬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특성은 적극적이고 늘 팀워크로 사역을 하였으며 훌륭한 조력자들이 함께 하였습니다말없이 이름없이 보조하며 뒤처리를 해주는 협력을 하는 바나바실라누가와 같은 함께 생명을 건 동역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생명의 길이 홀로 갈 수 없는 것을 아시기에 아버지께서 붙여 주셨고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어야 되는 줄 압니다어떤것에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적당히 행치 아니하며 단호하며 진리를 비진리로 혼합을 하지 아니하는 생명을 걸고 푯대를 향해 달리신 것을 통하여 전능한 영이 그와 함께 하심을 볼 수 있는 것이였습니다그들의 선교는 오로지 성령의 지시 하심과 인도하심이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이 바나바를 앞서 선두주자가 되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게됩니다신앙의 년배나 교회사역도 바울 먼저이고 인격이나 인품도 바울 보다 앞섯지만 선교 여행가운데 바울을 통하여 역사하는 엄청난 표적을 통하여 바울 안에 역사하시는 것은 육이 아니고 열심이 아닌 영이신지라 이제 바울이 주역이 되는 것을 보게 되고 바나바도 따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누구 크고 작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찌 하던 간에 심령을 살리고 흐름에 인도함을 받는 그들에게는 홀연히 이면 체면 자존심을 내려놓는 바나바의 영성을 볼 수 있듯이 육으로 해석을 하지 않았기에 기꺼이 끝까지 감당을 하였음을 믿습니다구약의 배경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 또한 이 생명을 볼 수 있음을 알게됩니다. 40년동안 묵묵히 섬기다가 어려울 때 십자가를 제가 지겠다고 문제가 터졌을 때 내것으로 안고 감당한 그 생명이 앞장 서 있는 여호수아 보다 더 귀한 우리가 취해야 할 영성이  아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앞장 서고 싶고드러나고 싶고인정 받고 싶을 텐데 그림자같이 있다가 어려울 때 나타나 십자가를 지는 것이 내안에 없는 것임을 고백하며 그 생명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그 믿음 그 열정 그 생명 그 갈렙의 영이 우리안에 일어나기를 바랍니다아버지의 뜻만 이루어지기를 원했던 그 중심이 이러한 역사를 쓰게 됨을 알게됩니다.  한 전도여행가운데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수종들던 마가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 갑니다우리안의 의로움과 남보다 자신을 낮게 여기는 것이 주의 길을 방해 하며 진행을 가로 막는 역사가 있는 것을 마가요한을 통해 보는 것 같습니다유대인이라는 할례민족이라는 우월적인 의식과 자신이 가지고 있은 경우와 소견이 그로 선교팀에서 떠나게 한것입니다얼마나 팀의 사역에 중상을 주었으면 2차전도여행 때는 바나바와 다투기까지 하며 데리고 가지아니하는 바울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다툼을 통하여 두 사람도 다시 한번 자신의 정체와 육을 보게 되며 더욱 육을 쳐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며 나의 나 된것은 주님의 은혜요 모든 사역은 아버지가 하셨다고 고백을 하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는 사도들이 아니되였나 싶습니다.  아직도 온전함을 이루고 있는 육인지라 일을 중히 여김과 사람을 중히 여김의 어려움은 보지만 누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있어야 할 것은 에스겔서 1장에 온전한 생명의 역사가 때로는 사자의 형상때로는 인자의 형상 ,때로는 소의 형상으로또한 독수리의 형상으로 역사하는 온전함이 이루어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나야 함을 보게 됩니다그럼에도 2차전도여행에서 하나님은 바울을 통하여 계속하여 사역을 하심을 보게 됩니다냉정한것 같으나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사사로운 감정과 육정을 떠나 목숨을 건 바울을 통하여 이방선교와 주의 사역이 이루진것을 보게 됩니다

부활하신 주를 만나 변화 받은 바울이 그리스도로 살아 주의 역사를 쓴 것과 같이 우리도 부르짖기를 이 그릇에 부활의 영을 채우소서 기도하는 고난주간이 되고 부활절을 맞이 하며 사울의 인생이 바울의 인생으로 변회되었듯이 우리의 인생도 주님을 만나 변화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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