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합한 그릇 | 김경화 | 2011-04-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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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3:16~23(2011.04.24말씀) 바울은 예수와 같은 시대(로마제국 통치하)에 살았으며, 종교적으로는 엄한 율법아래에서 교육받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던 철두철미한 율법사상의 소유자였으며, 사회적으로는 헬라문화권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성장하여 어려서부터 이방문명 속에서 보고 배워 이방 문화에 박식하였으며, 특히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바울은 두 세계의 사람 즉, 유대인세계와 헬라인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내적으로는 철저한 유대적인 기질을 가졌으며, 그뿐 아니라 사울은 유대인들이 거의 알지 못했던 로마와 헬라를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그 누구보다 승한 자였던 바울, 생명 없이 자기 의로 꽉 차있었던 바울이 하나님을 만나 예수의 영이 함께하니 성령이 충만하여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행13:10) 이처럼 바울은 다메섹이라는 곳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 엎드러진 후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하나님에게 합한 그릇으로 쓰임 받기 시작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유대인들 입장에서는 바울이 경계의 대상이었고 함께 할 수 없는 자인데 하나님께서 회당장들의 마음을 붙들어 예수를 전하기 위하여 빛으로 회당장 안에 들어가서 구약에서 예표로 나타나신 예수를 증거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조상들을 택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애굽 땅에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40년간 악행을 참으시고,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시고 기업으로 얻은 후 그 후 사무엘을 통하여 다윗에게 기름 부어 하나님께 합한자로 인정받아 약속하신대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로 세우신 예수를 증거하고 있다. 말씀이 이러하니 삶속에 예수가 없는 유대인 당신들도 유대전통, 율법, 신분 배경, 학식등 생명과 상관없는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던 철두철미한 율법사상의 소유자였던 내가 만난 예수를 만나보라고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시대 시대에 그릇 속에서 나타나신 것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로 다윗을 찾으셨듯이 (삼상16:1~13) 타락한 땅의 것만 찾아 무덤에 머물러 시체 썩는 냄새 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일곱 족속의 속성인 혈기, 교만, 욕심, 시기, 질투등등 생명과 상관없는 것들 버리고 빈 무덤 되어 막달라 마라아가 만난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 또한 만나길 원하시며 부활의 영으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할 예수가 나타나길 원하신다. 다윗은 어떠한 그릇이었기에 하나님 마음에 합한자가 되었을까?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난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양을 지키며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을 생각지 않고 양들을 보살피던 다윗의 담대한 용기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도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갔던 순종의 중심이 있었기에 하나님께 합한자로 인정을 받았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교회, 가정, 직장, 사업등을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전 4:2)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순종의 중심이 있어지길 원한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불순종에 대하여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폐하심을 받게 된다. 우리도 항상 말씀 앞에 준비된 자가 되어 폐하심을 받지 말고 택하신자, 세우신자, 부어주시는자 의 그릇으로 쓰임받길 원한다.
부활주일을 지내고 우리가 선물로 받은것은 “마음의 완악함을 꾸짖으시니”(막16:14) 선물로 받으셨다고 말씀하셨다. 완악함으로 폐하심을 받을까봐 역시 하나님의 사랑이실 것이다.
말씀을 들을 때에는 하나님 없는 “내 생각” “내 뜻” 내려놓겠다고 다짐하지만 여전히 환경이 열려지면 “내 생각” “내 뜻”가는 연약함을 본다. 한명의 성도도 차량운행을 감당하지 못했던 우리들 내 기준에는 운전이 미숙하고 집이 멀기에 큰 길에 내려 주는 것이 내 기준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준은 그 자매를 집 앞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주길 원하심이었다.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남편의 교회에서 안수집사 임명식이 있었다. 남편의 입장을 생각해서 갔지 그곳 교회의 입장을 생각하면 가고 싶지 않는 자리였다. 하지만 그 곳에 도착하여 안수집사로 기름부음을 보면서 또 한 번 나의 교만함에 경악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교회의 목회자들이 하신일인데 “내 생각” “내 뜻”맞지 않는 다고 얼마나 교만한 말들을 했었는가.... 나는 언제나 하나님께 합한자로 서서 기름부음을 받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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