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속에서 본 우리 심령의 정체은? | 김경화 | 2011-12-18 | |||
|
|||||
행21:1~14(2011.12.11말씀) 바울 속에 역사하셨던 부활의 영이 우리 심령가운데도 역사하셔서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믿음이 우리 속에도 임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길 원합니다. 흩터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부활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길 원했지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얻기 위해서 바울은 성령에 매인 자가 되어 성령의 지시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우리의 움직임도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움직이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빛으로 생명을 얻을 자를 위하여 빛으로 하나님께서 바울을 쓰시고 역사하셨습니다. 우리도 인생 중에 바울과 같은 빛을 만날 때 지나가는 인생 되지 아니하고 말씀이 머무는 인생 되도록 깨어있는 자 되길 원합니다. 또한 우리가 머물 수 있어서 상대에게 생명의 그릇 되도록 기도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본문은 지형을 통하여 우리 심령의 속성들을 다시한번 보게 하십니다. 바울은 “고스”에서 하룻밤 묵었지만 생명의 역사는 없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심령의 변화가 없고 빛을 만나지 못하고 못하는 심령입니다. “로드”에서도 하룻밤 묵었습니다. 로드는 장미꽃을 뜻하는데 장미는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가시가 있듯이 말 할 때마다 상대방의 심령을 찔러대는 속성도 있고 또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었고 태양신을 섬기는 곳이었던 것처럼 조석으로 마음이 변하고, 세상의 풍요로움을 쫓아 물질 만능주의에 빠져 하나님이 그곳에 묵었지만 만나지 못하여 생명의 역사가 없었습니다. “바다라”는 중요한 항구로서 무역이 왕성하게 성행했습니다. 그곳도 너무도 바쁘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말씀이 머물지 못하여 구원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구브로” 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 있었다면 세워주고 살리는 역사가 있었을 텐데 여전히 지나쳐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할 것은 말씀이 내 심령가운데 묵었지만 지나쳐 지나가는 인생이 되지 아니 하시고, 말씀을 들어서 먼저 은혜를 받는 자지만 믿음이 식어져서 지나쳐가고 거쳐 가는 심령이 되지 아니하도록 기도하길 원합니다. 예루살렘이 가까운 “두로”에서는 일주일을 머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방인의 땅으로서 영생 얻기로 작정 된 자가 있기에 그곳에서성령의 매인 자로 말씀으로 교제를 하면서 영혼을 살리면서 세우면서 기쁨의 잔치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성령의 매인 자가 되어서 살리며 세우는 자가 되길 원합니다. 현대 사회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성도의 교제가 없는 가운데 생명의 역사도, 교제도 없어서 변화 또한 일어 날 수가 없습니다. 주안에서 만나서 교통함이 이루어져야하는데 교통함이 이루어지지 않는 벽이 말씀을 통하여서 무너져서 우리들의 만남은 구원의 역사와 생명의 간증거리만 있길 원합니다. 교제 후에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같이 모였을 때는 밤이 맞도록 성령의 임재 가운데 서로 교통을 한 후 각자가 사명 따라서 보내심을 받는 자리에서 감당하는 우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두로에서 그들과 헤어진 후 가이샤라에 이르러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20년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쫒아 대사도가 된 바울은 빌립 그리고 넷 명의 딸, 유대에서 온 선지자 아가보라는 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바울에게 그곳에 가면 결박을 당할 것이며 환란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그곳에 가는 것을 만류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바울이 결박당할 것을 보여준 것은 주의 길을 가로막으라고 보여 준 것이 아니라 바울과 함께 고난을 감당하라고 보여 주신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몰랐기에 바울의 마음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바울을 가로 막는 그들에게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함을 전하였습니다. 이미 바울 속에는 그리스도 형상이 완전히 임하였기에 바울에게 죽음이 더 이상 죽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성령에 매인 자는 나를 부인하는 자로 사람의 소리에 요동함을 받지 않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도 지혜의 영을 받아 성령의 계시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 되기를 원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