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혼합 | 김경화 | 2012-01-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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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1:17~32 성경을 전체를 통하여서는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들어나게 하십니다. 이 계획은 하나님의 경륜가운데 다 성취가 되어져 가는 것을 목도한 자들이 증인이 되어서 하나님의 세계에 대하여 증거 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지으시고, 만드시고 붙드시고 계셨던 것들이 타락해서 흙 암에 갖혀 있는 것을 다시 회복하고 찾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아들이 오기까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약속하셨는데 그 세월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응하여 그 무리가 하나가 생겼는데 그 세월이 천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형성이 되어 지고 부강케 되어져서 세상 나라가 그 아래 무릎을 끊는 다윗 왕궁의 부강함도 있었지만 그 부강함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온 것을 알고 끝까지 하나님 앞에 순복해야할 이스라엘이 패역함으로 말미암아 또다시 암흑기 4백년의 가운데 하나님은 나타나지 아니하시고 보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지 아니하는 것처럼 성경은 침묵을 하였습니다. 그런 가운데 흙 암을 뚫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들어나는 신약이 전개가 되어 지고 예수가 성육신 되어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시고 이긴 자가 되어주셔서 이긴 자 속에서 역사하셨던 그 영을 받는 자들을 통하여서 다시금 영적 이스라엘 나라가 형성이 되어 지면서 하나하나 빛들의 세계로 일으키셔서 생명을 낳은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성경 전체를 통하여서 계획하신 것들이 응하여 지는 역사입니다. 우리들 속에서도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에 동참이 되어 지고 또 우리가 증언이 되어 지고 하나님 계획이 수행되어지는데 수행의 도구로 쓰임 받는 우리들이 받는 복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의 길을 가면서 부활안에서 거듭나게 되어 지고 거듭나게 되어 지니 옛사람 옛 본성은 떠나가고 무너지고 거듭나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죽음으로 들어가 주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는 것이 부활의 능력인 것입니다. 심령 안에서 본성이 떠나가고 하늘의 영으로 창조함을 입는 가운데 내 본성이 죽어져야하는데 죽는 상황을 만날 때마다 넉넉히 죽을 줄 아는 부활의 능력에 힘입어 내려놓을 수 있고 참을 수 있고 죽을 수 있는 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구약에서는 오실 예수님을 증거 하기 위해서 예표가 있었고 상징들이 있었고 암흑기를 걸쳐서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실제이신 예수님이 오시고 나니 구약의 율법과 예표와 그림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20년 동안 1~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3차전도 여행까지 이방인들 가운데 빛으로 돌아오는 엄청난 역사가 있었는데 예루살렘교회는 처음의 성령 충만했던 모습은 없어지고 수만명의 유대인들의 무리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있는데 유대인의 그리스도인이라 유대적인 관습과 규약의 예표들을 버리지 아니하고 예수와 혼합되어지는 혼합신앙으로 있어서 침체되어지는 상황 속에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환란과 핍박으로 결박당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을 각오까지 되어있었던 바울에게 예루살렘 지도자들이 타협을 하게 되어집니다. 바울은 율법의 근본정신을 지키자고 말한 것을 그들은 율법을 무시했다고,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와서 성전을 더럽혔다고 하며 오해를 하며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바울을 고소하고 있으니 그들처럼 결례를 지키며 율법을 준행하며 오직 영혼이라도 구원하지는 야고보의 제안을 바울은 받아들이지만 하나님은 바울이 중심이 영혼 구원함을 위함인 줄 아셨지만 그것을 원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은혜 입은 자로 변화산에서 그 자체가 능력임을 보여주셨습니다. 모세, 엘리야, 예수님이 하늘의 세계에서 회의를 하는 모습을 보고나니 해처럼 빛나는 본체를 보니 베드로는 꼬꾸러졌습니다. 그 영광으로 초막 셋을 짓고 그곳에 거하기를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너는 잠잠하고 저의 말을 들으라” 하신 것처럼 실제이신 예수가 오셨는데도 유대인들은 율법의 대가인 모세도 갖고 싶고, 예언의 대표인 엘리야도 같이 있고 싶어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무리 선민사상에 저져서 의롭게 살았다 할지라도 실제이신 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떠나야 했는데 떠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를 영접했으면 내 본성을 떠나서 주님의 심령가운데 거하고 주님의 성품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을 때까지 난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나니가 이루어지기까지 실제 현상이 일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입술로는 영생을 가는 축복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타락한 본성의 품성은 떠나지 못하는 것은 혼합하여 가는 이것이 예루살렘교회의 능력이 없어지게 하고 그들이 영적으로 침체된 것처럼 또한 우리들의 실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울이 그곳에서 로마로 압송당해서 로마를 전도하갈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결박해서 환란 가운데 두심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나의 가족 중의 로마 , 환경 중에 로마를 전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결박 되어 지길 원하십니다. 본성대로 하지 아니하고 죄수처럼 죽은 자가 되어 무릎을 꿇고 잠잠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그들을 정복할 수 있도록 로마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있을 때에는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눈물을 흘리며 오실 메시야가 오시면 저 로마가 정복 될 줄 알았는데 하나님께서는 심령가운데 자기가 최고라는 심령로마가 정복되길 원하셔서 그 많은 시간을 환란가운데 두셔서 자기가 정복되고 나니 이스라엘의 오실 예수로 인하여져서 복음이 증거 되어 지고 멸망의 가증한 것을 볼 수 있는 거룩한 것이 서게 되어 지니 정말로 로마가 복음화가 이루어 졌듯이 오늘 나의 로마가 변화 받아 정복되어져야 내 주변의 로마가 정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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