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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있는자의 눈,귀,입 | 김경화 | 2011-11-1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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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0:7~12(2011.11.13말씀) 바울의 심령이 우리가운데 와서 내 어려움 때문에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어려움은 하나님 앞에 맡겨 드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돋는 자가 되어서 우리 입술에는 낙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권면하는 입술이 사도바울 처럼 변화 받는 축복의 입술이 되어지길 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 차례 마게도냐와 고린도를 방문한 후에 2차 전도했던 곳을 돌아보고 안디옥으로 떠나기 위해서 드로아에서 안디옥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면서 7일간 드로아에 머무는 환경이 열렸습니다. 7일을 머무르면서 드로아에서 복음을 증거 하게하셨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중심을 보고 밤이 맞도록 말씀을 증거 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 듣다가 떨어진 유두고 입장에서는 피곤한 육신으로 어쩔 수 없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 하던 중 죽은 유두고처럼 애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들은 유두고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 할 수 있을까요? 생명이 없는 자의 해석과 생명이 있는 자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오늘 우리가 생명 없는 자의 해석의 자리에 있다면 부활의 생명을 담는 그릇이 되어져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바라 볼 줄 알고 분별 할 줄 아는 믿음으로 한 단계 성숙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유두고의 죽음으로 무리가 소동이 났을 때 “저에게 생명이 있는지라”라고 바울이 말씀 했을 때 소동이 났던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요? 말씀 듣다가 죽었다고, 예수 믿다가 망했다고, 병들었다고등등 그때의 상황에서는 설교가 너무 길었다고, 이젠 끝장났다고 생명 없는 자는 이처럼 부정적이고 낙망적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보면서 부정한 입술로 할례 받지 못하는 입술인가? 아니면 똑같은 사건을 보면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시니까 이 사건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입술로 되어 졌는가? 오늘 우리는 어느 위치에 어느 입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의 마음을 더듬어 보길 원합니다. 우리는 유두고처럼 말씀을 사모하여 그 자리에 동참은 하지만 말씀에서 내가 나를 정복하지 못하고 여전히 내가 버리지 못하는 정욕과 음욕이 있고 내 욕심, 내 육성이 있어 무지함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계속 잠들게 하는 나의 강한 육성의 성품들이 있습니다. 계속 졸면 결국 떨어져 죽는 과정까지 가게 되어 집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님의 존전에 불러주셔서 하늘의 메시지를 주시는 이유는 새롭고 산길을 가며 새 하늘 새 땅으로 창조함을 입으라고 불러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모하는 중심으로 새 하늘 새 땅으로 하늘의 것으로 입혀져야 할 시간에 내가 끊어내야 할 것을 끊어내지 못하고 시기, 욕심, 모든 분쟁의 소요거리와 이 육성을 가지고는 나는 오늘 잠들어 있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데 오늘 우리가 유두고가 아닌지 수없는 말씀으로 나를 찾아와주시지만 여전히 끊어내지 못하고 버리지 못한 것 때문에 영적으로 잠들어있지는 않는지.... 우리가 말씀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의 다스림을 받고 말씀의 사람으로 지음을 받을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길 원하고 우리를 영적으로 육적으로 졸게 만드는 식습관이 있다면 버릴 줄 아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죽은 유두고 에게 내려간 바울은 하나님의 영을 담은 사람의 처세는 똑같은 상황이지만 생명 없는 사람들과의 처세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담는 바울은 죽은자를 껴안았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껴안았던 것처럼, 엘리사가 수넵 여인의 죽은 아들을 껴안았던 것처럼 바울은 자기몸 전체를 그에게 내어주고 죽은 심정까지 내어주는 대속의 역사의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유두고는 살아났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부활의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 유두고 사건을 통하여서 이 메시지가 드로아에서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능력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어 바울의 메시지는 정말 생명임을 유두고를 살리는 사건을 보면서 드로아의 모든 성도들은 확인하게 되어졌습니다. 그랬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이 정말로 부활의 영이신 생명의 영을 우리가 받는 자가 되어 진다면 하나님의 영이 말씀가운데 우리 심령가운데 와있다면 모든 사건을 바라볼 때에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섬리 가운데 유두고를 통하여 나타나는 주의 영광이 드러나는 구원의 사건으로 바라 볼 줄 아는 영적인 눈이 열려지길 원합니다. 이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의 섬리를 깨닫지 못한 입장에서는 우리가 너무나 많은 소동을 하면서 판단하고 사건을 해석해 왔는데 오늘 이 시간 유두고의 사건을 보면서 바울이 행했던 것처럼 “저에게 생명이 있다” 하신 것처럼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부활의 생명을 증거 하는 그 자리에 밤이 맞도록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명이 생명 되지 못하도록 졸게 만드는 육신의 모든 것들이 죽어지는 사건을 통하여서 새롭게 거듭나는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오늘 우리는 영안이 열려서 긍정의 눈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길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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