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부르며 죄 씻음 받고, 세례도 받자 | 김경화 | 2012-02-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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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2:14~16 아나니아를 통하여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너를 택하시고, 음성을 들려주신 주시고, 만나주신 주님이 네가 보고 들었던 것들의 증인이 되어 이방인의 전도자로 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너를 불러내셨으니 이제 주저하지 말고 세례를 받고 죄 씻음을 받으라”고 주저하고 있는 바울을 이르켜 세웠습니다. 먼 훗날 바울은 감옥에서 많은 서신을 쓰면서 은혜 입은 것을 고백합니다. 말씀에 가까워지면 질수록, 주님의 보좌 앞에 가면 갈수록 죄인 중 괴수요 악인이라는 자신의 죄를 보게 되었기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받은 은혜에 감사함으로 더욱더 주의 일에 충성한 바울이 되었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충성은 무엇을 얻기 위함이 아니요 이미 얻었기 때문에 주님 앞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율법에 자기 열심이었던 바울을 꼬꾸러뜨리시고 아나니아를 통하여 성령의 그릇으로 사용하실 것을 알게 하여 주시고, 세례받길 원하시고 죄 씻음 받길 원하셨듯이 오늘 우리에게 "왜 주저하는냐"라고 물으십니다. 여호와를 섬긴다고 오지만 형식이요 습관이요 내 중심가운데 마음을 열어 주님을 영접하지 못하고 시와 때를 쫒아 머뭇거리며 거짓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의 심령을 바라보시면서 “왜 주저하고 있는냐” 하시며 말씀으로 찾아와주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신령이었다면 이것이 진리가 되어져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전환 되어져가는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택하실 때에 주저하지 않으셨듯이 하나님의 영생을 맛본 자가 아직도 이전 것을 벗지 못하여 두렵고 떨며 머뭇거리며 앉아있는 앉은뱅이가 고침받길 원합니다. 바울에게 다메섹 회심이 굉장히 중요했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다메섹 회심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어디에 보냄을 받던, 설교를 듣던, 기도를 하던, 찬송을 하던 예수만난 체험이 있어야합니다. 다메섹 체험으로 내 임의대로 하지 아니하고 말씀과기도로 주의 음성을 들어 내가 만남 예수님으로 인하여 내 삶의 변화, 삶의 목적, 삶의 질이 달라진 것이 신앙의 유산으로 얻어져야합니다. 바울에게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의 길에 들어왔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믿음의 길을 가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우리 심령가운데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을 때가 언제입니까? 머리로 입술로 혼으로 믿었던 하나님을 내 인생에 비전 없고 한계상황을 느낄 때 내 중심 가운데 간절함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소리가 나갑니다. “주 예수여”란 이름에는 엄청난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디모데처럼 깨끗한 마음으로 날마다 거룩함으로 덮입어 주의 형상으로 채워지기 까지, 내 안에 예수가 티끌로 오셔서 공생에 들어가기까지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의 여시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라고 인정받기까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을 요청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을 믿는 진정한 신앙은 본능도 아니요 의지도 아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아나니아는 바울에게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세례는 옮겨지는 것입니다. 세례의 첫째의 목적은 내 자신을 끝내는 것입니다. 세례에는 물세례와 불세례가 이는데 물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처럼 나도 죽고 부활의 영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살아나는 역사입니다. 본성에서 그리스도로 옮겨지는 것이 진정한 세례입니다. 사도 바울도 율법에 열심 있는 단계에서 주 예수여 이름을 부르는 단계로 세례로 옮겨짐을 당했습니다. 나의 진정한 세례는 내 본성이 끝나고 새로운 주님의 영으로 시작되는 것이 진정한 세례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죄 씻음도 받고, 세례도 받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여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옛것은 떠나고 새것으로 시작하는 우리가 되길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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