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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영의 분노 김경화 201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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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7:17~25(2011.09.04말씀)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몇 날이 못 되어 너희에게 성령을 부어 주리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도들도 몸 둘 곳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떠나고 싶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겪으면 떠나고 싶고 사람과도 대면하고 싶지 않은 그곳을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말고 성령의 능력 입힐 때까지 너는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에 순종하고 나니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역사하심으로 혀가 말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역사로 성령이 임하니 사람이 바뀌고 달라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하여 여러 사도들이 받은 능력을 가지고 주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들은 성령을 받고 주의 사랑을 나누는 이 자리가 너무 좋아 기뻐 뛰며 교제하는데 매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 아니기에 고난을 통하여 흩어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져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또 강한 성령의 역사로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셔서 이방인 전도를 하게하셔서 1차전도로 아시아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어 지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가는 곳마다 살리는 역사로 한참 교회가 성장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가는 길을 막으시고 생각지도 못했던 바다건너 마게도냐를 향해 가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인데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유럽을 향하여 세상을 향하여 나아 갈 수 있는 세계의 선교사로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선교 기간 중 고난과 핍박으로 험한 길을 가게 하셨지만 바울이 밟는 땅마다 정복하게 하시고, 지경을 넓히시고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를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의 아덴까지 오게 하셨습니다. 아덴은 로마의 중심지로 정치, 문화, 경제가 발달한 문명의 도시로 세계 전 지역에 영향력을 끼치는 도시였습니다.

아덴은 곳곳마다 우상들이 세워진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이러한 도시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여 영혼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 갈 수 있는 도시가 되게 하시려고 바울을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곳곳의 우상들을 바라보면서 경제, 문화, 정치 이 모든 것을 어두움의 영들이 장악하고 모든 일류를 더럽히는 바울속의 참신관인 거룩한 영이 분노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아덴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함께한다면 내가 밟는 땅마다 정복이 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고 우상에 사로잡히고,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보면 분노하며 그 영과 싸우며 걷어 내어주고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이 병들면 아무리 귀신에 사로잡힌 자를 보아도 감각이 없고 우상의 땅을 밝으면서도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분노는 거룩한 영이 임하여야지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우상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사단에 대해서 분노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 하실 때는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은 것은 참신이 아닌 다른 어두운 영이 우리 안에 있어 참신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세계를 가로막고 있는 혼의 세계는 말씀을 들으면서 감정도 제하여지고, 생각도 끊어지면서 하나님의 영이 들어가서 생기를 입은 생명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생령이 들어가니 하나님을 뜻을 알게 되어 지고, 본향을 향하여 살게 되어 지고 혼적인 부분, 자존심, 이면체면 이것들보다 더 영혼의 세계를 사모하는 역사가 우리들에게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덴에서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듯이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고, 우주를 만드신 살아계신 하나님이고, 나를 창조하신 살아 계신하나님이시고 타락한 나를 말씀으로 창조해 가신 이것에 대한 신관이 우리에게 부족하기에 알지 못하는 신을 날마다 섬기고, 미신을 섬기고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우리들의 정체가 말씀 듣는 가운데 떠나길 원합니다.

오늘 바울은 분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 하기 원하여 어디든지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아덴에서는 철학가의 두 분류가 일어났는데 본문의 바울의 전도법을 보게 됩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는 그들의 율법과 그들의 조상에 대하여 이끌어 가면 이야기 하고, 아덴에서는 상대방에 맞추어서 인정해주고, 수준에 맞게 대해주면서 그들의 종교성과 이야기 합니다.

아덴은 두 철학 학파가 지배하게 되어 지는데 18절 말씀처럼 에비구레와 이들은 무신론자들로 인생의 행복이 목적이고 쾌락을 즐기며 인간과 신은 아무관계가 없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들 여전히 쾌락을 쫓고 행복만을 추구하는 하다면 겉으로는 예수를 믿지만 속으로는 이 철학사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도이고 철학자는 도덕주의자이다. 법신론 자들로 유고, 불교, 도교 모든 종교들과 기독교가 같다는 것을 주장하며 기독교의 생명론을 희석시키고 있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구원할 수 없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참신이신 하나님의 구원관에 대해서 들어 본적이 없었기에 바울을 말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울을 아레오바고 라는 법정까지 끌고 갑니다.

하지만 바울은 어느 곳에 가건 모든 것이 하나님 뜻임을 알았기에 법정에서도 담대히 감당하면서 아레오바고를 구원코자 보내신 하나님 뜻을 알았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가 생기자 바울은 구원, 생명, 창조에 대하서 담대히 전하자 우주, 인생, 역사만 알고 있는 그들이 보지도 들어 못했던 이 구원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 철학관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영이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 마음 가우데 내안에 들어와서 예수가 나의 구주로 믿어지는 이 자체가 우리는 만세전에 택한 자 들입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철학가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니 구원관이 깨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에게 바울은 세상의 종교와 철학에는 구원이 없음을 신관을 가지고 정확히 제시를 하게 됩니다.

이들 속에는 하나님이 없기에 그 심령가운데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을 만나지 못해 내 안에 경배의 대상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날마다 새로운 것들로 채워가며 위로를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종교성이 많다는 것은 경배 대상자를 찾아 헤매고 다녔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종교성에 사모하는 중심이 있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을 전하니 바울의 말을 끝까지 그들은 듣게 됩니다. 우리들도 바울의 전도법을 배워야 합니다.

“알지 못하는 신” 바울는 그들에게 예수가 누구인지 정확히 전해줄 책임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목적을 다시 한 번 바울은 확인하게 되면서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임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을 주셨음을 전합니다.

같은 조상의 후손임을 전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살과 뼈를 가진 자에게 나타나시고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고 여러분과 나의 주인이신 신관에 대해 정확히 전하고 있습니다.

영은 생명이시기에 이 세상에 섞어질 것에 마음을 빼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채워진 자는 옷 한 벌로도 만족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내 안에 세상 것으로 채워 질 것인가? 하나님의 영으로 채울 것인가?

오늘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서 말씀으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내안에 만물을 붙들어 주시고 내 생명을 주관하신 하나님이 나를 주관하고 있는가?

오직 하늘나라 본향을 향하여 준비하며 물질과 시간을 드리고 있는가?

내가 하나님을 인정 안는다 해서 없어지는 분도 아니요 부정한다 해서 부정되어지는 것도 아니요 부정하면 부정할수록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자가 되게 하시고, 구원받은 후 천국의 자리매김을 위하여 날마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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