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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두주자와 조연의 아름다운 조화 구인희 2011-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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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계시에 순복할줄 아는 안디옥 교회 >

안디옥 교회에 모두가 주안에서 하나가 되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운데에 그들이 주를 섬겨 금식함으로 기도할때에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바나바는 초청된 초대 사역자이고 사울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쫓아서 성도들을 가르키는 역사로 인해서 그들에게 믿음이 점점 흥왕하여 지는 이때에 바울과 바나바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없어서는 안될것 같고 이들로 인하여 교회가 한참 성장되어져 가는 가운데에 왜 따로 세우라고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자리에 사람이 제단의 우상이 되어져 하나님 자리에 서면 안되겠기에 이들이 없어도 교회가 된다는 것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사람을 들어쓰셨다는 것을 증거케 하시기 위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안될것 같은 사울과 바나바를 빼시고 이방선교로 보내십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회성도들은 성령의 감동을 받고 계시를 받아 지도하는 사람들이라 왜 가야 되는지, 왜 보내야 하는지, 저 사람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사람의 소리를 내는 교회가 아니였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안에서도 가정과 교회안에서 성령의 임재하심 가운데에 엄위에 눌려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의 인격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바나바에서 바울로 바뀐 선두주자 >

13장에서는 1차 선교가 바나바와 바울의 계획으로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지시하심에 따라서 파견이 되었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임을 당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움직임을 당했을때에 지금까지는 바울을 애기할 때 앞에 꼭 바나바가 나왔으나 13절 부터는 ‘바울과 및 동행하는자’로 선도주자가 바뀌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인격이나 신앙의 연배로서 예수를 믿어도 바울보다 먼저 믿었고 교회사역도 바울보다 먼저 했으며 인품이나 인격 모든 면에서 바나바가 바울보다 앞섰지만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구브로에서 바나바를 쓰시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쓰시고 강하게 역사하시는데 그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니까 거짓선지자 엘루마의 정체도 잡아내고 위엄과 권세가 위풍당당한 루기오 바울도 말씀으로 회심을 시켜 개종을 시키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울과 바울이라고 하는 경계선에 섰던 바울이 이제는 완전히 성령에 붙잡힘바 된 그릇으로 넘어와서 그 그릇에 담긴 성령의 충만함으로 더 이상은 바울로 나가지 아니하고 성령의 계시를 쫓아 주님이 나가는 바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선순위가 바뀌었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은 누가 높고 누가 낮은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누가 먼저 믿었고 나중믿었는가, 누가 먼저 직분을 받았는가, 누가 옳고 그름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합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어서 영혼을 사모하는 심령을 받았는가 이것이 최고의 축복인줄 믿습니다.

< 헛된 영광을 좇지 않았던 바나바의 조연 >

바나바가 육으로 생각하여 ‘바울을 바울되게 한것이 나의 역할이었으며 바울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고 그의 입을 쓰시고 역사하실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회심을 했던 것들이 내가 길을 열었기 때문이야’ 라고 나왔었다면 바나바는 존경받는 인물로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권위나 자기의 공로나 인정받고자 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사람 살리고 세우는 일에 마음을 다했던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복음전파에만 오직 관심을 가졌던 바나바의 조연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믿음의 길 가는데 누가 나를 괴롭게 합니까? 크고자 하는 내 안의 욕심 때문에 영광을 취하고자 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함으로 주의 은혜에 구원의 감사가 없게 만드는 헛된 영광을 쫓는 것 때문에 음부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보듯이 갈렙이 그 많은 공로가 있으면서도 불구하고 40년 동안 한번도 이름 하나 거론하지 아니하는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말없이 눈물로 가나안 정복이 이스라엘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했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지도력을 그대로 발휘하여서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이스라엘이 이긴자가 되고 세상의 주관이 되어서 복음의 중심추가 되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했던 갈렙이 있었기에 여호수아의 승리가 있은줄 믿습니다. 이렇게 두 유형의 조화가 너무나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면서 이 두 사람을 통하여 협력하여 하나님을 뜻을 이루는 것을 보고 이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역사가 일어나듯이 우리들이 마음을 합하여 일을 할때에 우리들을 보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수 있는 믿음의 증표가 우리들의 생활가운데에서도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 진보하지 못하게 하는 각자의 믿음의 기준 >

그런데 선교여행중에 항상 좋은 일만 있는것이 아니라 문제도 생깁니다. 마가 요한이 선교팀에 합류해 선교여행을 떠났다가 선교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가 선교여행에 동참했을 정도면 어느정도 깨인자이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마음을 다할수 있는 믿음의 수준이 되어 생활이 불편했거나 사람들과 부딪히는 것 때문에 도중하차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내심 걸림이 되었던 것이 자기는 할례자라는 것입니다. 할례자 민족의 긍지가 대단하여 할례받지 않은 부정한자에게 세례를 주면서 믿음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 자신의 상식과 믿음의 율법으로 아멘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각자 믿음의 기준이 인격이 되어 이것이 하늘의 정답인것 마냥 고집을 피우고 가는 아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높아지고자 교만해진 것에서 끝까지 싸워 겸손한자가 되어 말씀 앞에 무릎을 꿇는 역사가 일어나야 될것입니다.

< 사람보다 계시를 좇아 교회를 굳게 세우는 사역 >

2차 전도여행때는 바울이 마가 요한과 동행하는 것을 반대하여 바나바는 마가라는 요한을 데리고 가고 바울은 신라를 데리고 떠나게 됩니다. 바울이라고 왜 바나바의 은혜를 모르겠습니까? 자신이 이방인을 위하여 하늘에서 사도로 세우셨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하늘에서 나온 말씀이라는 것을 검증 받을수 있었던 계기는 예루살렘에서 평신도로서 가장 믿음으로 신뢰받는 바나바의 변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교하는 것에서는 육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자로 하나가 되어야 생명을 살리고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기 때문에 바나바와 크게 다투는 것입니다.

사람보다 일을 중시하는 바울도 있고 일도 중시하지만 사람을 중시하는 바나바도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끊어냄을 당해야 될 가증 한것도 하나님의 참아내심 가운데에 위로를 받고 가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바울이 이렇게 냉정한것 같지만 3차 전도여행까지 마치면서 가는 곳마다 교회를 굳게 세우고, 가는 곳마다 이방신상을 떠나고 너무나 많은 업적이 있었는데 바나바는 더 이상 사역했다는 행적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사람앞에 이미지를 얻어서 좋은 환심을 사는 자 보다는 계시를 받아 주의 일에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사역에 적극적이고 비전을 가지고 내몸을 던져 불사를수있는 바울이 되기 원하여 기도하는 우리되기를 원합니다.

< 부활의 주님을 만나 내가 변화되는 역사 >

살기등등하여 예수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쫓아다녔던 사울이 어떻게 이렇게 회심하여 변화될수 있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온갖 핍박과 고난을 무릎쓰고 생명을 건 선교를 하는 사람으로 변했던 것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주의 능력이 그를 덮으셔서 그의 인생은 예수의 역사를 쓸수 있는 생명의 사람이 되어진줄 믿습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말씀가운데에 생명이신 영이 내 심령가운데 들어와서 사울처럼 나도 꼬꾸라지게 하시고 세상에 단절되게 하시고 이긴자가 되어 사울의 인생이 바울의 인생으로 바뀌었듯이 내 인생이 바뀌기를 원하고 바뀌어진 인생을 통하여 주님을 증거할 수 있는 생명의 그릇되기 위하여 환경가운데 죽임을 당할때 내 육을 십자가에 내어놓을 수 있는 자가 되어 부활의 생명을 담을수 있는 그릇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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