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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뱅이의 말씀 듣는 중심 김경화 2011-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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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4:8~10(2011.05.29말씀)

예수를 자기 기준으로 바라보니 구약에서 예언했던 메시야가 아니고 이단의 괴수로만 보였기에 예수 믿는 자들은 핍박하며 잡아서 죽였던 바울에게 예수가 빛으로 임하여서 바울을 꼬꾸러트리셨다.

그가 남보다 의롭다고 했던 것 ,혈기등등 했던 것 ,모든 배경과 여건등을 꼬꾸러트리셨다.

그를 하나님이 들어 쓰시는 영광을 받기 위하여서 예비한 그릇이 되게 하시기위해서 꼬꾸러트리셨다.

그 후 그를 성령에 감동에 의하여 이방인의 선교사로 파송하셨다.

그가 복음을 중심으로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현장을 두루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데 데는 항상 성령의 지시함속에 있었다.

때로는 우리의 사관으로 보면 사도바울이 임의대로 말하고 움직이는 것 같지만 바울은 다소에서 7년 아리비아에서 3년 훈련을 받으면서 온전히 주님을 담는 깨끗한 그릇이 되어 지도록 수행을 했고, 기도 생활을 해왔기에 이제는 주님이 그를 통하여 나타나셔서 더 이상은 입의 말이 말이 아니라 말씀이 되고, 보는 것, 듣는 것 이 모든 것이 주님 앞에 사로잡혀서 주님의 움직임 속에 언약궤에 말씀과 주님의 임재가 있는 구름을 통하여서 인도함 받았듯이 이렇게 인도함을 받았다.

그런데 우리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것은 왜 주님의 인도함을 따라 갔는데 계속 이 말씀이 증거 되는 곳에 이렇게 많은 어려움들이 일어날까?

의구심도 있지만 그것은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와 얻지 않기를 자처하는 자, 걸림돌 되는 자와 디딤돌 되는 자,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 부정한자와 거룩한 자등

계속 말씀으로 갈라내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 안에서 말씀을 들으며 거부하는 육이 들어 나게 되고 또는 영이 화답하여 영적인 형상을 하나님께 이루어 갈 수 있는 은혜 입은 자가 되어 지듯이 하늘이 있으면 땅이 있고, 신령이 있으며 진리가 있고, 영생이 있으면 멸망이 있듯이 모든 것이 짝이 없는 것이 없는데 이 말씀이 떨어질 때마다 이렇게 많은 어려움들이 일어날 때에 하나님께서 알곡과 가라지를 거듭거듭 거둬내시고 작업이 복음을 받는 자들에게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이처럼 바울도 어려움 일어날 때마다 많은 갈등과 핍박을 받으며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자기의 의로 사역을 감당했다고 한다면 기쁘고 좋은 날이 온다면 기쁘고 힘을 얻고, 핍박하고 죽이려 할 때는 사역은 침체가 되고 낙망했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바울이 아니고 그 안에 임재하신 주님이 인도하심에 따라 생명의 맥을 쫓아가는 것이기에 어떠한 핍박도 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끊어 낼 수가 없게 하셨다.

예수님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우리의 속성을 가시나무 인생에 비유하셨는데 이 인생 가운데 있는 싯딧나무는 아무 짝에도 쓸 때가 없다.

재목으로도 쓸 수 없고, 가시가 돋쳐서 찔러대고 피가 나게 하듯 우리 육성은 입만 열면 상대방을 찔러대고, 상처주고 낙망 할 수밖에 없는 육성인데 이 육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주셔서 모든 허물을 정금으로 감싸주셔서 겉만 쌓는 것이 아니라 안팎으로 싸게 하셔서 더 이상은 싯딧나무의 속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은혜로 감싸주시고 그 안에 두 돌판을 두셔서 이제 두 돌판으로 내 심령을 들여다보게 하셔서 죄인이라 구원받을 조건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구름의 인도하심을 따라 우리를 이끌어 내시듯이

바울이 주님의 언약궤를 담은 그릇이 되어서 더 이상은 바울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주님의 대언자가 되어진 것을 보게 하신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보면 주님이 함께하시고, 주님의 임재가 있고 주님이 허락하신 지시할 땅으로 가는데 왜 이렇게 고난과 핍박이 오나 비방과 죽음이 오나?

내가 예수 믿고 가는 과정에 어려움이 오고 병에 걸리게 되나?

