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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구인희 201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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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통하여서 이방인의 빛을 삼으시고 예수를 모르는 세계 각처를 성령으로 이끌고 다니시면서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는데 가는 곳마다 복음을 증거받는 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핍박도 있었고 돌로 쳐죽임을 당하기도 해야되고 참으로 어려운것이 있었지만은 어떤 어려움도 바울의 길을 막지 못할 성령의 역사하심이 바울을 주관하고 계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지중해와 아시아의 각 나라에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했지만 시간적인 측면에서 가장 오래 머물고 있었던 곳이 에베소입니다.

< 에베소 교회 >

에베소는 모든 전체 교회의 중심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계시록에서 7개 교회를 언급할 때 에베소 교회부터 언급을하셨고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종들, 바울과 성경에 능통한 아볼로 목사, 디모데, 사도요한이 목회를 했던 곳이고 폴리갑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러니 에베소 교회는 모든 교회의 본이 되어질수 있을만한 교회였지만 계시록에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으로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한 것이 너무 많아 한 것으로 정통을 삼고 교만하여 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있었던 교회였는데 바울이 2차 전도 여행때에 잠깐 머무르면서 교제를 하는 중에 에베소 교인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 아볼로의 사역의 결과 >

3차 선교여행을 맞이한 바울이 에베소에 와 아볼로로 통하여 양육받고 있었던 그의 제자들을 만납니다. 바울이 그들을 보니 디에스포라를 통하여 자생된 교회로서 스스로의 믿음의 힘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특심이 되어 형제사랑을 하고 도우며 헌신도 잘하고 충성도 잘하는데 무엇인가 빠진 것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는 바울의 질문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여기서 그들을 양육했던 아볼로의 사역의 결과는 성령의 계시가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볼로는 구약 성경에 능통한 자이고 학식이 많은 자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았고 가말리엘과 같은 종교적인 경건이 있을뿐만 아니라 주의 길도 알았고 주님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무엇이 없었냐면 경건의 모양만 있었지 경건의 능력은 없었던 것처럼 그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영안에 담겨 우리의 혼과 육을 주장하시는 역사가 일어나야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에 주님의 영이 오지 아니하고 나의 혼으로 나의 육으로 믿으니까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계시도 없고 성령의 인도함도 당하지 않으며 내 감정과 내 의지로 믿는 것입니다. 내 헌신으로 헌신하고 내 충성으로 충성하므로 내 감정에 따라 치우치게 됩니다. 외적으로는 너무나 흠모할만한 믿음과 배경이 있다하나 이 믿음이 얼마나 허상인것을 아볼로를 통하여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

일생을 예수를 믿고 오면서 내 의지대로 내 감정대로 내 노력으로 예수를 믿고 헌신을 해왔습니까? 아니면 주님이 내 심령가운데 임하여져서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 움직임을 받고 이끌림을 받아 오셨습니까?

바울이 아볼로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니까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이 임하시는 길을 까는 회계의 세례였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이 세례는 불과 성령으로 받는 세례가 나타나는데 성령은 “새로운 날을 창조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나고 불로서는 지끔까지 “내안에 타락한 본성을 심판”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성령세례를 주고 나니까 이들이 방언이 터지고 예언을 하는 역사가 일어나면서 계시가 열렸습니다. 주의 영의 인도함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난것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내듯이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인격을 모셔드릴때 예수님의 인격이 그 사람들과 함께 하여주시니까 유기적인 연합이 이루어 진것입니다. 예수 없는 삶이 아니라 믿기만 하고 증거만 했던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 그 심령가운데 들어와서 함께 동행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주시고 이끌어주시는 계시의 믿음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 성령을 받고 난 후의 제자들 >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반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말씀을 양육을 받았고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기적을 목격하고 예수님을 경험했으며 십자가를 목격한 증인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40일동안 함께 먹기도 하면서 영의 세계에서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주님을 눈으로 본바요 만진자들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 이전의 제자들은 증거만 받고 믿기만 했었지 성령의 옷은 입지 못했었습니다.

아직 증거만 받은자로 머물러 있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면 치우칠수밖에 없고 빠져들어갈수밖에 없는 것을 아시고 무한하신 주님의 능력을 힘입고 파송을 시키시기 원하셔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분부하셨습니다.

3년 반동안 주님을 따라다니며 양육받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안믿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부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것과 그분속에 역사하시는 능력을 입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 이전에 예수님을 믿었던 제자들의 믿음과 오순절 다락방 성령강림 이후에 성령의 연합한 유기적인 연합체가 되어진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복음의 능력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하늘과 땅처럼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의 삶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순절 이후의 성령받은 그 능력을 체험한 주님과 동행하는 제자의 삶을 가고 있습니까?

< 성령을 받으면 나타나는 역사 >

성령을 받고 나면 우리입술의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으로 변합니다. 갈수록 나는 부족한 것을 알아 낮아지게 되고 전능하신 창조주 앞에 무릎을 꿇는 피조물의 자세로 돌아가서 하나님앞에 경배하는 중심의 제사를 드리는 온전한 사람이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마음의 악이 나오던 것이 거룩한 것으로 바뀝니다. 원망이 떠나갑니다. 묶었던 것이 풀립니다. 이해치 못했던 것이 풀려지고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기적인 발상에서 자기입장에서만 생각하던 것이 성령이 임하게 되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할수 있는 하늘의 심령이 우리 마음에 담기워집니다. 9가지성령의 열매가 내안에서 새록새록 나타납니다. 왠지 기쁘고 왠지 힘이 납니다. 찬송을 부르면 눈물이 나고 말씀이 사모하게 되어집니다. 형제를 보면 너무 귀하게 여겨집니다. 내 옥문에서 나오게 되어지고 내 기준에서 벗어나게 되고 내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게 되어집니다. 기준이 없어지게 되어지니까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품을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심령이 우리 마음가운데 와서 나와 연합할 때 일어나는 역사인줄 믿습니다. 아무리 충성을 해도 불평이 없고 아무리 헌신을 하고도 쓰임받고 감사만 나오는것이 계시를 쫓아 움직임을 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인줄 믿습니다.

< 성령이 임하시는 심령 >

말씀을 듣고 내 모습을 깨달아 보게되고 내안에서도 예수의 영이 임하기를 원하고 예수의 능력을 힘입기를 원하여 간청하는 마음으로 말씀앞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이 5절에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심령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의 눈이 열렸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성령받은 자를 통해서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도 이런자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예수를 평생을 믿어도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낙담하는 말, 불평하는 말, 원망하는 말이였다면 예수님의 영을 받지 못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못한것에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나를 통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가 나와 각종 좋은 은사들이 내 말투와 행동, 눈빛을 통하여 나타나 많은 사람들에게 복의 영향을 끼칠수 있는 역사, 우리들의 움직임마다 빛이 역사가 같이 움직이니까 나를 대면하는 사람들이 환하게 되어지는 역사, 심령이 풀리는 역사, 이것이 성령을 체험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도 가고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그 어려움의 환경을 만났다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이 그를 덮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제재를 당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이 임함이나 고넬료 이방인 집안에 성령이 임함이나 에베소교회에 성령이 임했던 것처럼 우리 예성교회 심령들 가운데도 찾아와 성령이 임하여 바뀌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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