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의 해결은 말씀과기도 | 김경화 | 2011-06-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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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5~11(2011.06.26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이방인에게 전할 때에 모세의 율법대로 할례를 받게 할 것인지 아니면 할례를 무시하고 이방인들의 풍습을 쫓아 그들에게도 구원을 열어 줄 것인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교리문제로 인해 교회지도자들이 모인 것이 첫 번째 예루살렘회의가 되었다. 갈등이 오는 것은 견하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견해차이로 갈등과 분열이 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의 내면의 세계에는 주도권문제이다. 우리도 인생길에 갈등을 겪는 것은 내 인생의 주권자가 창조주임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갈등이다. 주권을 자기로부터 출발하기에 오는 갈등이다. 사도바울에게도 갈등이 왔다. 성령 빛에 의해 꼬꾸라져 오직 성령에 의지하고 붙들고 가는 것 같지만 바울은 바나바의 감사함을 생각 한다면 바나바를 거역 할 수 없었을 것 같은데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심히 다투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바울 자신은 창조의 영이 자기 안에는 임하셨고, 역사하셨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기까지 기다리면서 아라비아 3년, 다소 7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더 이상은 바울이 아니라 그 안에 임하신 예수 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을 하셨다. 훈련을 받으며 답답함 속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바나바를 보내주셔서 사역지를 열어주시고 또 바울을 자신이 말씀을 전했던 안디옥 강단에 세워 말씀을 선포하게 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한다면 바울에게 바나바는 너무도 고마운 사람이지만 사역에는 영육이 함께 할 수 없고 혼합할 수 없기에 둘이 심이 다투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은 여전히 다투고 맞지 않게 가고 있을 지라도 복음은 전해지고 교회는 확장되어져가고 하나님 뜻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 만나는 심령들마다 살리는 역사로 교회가 부흥하여 든든히 세워져 가며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서도 위기가 왔다. 유대로부터 온 “어떤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이 잘못되니까 한마음이 되어 은혜가 충만하여 교회가 부흥하며 성장해가던 안디옥교회가 파벌과 당을 짓기 시작했다. 분쟁과 갈등의 해결점을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에게 답을 얻는 걸로 결정을 짓게 된다. 하지만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바울과 바나바보다 영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고 일체성을 갖기 위함이었다. 우리들에게도 모든 문제는 잘못된 가르침 속에서는 위기가 오는 것이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일으키고 ,살리고, 귀신 내쫓고 역사함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기에 혹이라도 바울이 내가 했다는 것이 없게 하시려고 위기를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언약을 징표를 주셨고, 택한 백성에게는 네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징표가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생활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다. 노아에게는 무지개를 주시고,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를 주시고, 모세에게는 율법을 주셨다. 이것을 주심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감사하라는 표시로 주신 것이다. 특권으로 택한 백성이라고 선민의식을 가지고 자긍하고 교만하라고 주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에게는 유대교인들처럼 내가 받은 것이 있고, 직분이 있고, 행한 은사가 있으면 하나님에게 받은 선물임에서 불구하고 이것을 내것으로 취해가지고 특권이나 되는 것처럼 내 육이 그것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오늘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이방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만나고 나니 새롭게 성장이 되어 지고 율법을 받은 자보다 더 상관없이 율법의 완성을 이루신 그분이 내 심령가운데 와계시니까 나로써는 율법을 지켜서 살아보려 애써도 지키지 못했는데 그분이 오셔서 내육을 정복하고 그 영이 나를 주장하게 되니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 유대인들은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여 살아나는 가운데 거기에 율법을 첨부하며, 할례를 첨부하려는 것이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형상을 입지 못하여 가는 길에 평강이 없고 안식이 없이 갈등 할 수밖에 없음은 내 기준(소유, 믿음수준)이라는 율법을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갈등은 왜오는가? 갈등 뒤에는 소유가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다투었음도 결국은 소유 때문에 다투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갈등이 올 때마다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혼(내 생각)으로 가지 말고 말씀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갈등은 왜 있을까? 내가 하나님이 되고자함이다. 가르침이 잘못된 어떤 사람들도 결국은 자신들이 하나님 되려함이었듯이 우리들도 남을 가르치고, 간섭하려는 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려는 속성이다. 사람을 말씀으로 변화시키고, 가르치는 분은 하나님 한분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들이 사람들 앞에서 해야 할 일은 말씀 앞에 내 죄를 회개 밖에 없는 것이다. 갈등의 해결은 내 정체가 분별 되어 혼합되었던 영육이 갈라지는 것이다. 내 생각을 쓰면 내가 하나님이다. 내생각 내 감정이 맞는 것이 되는 것이다. 아브람함도 다투는 가운데 자신의 정체를 보게 되어 롯과 물권을 내려놓고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아브라함의 갈등은 믿음과 기도로써 해결 받은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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