그것은 우리는 100%로 은혜인데도 불구하고 자기의 공로와 선한 행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업적인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하나님의 영광을 받을 자리에 내가 취하여서 들어가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를 온전케 하시기 원하셔서 불가불 이렇게 이끄시는 하나님의 그 사랑이다.

그 사랑 가운데 영생에 합당한자로 걸러 내시는 가운데 생명을 얻기까지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신다. 표적과 기사는 생명과는 상관이 없는데 왜 보여주실까?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아! 저 사람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하고 표적과 기사를 보고 깨닫게 하시고, 말씀 선포자 에게는 어떠한 핍박과 어려움이 온다할지라도 실망하고 좌절하지 아니하도록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를 갖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진리이기에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가게 하시니 가고, 행하게 하시니 행하고 행했는데 행한 결과가 너무나 핍박이고, 죽음이고, 곤고이면 정말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을 표적과 기적을 보여 주셔서 내 뜻을 알게 하신다.

사도들에게는 용기를 갖게 하시고 다시 한 번 일어날 수 이도록 역사하시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의 은혜가 루스드라에 임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요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자이다. 그런데 이 앉은뱅이가 사도를 만나고 “네 발로 일어서라” 말씀이 명하여 지게 되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일어나게 되니 “뛰어 걷는지라” 이렇게 되어졌다.

우리도 구원의 과정을 살펴보니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앉은뱅이로 창조하지 않으셨다. 이 심령동산에 아름다운 성령이 열매만 맺게 만드셨는데 사단의 꾀임에 이 심령이 더럽혀 지고 주의 임재가 떠나가서 미워하고, 시기하고, 원망과 분쟁이 가득한 우리들의 심령이 되어졌다. 주님이 창조한 것이 아닌 다른 것들이 끼어들어서 타락 했기에 우리는 온전치 못하고 장애가 있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장애를 내어놓고 말씀 들으며 나를 일으켜 세우는 생명으로 받길 원하신다.

바울도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배경을 갖고 있었어도 성령받기 전에는 앉은뱅이를 이르킬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나니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능력이 나타나게 하셨다.

믿음은 들으면서 나서 말씀의 믿음의 씨가 심령다운데 뿌려지게 하신다.

말씀만 들었는데 생명이 되고, 말씀만 들었는데 성령이 임하니까 능력이 되어지니 불가능이 없어 병이 고쳐지고, 혈통의 저주가 끊어지고 ,날마다 안된다 죽겠다, 원망 불평했던 사람이 주의 능력이 임하니 할수있다 하면된다 이러한 신앙고백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말씀이 들어오니까 생명 없는 자가 생명이 들어오니 살아가는 방식이 틀려 지게 되고 길이 틀려지고 행하는 언행이 다 틀려지게 하시는 것이다.

“앉은뱅이가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자라”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되는데 걸어 본적이 없다는 것은 이 말씀을 정보로도, 지식으로도 듣었다는 것이다.

본문의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처럼 내게도 사모하는 마음 주셔서 말씀을 주목하여 볼 수 있는 자가 되게 도와주시고,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나를 쳐다 볼 때 구원받는 믿음있다는걸 보게 하여주셔서 내 일생에 이 예배가 내의 병, 저주, 본성 떠나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고 이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앉은뱅이가 일어나듯 뛰어걷는 우리가 되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이러한 기도를 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말씀을 들을 때 그런 중심이 있다면 생명이 들어오게 하신다. 바울은 앉은뱅이의 말씀 듣는 중심을 보시고 “일어나라” 명했을 때 한 번도 일어나본적도, 걸어본적도 없었는데 순종하는 믿음이 일어나 걷게 되었다.

우리가 신령으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추었는데 변화가 없고, 고침 받지 못함은 것은 강단의 말씀이 아무리 하늘이 열리고 능력으로 나간다 한지라도 내가 받지 않기에 아무 효험이 없는 것이다.

앉은뱅이는 듣기는 듣고, 먹기는 먹고, 입이 있어서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하고, 귀가 있어서 설교도 잘 듣고 신령으로는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믿음의 경력도 있는데 능력이 없어 변화가 없는 것이다.

그저 성전 뜰을 밟으면서 찬양 잘하고, 기도 잘하고, 누가 봐도 몇 십년동안 예수 믿는 것 같은데 그 안에 주의 생명이 없고, 주를 위해 희생한 적도 없고, 기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앉은뱅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에게도 본문의 앉은뱅이처럼 주님의 은혜를 받을 사모하는 중심이 있어서 앉은뱅이가 “뛰어 걷는지라” 은혜가 임하길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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