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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하여 세우고 | 김경화 | 2011-11-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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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0:1~6(2011.11.06말씀) 막 5장에서는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먹고 배부른 까닭에 인산인해를 이루며 주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칠 때에 너무나 탄복을 하며 예수를 따를 때 그 자리에서 영광을 받지 아니하시고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십니다. 가는 도중 풍랑으로 제자들은 두려워 떨 때 “믿음이 없는 자들아”하시며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건너간 곳이 거라사인의 지방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귀신들려 일생을 어두움의 종노릇하는 그를 살리시고자 하나님께서 그 바다건너편으로 가는 도중에 그 귀신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들이 풍랑을 일으켜서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방해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발등상으로 삼고계시고 육신을 쓰고 오셨지만 그 심령가운데에는 전능자가 계시기 때문에 파도를 잠잠케 하는 능력으로 이기시고 건너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주님으로 인하여서 일어나는 이적과 표적을 보고 따랐기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 심령가운데 성육신되어 오신 것에 불확실했습니다. 귀신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때가 왔지만 무정갱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땅의 심판이 끝나기 전에 이 그릇 속에서 더 살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떠날 때 그 귀신들은 저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길 원해 돼지 떼 이천 마리가 몰사했습니다. 돼지는 부정함을 말하고 거라사인의 지방은 돼지 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부정한 마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지방 사람이 귀신들린 한 영혼이 귀신이 떠나가 그 사람 변화되고, 고침 받는 것보다 귀신 떠나는 것은 하나도 기쁘지 아니하고 돼지 떼 이천 마리 손해 본 것만 너무 억울했습니다. 구원주가 그 땅을 밝았지만 내가 멸망을 해도 좋사오니 주님을 떠나보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말씀으로 임하여 주셔서 새롭게 내 안에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시기 원하셔서 우리를 불러내시고 이끌어 주셨지만 말씀이 임하실 때 나를 떠나소서 하는 기도도 듣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기회를 놓치는 그라사인의 지방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오늘 에베소에서도 아데미 신전으로 인하여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얼마다 엄청나게 꾸며져서 누가가도 저절로 고개를 숙이며 경배하며 아데미신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황금 면류관을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아데미를 보면 인생의 쾌락을 위해 마음껏 즐기고 나갈 수 있는 도시 같지만 영혼이 다 죽어있는, 다 멸망의 자식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음에 바울은 마음이 분했습니다. 2차전도 때는 지나쳐왔는데 3차전도 때에는 3개월을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며 중에 12명의 제자가 세워지고 핍박으로 두란노서원이 세워지고 2년 동안 제자 양육하는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이 많아져 아시아 일대에 이방인의 일곱 개의 교회가 세워지고 이방인 대표들이 바울을 도와 동역하고 함께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소요가 그치매” 어두운 세력과 우상이 나무한 이 도시에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서 적지 않은 벌이를 했는데 바울을 통하여서 에베소가 복음화가 이루어지고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다. 