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툼의 근본은 죄 | 김경화 | 2011-07-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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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5 ;36~41(2011.07.10말씀) 오늘 성경은 위대한 사역자들 속에서 “심히 다투었으니” 아름답지 못한 장면이 있다.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자기 소유를 다 판 사도들이 어떻게 “심히 다투었다고” 생명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다툼은 왜 일어날까? 다툼의 근본은 죄로부터 왔다고 말씀하신다. 그럼 죄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출발했을까? 우리를 다스려주는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죄가 들어와서 죄성이 나를 통치한다 말씀하신다. 나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질서아래 있지 아니하고 그 질서를 벗어나서 스스로 왕이 되어서 내 옳은 소견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 내가 왕이고 내가 주인이기에 하나님이 창조하신 질서를 파괴하여 누구와도 맞지 않는 자기중심적 가치관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시작을 한다면 창조의 질서에 따라 환경에 따라 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뒤안길을 돌아봐도 내안의 나와 싸우며 갈등의 인생이었다. 우리들에게 수없는 갈등문제가 일어나는데 이 원인을 오늘 분석 해보고 이제는 우리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순복하는 피조물이 되어 질 수 있도록 이제는 이 다툼 싸움에서 벗어 날수 있는 자유를 받을 수 있는 시간되길 오늘도 원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서 살아가게 하시고 지으신 피조만상에서 누리고 평안한 안식세계를 열려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권을 떠나서 대립과 대적하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근본된 토지를 갈아 없고 종신토록 수고해야지만 간신히 먹을 약식이 있는 쓴 뿌리와 엉겅퀴밖에 없는 우리의 죄성이 우리 심령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생활가운데 날마다 언약의 말씀을 부정하게 되고 불순종으로 타락의 길을 스스로 걸었던 우리들에게 오늘 말씀으로 찾아와주셔서 은혜누리고 성령 입었던 자도 하나님 말씀으로 내면의 세계를 지음 받지 못하면 심히 다투었다는 결론밖에 낼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모델을 표대 삼아서 우리가 싸우는 정욕에서 벗어나 아담이후에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타락하고 죄 가운데 살면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오늘 우리들을 말씀으로 불러내주셔서 천성을 향하여 갈 수 있는 구원의 세계를 오늘도 말씀으로 열어주시는데 제각기 가는 길이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은혜로 생명의 날이 되길 원하신다. 우리는 제각기 스스로 왕이 되어서 왕 노릇 하고 있다. 각자가 나라를 형성하여서 개개인의 충돌이 결국은 나라와 나라가 민족과 민족이 충돌하여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 심령 열방 나라에 많은 나라가 살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해온 속성들의 모든 것들이 내 안에서 살고 있는 이 본성을 쫓아서 죄악된 것으로 살아온 이것들이 이제 나름대로 나라가 되고 직분을 가지면서 왕 노릇 하고 있는 이것이다. 오늘 내 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 내가 왕 이라고 하는 이것이 나의 아성의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자존심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리 심령가운데 주상을 놓고 산당을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귀신처소라는 것이다. 이 귀신처소가 무너져야 하나님 나라가 우리 심령 가운데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이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대속 제물로 내어 주심 또한 이 나라를 찾으시기 원해서이다. 자존심이 죄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죄의 속함에서 자유를 받으려면 자존심부터 십자가에 못박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다스림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언약자녀가 되기 전에는 절대 참 자유와 안식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내 심령 가운데 영의 사람 바울과 육의 사람 바나바의 싸움이 말씀 앞에서 영의 사람으로 승리하여 참 자유와 안식을 누리고 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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