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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사모하는 우리의 중심 김경화 2011-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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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7:10~15(2011.08.28말씀)

하나님이 살아계신 구원의 확증이 있는 바울은 가는 곳마다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여서

1차 선교를 이어 2차 선교지 에서도 바울을 쓰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가는 곳마다 살리고 지경을 넓혔습니다.

선교의 과정을 보면 핍박을 당하면 당할수록 다른 선교지로 지경이 넓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산자의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사람이 행한 일은 고난이 오고 핍박이오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의 역사는 핍박이 가하면 가할수록 더욱더 번성케 되는 역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고 데살로니가에 거하는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서 바울을 핍박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는 베뢰아 사람은 “신사적이어서”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사람이 구원을 간청하여서 온 것이 아니라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에게 쫓겨서 오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신사적인 베뢰아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기에 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바울의 타고난 본성은 높아지길 원하는 속성이었지만 빛 앞에 꼬꾸러트림을 당한 후 그의 입이 닫히고 하늘의 입으로 열리고, 그의 눈이 닫히고 하늘의 눈으로 열리고 주께서 들어 쓰시는 도구가 되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바울이 아니요 움직이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이 준행하시는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영적으로도 엄청난 복을 받아 셋째 하늘까지(고후12:2) 갔다 오게도 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그릇을 쓰시고 영으로 지시함을 받아 인도함을 받아 직접 일을 하셨기에 구약을 예표로 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즉흥적으로 나타나시고, 만나주시고 구원의 사역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많은 랍비들은 성경에서 “네게 대하여 말씀하셨느니라”하는 그리스도는 만나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과 옛 법에 사로잡혀있는 구약의 선생들이었는데 사도바울은 말씀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롬 12:2 말씀처럼 “오직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순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 자신도 말씀에서 새롭게 변화를 받으면서 그들에게 증거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새롭게 변화받길 원하시면서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또 베뢰아 에서도 회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입니다. 핍박과 고난을 피한여서 간 도피성이었는데 그곳 베뢰아 사람들은 사모하는 중심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이성이나 경험에 의하여 말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말씀에만 관심을 둔 베뢰아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에는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뢰아 라는 뜻은 무겁다는 뜻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 앞에 저주받은 땅이기에 인생이 즐겁고 쾌활했다는 인생은 없습니다.

베뢰아 사람들도 인생의 성공을 위하여 수고하며 노력하며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고 나타나셔서 말씀하실 때 이들은 신사적이어서 말씀을 너무나 간절히 기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신사적이란 무엇인가? 신사적인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마음이 쾌활하게 되어 집니다.

생각하는 것이 긍정적이고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하나하나 삶 가운데 적용 하면서 그 말씀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찾고, 명령을 찾고, 자기 죄를 발견하고, 자기 것을 벗어버리고 말씀 안에 들어가길 애쓰며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열등의식이나 편견 없이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입니다. 결코 이들이 가진 것이 많고 , 풍부하고, 학식이 많아서 열등의식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열등의식이 많은 죄 많은 심령 가운데 주의 영이 들어와서 주인으로 통치하여 주시니 이제는 원하는 것이 오직 구원하나인 것입니다.

오늘 신령으로 구원이 깨진 우리들에게 진리적으로 심령 깊숙이 구원의 표징이 있는 자 되게 하시기 원하셔서 하나님께서 날마다 말씀으로 불러내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양육 해 가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비신사적이란 무엇인가? 무슨 말을 해도 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서 생각하지 못하고 꼬여있고 부정적이어서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돌이키시길 원하셔서 애원하는 마음으로 찾아오셔도 말씀을 받지 않고 대적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생각, 자기고집, 자기 의, 자기학식 편견등 이러한 모습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구원에 가까이 가게하시고, 예수에 대해 불확실 했던 신앙이 내안에서 구원의 확신이 생겨지고, 빛이시기에 말씀을 담는 그릇이 되어 험악한 세상 살아가는데 힘을 얻고 능력이 되어 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 받고도 이 엄청난 근원을 알지 못하여 날마다 은혜를 자신의 공로로 취하는 자 되어서 비신적인 자리에 들어가지 말고 신사적인 우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는 심령에게 말씀을 “그러한가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말씀은 약속의 땅을 정복 하는 것을 말씀으로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약속을 받아 오늘 내가 어떻게 준행 할 것인지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약속을 받아 명령을 찾는 것입니다.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며 말씀대로 살아보려는 기도하며 애쓰는 역사입니다.

우리도 말씀에서 신령한 은사를 받고 싶으면 간절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고, 말씀을 사모하는 중심으로 빈 그릇 되길 원합니다. 우리의 일생에 이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변화 시키는 말씀이 되어 주시고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말씀 듣는 중에 우리가 하나님을 만난 표징이 있길 원하여서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이사야 44:3절로는 갈(渴)한 자에게 물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갈한 마음으로 내가 정말 이 말씀을 듣고 살아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때 만나주십니다.

또“마른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하셨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갈망하여 어찌해야 모를 때,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주를 찾을 때 말씀으로 찾아오셔서 위로가 되게 하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용기를 주시고, 가야할 길을 알게 하시고,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니리” 하신 것처럼 누구에게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주십니다.

영을 열어 말씀을 받을 때 성령의 감동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는데 왜 주셨는가?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들어나길 원하시는가?

말씀을 통하여 무엇이 변화되길 원하시는가?

내 행위가 오늘 말씀과 일치하는가?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기 위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말씀을 상고 하였다는 뜻은 탐색하고 조사하였다는 뜻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매일 반복하고 묵상하며 하나님 뜻을 찾는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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