하며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니까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많아져 아데미의 영향력이 점점 떨어져서 경제적인 면에 손실이 오자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이 소요가 일어나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에베소사역을 마치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뜻인 줄로 바울은 알았습니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전한 후 3년 동안 에베소에서 영적전쟁을 하면서 십자가를 올리고 찬양을 하면서 예배가 이루어 질 때 그들을 잡고 있는 사단의 역사도 엄청 커서 “맹수와 싸워서 무슨 육익이 있으리요” 고백처럼 죽을 고비 고비였지만 바울 속에는 이미 부활의 영이 바울을 쓰시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겨쌈을 당해도 주님이 당하신거고, 고난을 당해도 주님이 당하신거고, 나는 이미 십자가에 못밖혀 죽어 산자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소요와 핍박가운데서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의 생명이 우리를 쓰시고 나타나기엔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이기에 몸이 불편하고, 환경이 막혀도 주의 일에 소홀이 할 수 밖에 없는데 바울은 감옥에 갔다 와도, 죽을 고비를 넘겨도 부활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되어져서 툭툭 털어버리고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를 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두려워 떨 때 영생 얻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으니 두려워 말라 하시더니 3년 동안 말씀으로 양육하게 하시더니 영생 얻을 자는 다 믿게 만드시고 다른 곳으로 옮겨 복음을 전하고 지경을 넓히게 하시고 소요를 일으키게 하셨습니다. 그러하니 열리고, 막히고, 안되고, 되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경륜임을 바울이 알았듯이 우리도 영직 눈이 열려지길 원하십니다. 이처럼 또다시 어려움이 올지라도 하나님 앞에 붙잡힌 사람은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주님이 역사하심을 잡고 가는 역사인 것입니다. 에베소 사역이 끝나고 바울은 또다시 사역의 길을 떠나는데 자신을 해하려는 유대인들을 피해 환경으로 막으셔서 가까고 쉬운 길을 포기하고 멀고 험한 길을 돌게 하시더니 자주장사 루디아를 전도했던 마게도냐로 가 다시 한번 양육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무교절을 지키고 세상에 흩어져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제자들을 굳게 세우는 것을 원하셔서 환경으로 막으셔서 마케도냐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헬라에 이르러” 3개월을 머물게 하시면서 바울은 로마를 가기를 원했지만 환경적으로 열려지지 않으면서 몸은 가지 못하지만 영혼구원 받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서신으로 전하는 엄청난 로마서를 쓰는 상황이 열려졌습니다. 오늘 마게도냐에서는 제자들을 굳게 세우고 고린도 헬라에 머물면서는 교회를 든든하게 세우고 어디를 가든지 순회하는 목적은 제자들을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제자삼아 주셔서 어디를 보내시던지, 머물던지 교회를 굳게 세우고 또 제자들을 양육하고 믿음으로 유익을 끼치는 하나님의 사람 되게 하여주셔서 우리 입에는 위로가 있고, 권면이 있고, 말씀이 있어서 기도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 되기 원하십니다. 고린도에서는 가이오 집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썼고, 1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에 안디옥에서 갈라디아서를 썼고, 2차전도 때에는 고린도 1년 반을 머물면서 데살로니아서를 썼고, 3차전도 에베소에서는 고린도전서를 썼고 이처럼 핍박과 환란 가운데 서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써서 오늘날 우리에게 성경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한자 양육하교, 가르치려는 이 서신이 오늘 나를 교회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1차 2차 3차 어디에서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머물러 세웠고, 양육했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떠났고, 창초의 영이 함께 하시어서 여려가지 서신서를 쓰게 하셨습니다. 그 씨로 이방인 지금 우리에게 까지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바울처럼 어디를 가든지 세우고 양육하고, 전하는 전도지를 우리 일생가운데 쓸 수 있는지 우리로 인해서 가족이 구원받고, 지역이 복음화 되고, 빛으로 교회를 세워지는 역사가 일어나 하나님 세계에 가서 영생에 영원히 기록에 남을 전도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이 말씀을 주십니다. 바울은 어디에서도 영생 얻도록 통로가 되어옴에도 항상 대적자 들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도와주는 역사로 복음은 이루어 졌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역가운데 대적자로 인하여 떠나할 때가 있으면 바울처럼 떠날 때를 아는 지혜가 있길 원합니다. 사울이 바울 되어 지고, 바울이 예수가 되어졌던 것은 대적자로 인하여 다루심 속에 온전히 죽은 자로 두들겨 맞으면 맞을수록 “죄인 중에 괴수였노라”는 고백처럼 우리도 영의 사람이 되지 아니하고 육으로 두들겨 맞는 인생이 되어 지고 원한이 되어서 이를 가는 역사가 일어나 입만 열면 불평하고 행악자가 되어 지는데 내가 주의 말씀을 받아 다스림 속에 들어가면 죽으면 죽을수록 악인 중에 악인이라는 고백을 하게 되어지고 구원 하나만으로도 피를 흘릴 수 있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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