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 | 김경화 | 2011-10-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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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9:1~7(2011.10.09말씀) 아볼로는 구약성경에 능통하고, 학식도 많고 유능한 자였습니다. 예수도 알고, 믿기도 했지만 요한의 세례만 알았지 예수님의 생명을 말씀으로 받지 못했던 자였습니다. 그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통하여서 예수의 영을 만났습니다. 바울의 3차전도 여행 기간 중 아볼로가 사역했던 에베소에 바울이 오게 되어 집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아볼로의 제자들을 만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예배하고, 말씀도 잘 듣고 있는데 영이 살아있는 생명의 눈으로 바울이 바라보니 아볼로에게 경견의 모양만 있었지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그들 속에도 예수의 생명이 없는 것을 보게 되어졌습니다. 아볼로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었지 생명이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예수 잘 믿고, 주일성수하고, 십일조하고, 충성하고, 헌신하고 믿음은 있지만 믿음의 능력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는 애통하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바울의 눈에 그들의 부족함이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우리는 듣지도 못하였노라” 그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해서 주님의 움직임 속에 움직임을 당하지 못하였고 계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아볼로를 생각해 볼 때 겸손히 우리 자신을 비워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영안에 담겨 영, 혼, 육을 주관하여야할 역사가 일어나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영에 주님의 능력이 오지 않고 우리의 혼과 육으로 믿으니 경건의 능력이 없고 계시도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도 임하지 않고 내 감동과 내 의지로 믿는 것입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오는 너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느냐?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냐? 묻는 물음을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물었던 것처럼 오늘 너희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느냐? 오늘 이렇게 묻는 물음을 우리들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바울도 성령의 능력을 부활의 생명을 영으로 받지 않았을 때에는 아볼로가 양육했던 에베소 교인들처럼 율법에 능한자로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되었고 이렇게 신앙생활을 했던 자였던 것처럼 아볼로의 사역은 성령의 계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세례는 예수님만 증거하는 단계입니다. 우리는 증거만 받는 것이 아니라 만나서 동행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요한은 예수를 증거하며 광야에서 회개를 외치며 뛰어난 자였지만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자는 요한의 세례가 끝이 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확신만 있는 것도 대단한 믿음이지만 야곱이 사기꾼, 속이는 자의 속성이 생명의 말씀으로 변하여져도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야곱의도도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변화되어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볼로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는데 경건의 모양을 다 갖추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을 담을 바울을 에베소 교회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의 심령과 교회에도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길 원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 이 말씀이 우리 심령가운데 임재하길 원합니다. 일생을 예수를 믿으며 내 감정, 내 의지대로 예수를 믿어왔는가? 아니면 내 심령가운데 예수의 영이 임하여 주셔서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 이끌려 왔는가? 이 시간 말씀 앞에 점검받아 회개하길 원합니다. 오늘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고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불과 성령으로 받는 세례 일 때 성령은 새로운 나를 창조해주는 역사가 일어나고 불로써는 지금까지 타락한 본성을 심판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으니 이들이 방언이 터지고 예언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계시가 열렸습니다. 예수의 영이 그 사람들과 함께하여 유기적인 연합으로 예수님이 그 심령가운데 들어와서 함께 동행 하는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주시고 책임져 주시는 계시의 영이 일어나게 됩니다. 요한의 세례는 반듯이 예수님의 세례로 완성이 되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말씀을 양육 받고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사역에 동참을 했고, 들었고, 기적을 봤고, 예수님을 목격했고, 십자가를 목격한 증인이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승천하시기 전 40일 동안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은 너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이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도 명하였습니다.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의 증인되라는 사명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몇 날이 못 되어서 너희에게 지극히 큰 능력이 입히울때까지 세상으로 나가지 말고 기다리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이들이 예수님 부활, 승천을 안 믿어겠습니까? 그러나 믿는 거와 그분 속에 역사하시는 능력 입는 거와는 하늘과 땅차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다락방이전의 제자와 오순절 이후의 성령이 강림하셔서 유기적인 연합체가 된 그들에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하늘과 땅처럼 달랐습니다. 오늘 우리는 오순절 이전의 제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오순절 이후의 성령 받은 그 능력을 체험한 주님과 동행한 제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도 말씀들은 중에 지극히 큰 성령의 능력에 입히우는 시간되길 원합니다. 성령을 받고 나면 우리입술의 부정한 것이 거룩한 것으로 변하여지고 9가지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사모하는 심령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성령의 눈이 열렸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성령 받은 자를 통해서 성령이 임하였듯이 우리에게도 임하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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