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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참 신관 김경화 20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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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7:24~34(2011.09.11말씀)

예수께서 부활승천 이전에 사명을 주셨지만 제자들은 여전히 이 땅의 회복이 언제인지, 내 문제가 언제 풀릴 건지 마음에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각가지 문제를 주님 앞에 내어 놓고 어느 때에 해결해주실지 기다리지만 주님은 우리에게도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는데 성령이 임하면 복음의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이것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문제를 너무나 잘 아시는 주심께 문제를 맡겨 드리고 말씀이 신비에 새겨져 우리 심령가운데 생명이 되길 원하십니다.

핍박 속에서 바울은 우상이 가득 찬 아덴까지 가게 하셨습니다. 세계 영향력을 끼치며 유명한 철학자들이 아덴에서 배출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덴에 보내시기 전에 하나님은 세상지식으로 모자람 없이 꽉 차있던 바울을 꺾으시고 하나님의 영을 담은 그릇 바울을 미리 준비하시고 보내셔서 그곳의 경제, 운화, 정치 이 모든 것들을 말씀으로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종교문제를 재판하는 아리오바고 법정에서 복음의 기회를 삼았습니다. 바울이 유대인과 이교도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지혜를 담아 심령들마다 적절하게 복음을 전하였듯이 오늘 우리도 똑같은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들마다 분별하여서 심령들을 열어 줄 수 있는 바울의 전도법이 우리에게도 전해져야 합니다.

아덴은 최고의 철학, 문학, 경제를 자랑하는 이곳에 무신론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즐기고, 잘되고, 잘살고, 잘먹고, 내핏줄 잘되기만 하면 되는 무신론자들이 가득했습니다. 또 하나는 범신론자들입니다. 모든 것들이 다 신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이기에 아덴에 많은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신들이 있었다는 증거는 참신이 없었다는 증거였습니다.

바울은 무신론자들과 범신론자들이 가득 찬 그곳에서 창조론과 구원론으로 온전한 신관을 그들 앞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 심령가운데도 범신론이 있습니다.

또 매일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우리 안에도 무신론으로 차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주권자이신 예수님 손에 있다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셨고, 주관하신다는 믿음이 온전히 열려지지 아니하니까 여전히 본성을 쫓아서 내 인생은 내 것이라며 누구의 간섭도 받고 싶지 않은 우리도 무신론자에 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창조의 영이신 하나님이 지으셨고 오늘도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입히시고 장자총회까지 말씀으로 이끌어 가시고 자격을 입히시는 그 믿음의 확신이 있는지 묻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의 설교를 통하여서 온전히 신관이 심어지길 원합니다.

창세기 3장에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산영이 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호흡인 하나님을 찬미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지으셨습니다. 말씀을 담길 수 있다는 이 영을 하나님이 지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담은 영이 떠나면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한 혈통으로 만드사” 우리 인류 모두는 아담이 조상인 한 혈통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으로 바벨탑을 쌓음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나라와 나라가 대적을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흩어짐은 왜 흩어지게 되었는가? 자기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왜 영육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순복하지 못하는가? 내 마음에 하나님이 나를 통치하지 못하도록 내어주지 못하고 내 마음에 하나님이 있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내가 왕이 되고 싶고, 내 뜻대로, 내 감정대로 하고 싶은 이것이 죄 중에 죄인 것입니다.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인간에게 땅을 주셨습니다. 이 심령도 땅도 하나님께서 주의 영을 담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생기체를 불어넣어 아담을 데려다가 그 모든 것을 지으신 것을 다스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생육, 번성, 충만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을 주셨는데 우리 심령가운데 아담 속에 죄가 들어오니까 그 축복의 땅이 가시와 엉겅퀴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성령이 우리를 다스려주면 자체가 안식이고, 평안이고, 기쁨이고 무엇을 하던지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한 세계가 열려져야하는데 우리가 죄가 들어오니까 내 안에서 가시와 엉겅퀴만 내는 자가 되어서 말만하면 남을 찌르는 소리를 하게 되고, 꼬여서 문제를 일으키는 속성이 죄로 인하여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회복 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인간이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 외는 방법이 없습니다. 죄 있는 모습으로는 에덴동산에 돌아 갈수 없기에 화영검으로 둘러 진 친 것을 거두어 주셨는데 그것이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가시와 엉겅퀴의 속성인 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십자가를 통과하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 영이 우리에게 오셔서 그 영으로 말미암아 다스림을 받을 때에는 심령 밭이 에덴동산이 되어 지고, 보냄을 받은 사업장, 모든 직장이 에덴동산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생명나무도 있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고, 임으로 먹을 수 있는 실과도 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나무를 명령하시면서 정령 본다할지라도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악이다 선이다 우리에게 판단하실 권을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먹음으로 말미암아 내 땅이 더럽혀져서 이것이 가시와 엉겅퀴와 역사만 되어지지 않으니까 오늘 나로 생기체를 입혀주시고 영의 세계를 열어주셔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기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마라” 하셨는데 먹음으로 우리는 너무 눈이 밝아져서 보는 것마다 옳고 그름을 따지는 눈이 밝아졌습니다. 죄에 사로잡혀 고통 받는 심령을 품고 기도해야 하는데 날마다 선과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못 만나고 증거만 받았을 때는 구원도 불확실 했던 우리에게 시간이 가면서 하나님이 발견되고, 깨달아지고, 생각과 입술에 함께 하신 하나님을 성령을 체험한사람들은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형제 안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보고 내안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을 보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협력하여서 이 땅을 다스려 가듯이 하늘은 땅을 위해서 있습니다.

땅이 없으면 하늘은 사명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땅은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땅이 각종 소산을 내어 우리에게 양식이 되어 지기에 사람이 이 땅에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있습니까? 하늘에 영광을 위해 있습니다. 이 창조질서를 파괴하니 우리에 인생이 이처럼 무겁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께서 아덴을 찾아가셔서 바울을 쓰시고 창조의 신관을 심어 주시듯이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찾아 오셔서 우리의 불확실한 믿음에 참다운 신관을 세워 주셔서 창조의 영 믿음의 확신을 갖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

“신의 소생”이 되었다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우리를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진리적으로 신의 소생이 되길 원한다면 무너진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인 아들의 영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지음 받아야만 합니다.

말씀이 생명나무이고 형상이 생명나무인 예수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오면 첫 번째 증거가 회개하게 하십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언젠간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끝 날은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심판이 죄로 인하여 영벌에 들어가는 심판자 되지 말고 구원이 너무나 확실하여서 우리가 심판 받는 것은 생명의 부활로 들어가기 위한 백부자 심판 받는 우리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공의에 심판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본성이 바뀌지 않고 육을 벗고 같을 때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지금 육이 있으라데 본성을 십자가에 못 박고 산 순교를 당하게 되어지면 이 땅에서 내가 부활이 생명을 입고가기 때문에 이 땅에 있는 동안 부활의 생명을 받은 자는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산다는 하나님 말씀가운데 옷 한 벌 벗듯이 영의 세계에 죽음을 보지 않고 들어갑니다.

십자가 죽음 다음은 부활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것으로 사로잡히지 아니하고 어떠한 독을 쏘일지라도 쏘이지 아니하고 품고 감당하여 그들이 주의 영을 담을 때가지 주님이 나를 품었듯이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내게 부활이 오고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복이 있는 자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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