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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분노& 바울의 성령의 능력 김경화 2011-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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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행18:1~11(2011.09.18)

아덴은 문명의 도시요, 우상의 도시여서 세계에 향하여 문화, 예술, 사상, 경제, 종교 모든 곳에 영향력을 끼쳤듯이 오늘 내안의 중심사상인 아덴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내가 창출해 내는 것입니다. 사상도 만들어내고, 예술도 창작해내고, 인생의 섬리도 내가 만들어 내는 우상의 도시 아덴의 발상지가 우리들의 혼입니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자체가 우상인지라 상황에 따라 모양도 만들고, 예술도 창작을 하고. 철학도 만들어서 심령가운데서 가상으로 지어내어 생각에 생각을 통하여서 스토리를 만들어 자신도 위에서 온 것 같고 사실인 것처럼 착각하는 우상의 도시 에덴이 신령적으로는 내 심령이고 우주적으로는 상대방의 심령도 되어 질 수 있고, 나라가 되어 질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아시아 전도길을 막으시고 빌립보, 데살로니아, 베뢰아로 거치게 하셨는데 이것은 유럽전도 신호탄에 불가할 뿐이었습니다.

세계정신사상에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덴을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고밟고 점령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아덴을 점령하고 세계에서 가장 성적으로 타락하고 고린도를 점령하게 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내가 심령을 열었을 때 나의 아덴을 점령하게 하시고, 나의 고린도를 점령하게 하셔서 걸치고 거쳐서 모든 것이 점령하게 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빛으로서 성전 되어져 가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아덴이 정치, 경제, 문화, 사상의 중심지였던 것처럼 나의 중심사상의 생각의 발상이 아덴에서 출발하여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아는 역사가 일어났다면 아덴의 정체를 보고 우상을 발견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지면 하나님 앞에 건너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우상들을 바라보면서 분노함가운데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였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우상들을 가득찬 모습을 바라보면서 분노함으로 그들과 변론만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붙들어 주심 가운데 행하지 않았기에 아덴에서 바울이 받은 평가는 “말쟁이다” 라는 평가였습니다. 바울의 있는 지혜를 다해서 증거 했지만 결국 생명을 심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기도함으로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바울이 되어 많은 영혼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하지만 가는 과정하나하나에 주님에게 붙잡히는 심령이 되어지면 내 열심 으로 하던 것이 주의 열심으로 바뀌면 나를 힘입어 하던 것에서 주를 힘입어 할 수 있는 이런 자리까지 오게 하시 줄 믿습니다.

고린도는 상업도시이고 항구도시였습니다. 말이나 행동들이 다 상업적으로 하고 무역을 함으로 물질이 풍요로워져서 성적타락으로 12개의 우상의 신전이 있는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우리 심령가운데 찾아오셔서 아덴을 점령하시고, 고린도를 점령하시고, 오늘 구원의 방주에 올라탔는데 오늘도 어떤 말씀을 하시던 나를 빛으로 점령하시고 구원에 행선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아버지를 믿으시길 원합니다.

내 심령을 정복하는데 무기는 진리적으로 죽는 것이 무기이다. 바울은 이미 죽은 자가 되어 빛 앞에 꼬꾸러트림을 당했기에 고린도 교회를 세울 수 있게 하셨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글라우디오를 쓰고 계십니다. 글라우디오가 보니 로마 지경 내사는 유대인들과 유대인에서 그리스도로 계정한 사람들끼리 날마다 종교전쟁을 했습니다. 종교전쟁으로 로마 황제는 유대인들은 떠나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칙령으로 로마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로마를 떠남으로 고린도에 오게 되었고 생업을 가지고 일하다보니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복음을 받게 되었고 복음을 받는 것으로 구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울을 도와 사역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엄청난 축복이 환난가운데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군왕과 황제도 들어 쓰셔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습니다. 우리도 일생 가운데 무슨 고난을 만나던, 사건을 만나던 나를 나 되게 하심이요 구원받은 은혜자가 되시게 하기 원하여 하나님의 손길아래 다루고 계심을 안다면 얼마든지 예가 되고 아멘이 되고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보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자기 집을 열어 고린도 교회가 세워지게 하더니 바울과 가는 것마다 동행하고 인생의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우리 심령도 믿음이 점점 자라서 하나님 것으로 채워지면 이 세상나라는 이스라엘 제사장 나라를 중심으로 두고 연결이 되어지고 나라는 인간 개체를 바라보면 영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어지고 믿음의 사람은 교회를 말씀을 중심으로 살게 되어 지듯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의 사람이 되어지니 그 말씀이 있는 곳으로 생활터전을 옮겨가면서 따라 움직였습니다. 오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하여 생업에 종사하면서 사역자들 못지않게 교회에 헌신하는 충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듯이 우리 교회도 이러한 믿음이 사람들이 나타나길 원하십니다.

3절의 말씀을 통하여 바울이 주님의 사역을 수행하는 과정가운데 생업을 가진 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물질은 풍부했지만 믿음으로 강박했기에 의심했기에 경제적인 일에 걸림이 물질을 특히 사랑했던 그들에게 걸림이 될까봐 주중에서 천막으로 생업으로 동역자들도 부양하며 일하였고 안식일에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일생동안 바울이 주의 일을 하면서 항상 생업을 했던 것은 아닙니다. 사역이 넓어지고 지경이 깊어질수록 돕는 손길을 붙이셨을 때에는 생업을 갖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사역가운데 3년반동안 제자들을 양육하시면서 빨리 하늘의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시키고 가야하셨기에 굳게 세워야할 상황가운데 오니까 12제자들은 생업을 가지지 않아도 생활을 했습니다.

병고치고 귀신 떠나고... 많은 여인들이 수종을 들었기에 예수 공동체는 일을 하지 않아도 이루어져갔습니다.

오늘 복음사역을 위하여 직업을 가졌던 바울을 보면서 우리를 되돌아보기 원합니다. 나는 오늘 내가 살기 위하여 하나님이 필요한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한 나의 존재인가 오늘 나의 존재가치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존재가치인가 직업을 위한 존재로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위한 존재로 있기 때문에 직업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 결혼도 주의 영광을 위하여, 자녀 양육까지도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온전한 신앙의 질서가 우리 안에 전립되어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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