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그리스도인 | 김경화 | 2011-10-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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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19:8~20(2011.10.23말씀) 핍박 가운데 12제자가 세워져 두란노서원에서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회당에서처럼 일주일에 한번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12명의 제자들을 기둥으로 세우면서 제자양육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공동체 생활에서 양육을 받기까지 하늘나라 메시지를 듣는 것은 희생 없이는 안 되는 것이기에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12명의 제자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변화되어지니 가족이 변하고, 일가친척이 변하고, 아시아의 각처의 사람들 헬라인이나 유대인들이 다 믿는 역사가 일어나서 두란노서원의 사역에서 대중사역으로 엄청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며, 양육하다보니 바울을 통하여서 희한한 능력도 나타났습니다. 처음 바울이 에베소에 왔을 때 그들에게는 예수를 믿기는 믿어 도는 배워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참신의 능력이 없기에 경건의 모양이라도 갖추기 위해 그들에게는 마술사 술객이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오늘 믿음의 길을 가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창조의 능력이 우리 안에 입혀져야 되는데, 내가 진리적으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이 우리 심령가운데 들어오지 아니하면 우리는 흙 한줌 속에 있는 타락의 영으로 인생을 살아가기에 자기밖에 모르는 짐승의 속성인 것입니다. 능력이 없이 예수를 오랜 시간동안 믿다보니 하나님을 본 걸로, 들은 걸로, 모방하기 시작하는 유사그리스인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마술사란 유대인이 나왔고, 제사장 스가랴의 일곱 아들들이 나왔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점검하길 원하십니다. 정말 내가 참 신이신 살아계셔서 역사하시고, 우리를 지으시고, 천지를 지으신 창조의 영이 나와 함께하여주셔서 날마다 새롭고 산길을 창조해나가시는지 아니면 말씀을 듣고 믿음의 길을 오는데 내 안에 생명 없는 것으로 모방만하고 흉내만내고 있는 유사그리스도 인으로 내가 있는지 오늘 우리 자신의 믿음이 이 말씀을 통하여 달려보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유사그리스도 인에게도 모든 모양은 갖추어져 그들에게도 예배, 찬양,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이 능력이 없이 모방만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 역사하셨던 성령의 능력이 함께하시는 자, 위에서 난자의 생명이 우리 심령가운데서 동행하시는 자 이런 자에게는 날마다 변화의 역사를 하며 새롭고 산길을 열어가며 생명 낳은 일을 하며 아버지의 형상이 그를 통하여서 나타나게 되어 집니다. 생명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살리는 영으로, 부활의 영으로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 한마디에 심령을 살리고, 어두움이 떠나가고, 눈빛만 마주쳐도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유사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믿기는 믿어도 예수의 향기가 없고, 열매가 없어 처음엔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가까이 하며 할수록 시기, 분쟁, 욕심, 다툼, 허영, 위선 부정한 것이 나옵니다. 생명을 받는 자는 만날수록 사랑이 느껴지고 예수를 만납니다. 오늘 나는 유사그리스도인인가? 아니면 바울처럼 성령을 힘입어서 꼬꾸러진 자인가? 아직 내가 꼬꾸러지지 못했다면 스게와의 일곱 아들처럼 나는 제사장의 아들이고 유대인이라고 자신을 높이는 거짓 마술사 유대인이 떠나가길 원합니다. 우리 안에 참신의 능력이 예언하는 능력이 있길 원합니다. 예언하는 능은 잘된다고 거짓으로 복채나 받아내는 술객과 주술이 아니라 진정한 예언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내 안의 더러운 영을 꺼내주고 지적하고 수술해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창조의 영은 우리 안에 예언의 능으로 임하기만하면 나의 부정한 것을 보게 되어 집니다. 내가 살았다하나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집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진리의 말씀 앞에 가짜가 견딜 수가 없어 거짓과 참이 들어나게 되어졌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이 참신으로 왔다면 회개가 되어 지고 부정한 것을 알고 교만함을 알게 되어져 꼬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책을 불사르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을 앞서서 내가 능력 있는 것처럼 예언하는 것, 내가 의로워서 주님 앞에 쓰임 받는 것처럼 거짓 유사그리스도인의 행세를 했던 것이 가짜였다는 것을 고백하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15절의 말씀은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제사장이라고 모든 유대인들 앞에서 믿음이라고 인솔을 했었지만 온전히 예수를 믿어드리지도 아니하여 악귀 들린 사람에게 망신을 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귀신도 능력 없는 가짜 유대인도 알았고 예수님도 알아 믿고 떨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도 귀신믿음이 있어서 술객 노릇하는 자 말씀을 들을 때 우리 심령가운데 뽑혀나가고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길 원합니다. 예수님 속에, 바울 속에, 12제자 속에 있었던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가운데 임하시길 원하시고 정말로 내가 죽은 자로서 내안에 주술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도 무시하는 껍데기 신앙이 아니라 생명담은 그릇되길 원하셔서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생명의 말씀 앞에 이끄셨습니다. 테레사 수녀처럼 온몸을 불사르며 헌신했다 할지라도 “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라는 솔직한 신앙고백이 우리에게도 일어나길 원합니다.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 예수님을 증거만 받고 예수가 있는 것처럼, 예수가 역사하신 것처럼 예수를 빙자하여 시험적으로 유사그리스도인이 되어가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바울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 성령의 능력을 내게도 주시고 말씀이 육신의 되어서 오셨던 그 성령의 난 자가 내 심령가운데 일어나게 해주셔서 한 번 밖에 없는 이 인생 끝나기 전에 참신을 담은 그릇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마가복음 16:16~17로에서 말씀하셨듯이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하여지고 내 신비에는 아들의 영이 심겨지고 나를 통하여 나타나셔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주의 일을 감당하는 성령의 그릇이 되길 원합니다. 성령의 그릇이 되어 지면 표적이 따르는데 귀신을 쫓아내어 내안의 거짓 유사 그리스도인이 쫓겨나게 되고, 바울이 에베소교인들의 심령가운데 생명 없음을 분별해 알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도 심령가운데 죽음믿음 가려내서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또한 우리는 “새 방언”을 말해야합니다. 부정한 입이 감사. 찬양으로 성결케 되어 지길 기도하기 원합니다.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무슨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해독제가 부활의 주님인줄 믿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난 사람은 새사람으로 변화된 표징은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었다면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요동치 아니하고 감당한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옛사람의 본성은 땅에서 난 것이기에 무정갱으로 떠나고 소멸되고 태우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 외는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 내 권을 쓰지 못해 안색변하고 원통해 하지 말며 내 권을 쓰라고 내안에 선과 악을 두신 것이 아니고 먹지 말라고 두셨습니다. 먹으면 “정녕 죽으니라” 절대 선악과를 먹어 사단에 수종드는 자 되질 않길 원합니다. 다니엘 새벽 작정을 통하여 풀무 불에서 바짝 태워지길 원하고, 사자 입에서 죽어져서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여 하여 영, 육간의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런 능력받기 원합니다. 오늘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 받아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 내안의 거짓 술객이 드러나길 원하고, 점치는 자 떠나가길 원하고, 심령들을 살아 잡아 중심 도적질하여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하는 술객, 주술가도 떠나가길 원합니다. 어떠한 예언도 주께서 허락하지 아니하면 죽은 자처럼 우리가 해야 할 본문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 하나님 앞에 무릎 꿇은 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이 마가복음의 말씀의 능력이 믿을 때에 우리에게 나타나고 믿지 않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는 줄 믿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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