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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삶 이송남 201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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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의 이름은 유대식 히브리어로 사울인데 " "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난 그는 자신의 이름을 헐라어 이름로 바울 "작은 " 바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영으로 자는 다스리는 자가 보다 섬기는 자가 되기원하게 것입니다.

 바나바를 통하여 바울을 안디옥교회의 지도자로 세웁니다. 바울이 만난 하나님을 전하다 보니 믿는 자의 수가 많아지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질 때에 성령께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하시고 안수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이방인의 선교사로 파송합니다.

 바울이 많은 사람들에게 보냄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도 사랑의 빗진자 복음의 빗진자가 되어서 끝까지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기 원하셔서 사명자로 우리를 보내신줄 믿습니다. 바울이 보냄을 받을 성령에 충만하였고 자기가 원하는 길을  간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가운데 마음을 움직여 주시는 대로 갔습니다. 그러면 대로가 열리고 형통해야하는데 피박과 고난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보에서 거짓 선지자 바예수를 갈라냈고 버가에서 마가가 떠나게 되는 아픔이 있었고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 나는 일이 있었고 이고디온에서는 돌에 맞을 번했고 루스드라에서는 앉은뱅이를 일으키므로 그들에게 제사를 하려고 하는 자들 중에 뛰어들어가 옷을 찢으며 말렸을 돌로 쳐죽이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돌에 맞는 다는 뜻은? 예수를 믿는 연고로 피박과 비방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 앞에도 돌을 들고 나를 향햐여 던지는 자도 있을것입니다. 바울이 하나님을 만난 것은 의식적으로 이론으로 증거로 만난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생명으로 임하여 주시고 그에게 부활의 영이 담겨있기에 어떤 피박과 조롱과 고난이 온다할지라도 좌절하고 치우치지 아니하고 거기에 쏘이지도 넘어가지도 않고 툭툭 털고 일어나서 다음 성에 다음 심령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19절에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밖에 끌어 내치니라 했고 20절에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말씀을 생명으로 만난 자라 한다면 어떤 환난과 시련이 온다할찌라도 낙망하지않고 생명으로 이기고 이기는 자가 것입니다..

 바울이 당한 모든 어려움들은 정말로 낙망할만하고 좌절할만한데 그의 믿음안는 세상이 그를 사로잡을수없고 영향을 줄수도 없는 부활의 영이 있었기에 믿음이 요동함을 받지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20절에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나니 자신이 어렵다고 생각했던 것이 꼬꾸라짐을 받고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일생동안 썩어질 세상 것을 위하여 힘써왔구나, 하늘의 것을 잡지못하고 땅의 것을 잡아왔구나 깨닭은 바울은 자신의 것이 꼬꾸라짐을 받고나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라고 고백할수 있었습니다. 부활의 생명을 담고나니 이제는 더이상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죽은 자이기때문에 세상이 나를 어떻게 힘들게 할지라도  전혀 쏘이지 않을 수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아닌 나의 생명으로 살아갈 때는 이기적인 발상으로 자기 밖에 몰랐고 가진것으로 자랑할수 밖에 없었던 인생이 였는데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입하시면 가는곳마다 살리고 고치는 역사가 일어날줄 믿고 이기적인 인생이 이타적인 인생으로 바꾸어지는  하나님의 은혜가 입할줄 믿습니다. 땅의 사람에서 하늘의 사람으로 옴기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신 줄믿습니다. 땅에서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갈 때에 어떤 고난이 와도 아무런 상관없이 홀연히 육을 내어드릴수있는 믿습니다. .

 21 성령의 인도 하심에 따라 곳에 갔더니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자가 있는가하면 돌을 들고 피박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1차전도여행의 마지막 전도여행지 더베로 왔는데 돌아갈 때는 다소를 걸쳐  수리아 안디옥으로 갈수도 있었는데 놀랍게도 자기를 돌로 치려고 했던 곳으로 다시 간것입니다. 안디옥에서 부터 더베로 가는것은 전도이지만 더베에서 부터 안디옥으로 돌아오는 것은 양육인 것입니다. 전도보다 양육이 중요한 믿습니다.  영혼을 사랑하셔서 생명을 속전으로 드렸던 주님의 사랑이 임한 바울은  자신을 피박하고 돌로 쳐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을 상관치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은 심령들을 굳세게 세워야 할것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을 주시기원하여 이런 말씀을 주신줄 또한  믿습니다. 죽는 자리에서 죽는 자는 부활의 안식의 영이 임할 믿고  죽는 자가 되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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